[interview]나의 성과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면

워머스 김키미 님은 뉴그라운드에 초기부터 지금까지 활동해온 멤버입니다. 제가 몇 년 동안 가까이 지내며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온 친구이기도 하고요. 회사 생활과 작가 활동을 병행하며 시간을 쪼개어 쓰느라 모든 이동을 택시로 하던 예전의 키미 님과, 느긋하게 산책하며 탐조하는 지금의 키미 님은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척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10월의 커뮤니티 리포트에서는 키미 님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가까운 사이이지만 많은 친밀한 관계가 그렇듯, 서로 각 잡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최근에는 잘 없었더라고요. 오랜만에 친구가 아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중견 프리랜서와 초보 프리랜서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눴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공유하는데 불안이 덜어지는, 신기하고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a2c24a7bb4a28.png


효진: 키미 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어디에 가장 시간을 많이 쓰시나요?

키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과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중이에요.


효진: 그게 어떤 뜻인가요?

키미: 프리랜서로 수익 활동을 시작한 게 책 <오늘부터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를 출간한 올해 5월부터예요. 이제 반년 됐네요. 그동안은 감사하게도 제가 이전에 했던 소극적인 노력들을 보고 일을 의뢰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걸 붙잡고 추가적인 신규 업무를 위한 활동을 자꾸 미루게 되는 거예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요만큼 있으니까 어쨌든 이번 달은 먹고 살 수 있고, 그럼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것도 맞지만 다음 달에 조금 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번 달에 미리 해놔야 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걸 할까 말까 하는 싸움이에요.


효진: 프리랜서로 어떤 일을 주로 하세요? '소극적인 노력들'이라는 게 뭔지 궁금해요.

키미: 5월에 책을 출간하고 전국 북토크를 다녔어요. 일곱 군데 정도? 수도권에서 먼 지역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은 서울에서 끝나는 코스였어요. 북토크라고 해서 그냥 책 얘기만 하는 건 아니고 독자들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 형태로 진행했고, 그걸 하고 나서는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포스팅했어요. 이번에는 어느 지역에 있는 어느 책방에서 워크숍을 했고, 이런 점이 좋았다, 하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사람들이 '이 사람은 칭찬 회고 워크숍을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인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연결된 일들이 생긴 것 같아요. 


효진: 예전에도 여러 지역에서 북토크를 해보신 적이 있나요?

키미: 아니요. 첫 책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를 냈을 때는 제가 직장에 다니던 중이기도 했고, 당시가 코로나19의 한복판이기도 했어요. 북토크를 거의 온라인으로 진행했죠. 지역 서점에서 저한테 북토크를 의뢰한다고 해도 시간이 없어서 못 갔고요. 당시에는 좀 오만하게도 지역 북토크를 하는 건 ROI가 안 나온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ROI란 '리턴 온 인베스트먼트'의 약자인데요, 한 마디로 투자 대비 효율이 적다고 여겼다는 거예요. 

지금은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제가 쓴 책을 통해 누구를 만나서 어떤 대화를 하게 되는가, 책을 통해 대화하게 되는 사람들이 더 다양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더 커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에 제가 자주 만나던 유형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있을 법한 곳에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에 너무 많은 문화적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저항심이 있는데, 책이 나왔으니 저에게도 지역에도 뭔가 조금이나마 이로운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잖아요. 기회가 있을 때 이렇게 행동하는 건 저로서는 되게 좋은 일이에요.


효진: 구체적으로 서울에서와는 어떤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나요?

키미: 서울에서 북토크 같은 행사를 하면 저랑 비슷한 환경에서 일한 분들이 많이 오세요. 좁게 보자면 IT 회사의 기획자이거나 마케터고, 조금 더 넓게 보면 사무직이죠. 연령대로는 30대, 성별로는 여성. 그러다 보면 오가는 이야기의 범주도 어느 선을 넘어가지 못하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데 서울 외 지역에 가면 거기서 만나는 분들의 성향이나 유형도 굉장히 달라져요. 예를 들어 진주에는 '혁신도시'라는 마을이 있거든요. 거기서는 육아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워크숍에서 오가는 이야기도 육아에 관한 것이 많았죠. 저는 그런 환경에 놓여본 적이 없으니 그 분들의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거예요. 

또 예를 들자면, 충남 홍성은 귀농한 청년들이 많은 지역이에요. 제가 갔던 책방 사장님도 농사를 지으면서 책방을 운영하는 투잡 중이셨고요. 워크숍에도 귀농한 청년분들과 다양한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중학생도 두 명이나 있었고 중학생과 함께 온 어머니, 그림 작가, 도시재생지원센터 같은 곳에서 일하시는 분 등이 계셨어요. 저의 일상에서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을 것 같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효진: 아까 가치관에 변화가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변했는지, 왜 그런 변화가 있었는지 듣고 싶어요.

키미: 저는 회사에 다닐 때 엄청 성과주의자였어요. 연말에 성과 평가를 할 때 가장 높은 점수를 꼭 받아야 하는 사람. 그걸 목표로 일하고, 그걸 목표로 일하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사람이었죠.


효진: 성과를 잘 받는 게 키미 님한테 왜 그렇게 중요했나요?

키미: 이왕 일하는 거라면 잘하고 싶었어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기본적으로 강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일을 잘해야 한다'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냥 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 거죠. 이런 생각이 변화하는 데 꾸준하게 영향을 미친 건 칭찬일기를 쓰는 습관이었던 것 같아요. 셀프 칭찬일기를 쓰다 보면, 무조건 결과가 좋은 것만 잘했다고 칭찬하는 건 아니거든요. 내가 생각하기에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어도, 과정에서 많이 노력한 나를 위로해 주고 스스로 수고 많았다고 이야기해 주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잘 해야 한다'는 원칙이 어디서 왔는지, 꼭 뭔가를 잘하는 것만이 좋은 건지, 등에 대한 의심의 씨앗이 생긴 거예요. 사회적인 압박에 응답하기 위해 내가 나를 너무 무리하게 갈아 넣고 있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완벽주의자 성향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중인데, 이제 '내가 스스로 원해서 일을 잘하려고 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정도는 성찰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치관이 바뀌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건 '내가 내 시간을 얼마나 쓰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어요. 고용 관계 안에 있으면 사무실에 있지 않을 때도 일 생각을 계속하게 되잖아요. 당시에 저는 잠자는 시간 빼고는 다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거든요. '삶에서 일을 걷어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고 질문해 보면, '잠자는 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 상황에서 10년 후를 상상했을 때 좀 겁이 났어요. 10년 후 다른 사람이 되려면 일을 덜 해보는 시간이 나한테 너무 필요하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회사를 나왔죠. 너무너무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용기를 내지 않으면 질문에 대한 답을 절대 구할 수 없을 테니까요.


0c9edf78c6e14.jpg


효진: 프리랜서가 되니 회사원일 때보다 일 생각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느끼시나요?

키미: 아니요. (웃음) '이제부터 돈을 좀 벌자'라고 다짐하고 나니까 너무너무 미치도록 불안했어요. 저는 18년 동안 직장을 다녔으니 그동안은 가욋돈을 벌지 않아도 됐잖아요. 이제는 소속이 없는 채로 스스로 돈 벌 구멍을 만들어야 하고, 그 구멍을 만드는 시작점이 책이니까 책이 잘 팔리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어요. 그런데 1차 목표가 제가 기대했던 만큼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니까 불안해서 미치겠더라고요. 아까 잠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는데, 프리랜서가 되고 정말 문자 그대로 그렇게 된 거예요.

불안해하지 말아야지, 하고 자신을 달래봤지만 주변 사람들한테는 제 불안이 보였나 봐요. 저를 잘 아는 출판사 편집자분과 대화를 나누는데 그분이 '만나서 대화하는 키미님과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키미님은 다른 사람 같아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걸 듣고 깨달았어요. 나를 불안하게 만든 건 내가 성과의 기준으로 삼았던 책 판매 부수였던 거고, 그건 1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내가 추구했던 게 숫자와 규모밖에 없었기 때문이구나. 성과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건데 내가 너무 협소하게 바라보고 있었구나. 성과에 대한 시야가 트이고 나니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마음이 엄청 편안해졌어요. 


효진: 직장에 다닐 때는 연봉이나 업무평가로 성과가 바로 나타나잖아요. 반면 프리랜서의 성과는 아무도 측정해 주지 않고요. 그런 와중에 '난 성과에 대해 예전과 다른 감각을 가지게 됐어'라고 말씀하신 건데, 지금은 무엇을 성과라고 생각하세요?

키미: 얼마나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가가 성과의 기준이 됐어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내가 노력하는 게 있을 거고, 그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에게 보이는 세상이 달라질 거잖아요. 그걸 성과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효능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예전에는 퍼블리, 폴인, 요즘사 같은 자기계발에 특화된 플랫폼을 통해서 제 이야기를 전하는 게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지역의 책방들이나 중장년층이 많이 오는 도서관, 고등학교 등 내가 가서 이야기하는 곳이나 내 몸이 놓이는 곳도 다양해지고 거기서 연령이나 관심사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성과에 가깝다고 느껴요.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중요한 거죠. 


효진: 그럼 만나는 사람들이 다양해지면 수익은 별로 나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키미: 그것도 요즘 생각하는 부분인데, 그래서 두 가지 트랙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다양성을 잃지 않게끔 노력하는 거, 그리고 수익이 더 날 수 있는 루트를 만드는 거. 후자가 안정되면 전자를 추구하면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선배 프리랜서로서 이 얘기가 어떻게 들리세요? 뜬구름 잡는 얘기 같나요?


효진: 사실 저는 프리랜서로서 돈을 크게 잘 벌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저의 경우는 돈이 되는 일은 이거고, 나머지로는 가치를 추구한다는 식으로 일의 트랙이 뚜렷하게 나누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키미: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돈 버는 트랙이라고 생각하는 일에도 가치가 충분히 있어요. 그런 일에서의 가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아니라 늘 만나던 유형의 사람들이어도 더 자주 만나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깊이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자리를 준비해야겠다 싶어요. 


효진: 그럼 프리랜서로서 키미 님의 성과 기준은 관계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어보는 거, 그리고 관계의 깊이를 다양하게 가져가 보는 거, 그런 것들이 되겠네요. 프리랜서로 6개월을 살아보니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어떠세요?

키미: 지금은 중간결산을 하기 너무 섣부릅니다. 1년 후에 다시 물어봐 주세요. (웃음) 제가 지금 제일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은 업무 사이클과 할 일 등을 스스로 계획해야 한다는 거예요. 회사에서는 시기마다 해야 하는 일들이 생기잖아요. 이를테면 9월쯤에는 내년 사업계획을 짜고, 11월부터는 한 해 동안 한 일에 대한 평가를 하고, 그다음 2월이 되면 평가가 반영된 연봉이 통장에 들어오는 식이죠. 업무 사이클에 속해서 일하기 때문에 제가 게을러지고 싶어도 결코 태만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프리랜서인 저에게는 아직 사이클이랄 게 없고 그냥 '다음 달에 돈을 벌려면 지금 이거 해놔야 해' 이런 식의 계획밖에 못 세우거든요. 그런데도 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런 나 자신을 어떻게 멱살 잡고 책상 앞에 앉혀 놓을 것인가가 고민이에요. 


효진: 그런데 멱살 잡고 책상 앞에 나를 앉혀 놓고 계획을 세우게 한다고 해서 그게 미래의 수익으로 바로 이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말은 아닌데, 프리랜서로 살아보니 노력 여부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느껴져요. 운이 정말 많이 개입하는 것 같고요. 키미 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 왜 더 성실하지 않지?'라고 초조해하지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요즘 키미 님의 제일 중요한 즐거움은 뭔가요?

키미: 즐거운데 즐거운 만큼 더 많이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탐조'예요. 새 구경할 때 너무너무 즐거워요. 귀엽잖아요. 저는 평상시에 생각이 잘 안 꺼지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새를 관찰할 때는 거기에만 완전히 몰입해요. 탐조하면서 제 강점을 발휘한다는 느낌도 받고요. 저는 나름대로 눈썰미가 좋고, 사진을 잘 찍는 편이거든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날아가는 새를 포착해서 촬영하고, '나 이 새 봤어'라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참고로 제일 좋아하는 새는 붉은머리오목눈이입니다. '뱁새'라고 불리는 새인데요, 마트료시카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겼어요. 너무 귀엽고 엄청 빨라요. 


효진: 2025년이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키미 님의 개인적인 목표나 계획이 있을까요?

키미: 할 게 너무 많아요. 일단은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해요. 정확히 말하면 돌봄을 위해 운전 능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연말연초에는 다양한 곳에서 했던 칭찬 회고 워크숍을 조직에서 일하는 팀들과 많이 하고 싶어요. 더불어 개인들과 칭찬이라는 키워드로 연말 회고 프로그램을 열고 싶기도 해요. 이것은 다다음 주쯤의 제가 기획해야 할 일입니다. (웃음) 또 트레바리에서 '필터 버블 파괴 클럽'이라는 독서 모임을 진행할 예정이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뉴그라운드에서 하고 싶은 일도 있어요. 뉴그라운드에 저 같은 프리랜서도 많고, 자영업자도 많잖아요.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어려움을 함께 해소할 방법을 찾고 싶은데, 저도 아직 초보 프리랜서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이것에 대한 논의를 내년 초에는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효진 님이 판을 깔아주실 수 있나요?


효진: 좋아요. 방향성을 먼저 잡는 게 아니라 '우리 모여서 일단 얘기를 해보자' 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키미: '어떤 고민이 있나요?' '무엇을 해결하면 좋을까요?' 이런 것부터 가볍게 얘기해 보면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