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일하는 나'의 자아를 분리하기를 선택합니다. 일은 일이고 일터에서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통이 나라는 사람 전체를 훼손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자아는 그리 간단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일하는 나와 일하지 않는 나를 분리하고 구분하고자 하는 시도는 대개 실패로 끝나버리는 듯합니다.
25년 상반기 시즌의 마지막 커뮤니티 리포트에서는 최근 회사에서 퇴사한 워머스 이영경 님을 만났습니다. 꽤 오랫동안 고민했던 퇴사를 마침내 실행에 옮긴 영경 님은 회사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져서, 그럼에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같은 상황을 반복하는 것만 같아서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뉴그라운드 활동을 통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이야기 나누던 와중, '앞으로는 일하는 나와 일하지 않는 나를 분리하지 않겠다'는 영경 님의 말이 너무나 반갑게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일터에서도 통합된 자아를 유지할 것인가'에 관한 대화를 뉴그라운드에서 더 자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효진: 영경 님, 요즘 주로 어떻게 지내세요?
영경: 두 달 전쯤 회사에서 퇴사해서 개인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어요. 여행도 다녀오고, 사람들도 만나고요. 회사에 가지 않는 생활에도 이제 좀 적응된 것 같아요.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는 루틴을 깨고 싶긴 했거든요.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피곤함이 계속 쌓이더라고요.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예전보다는 잠도 많이 자게 돼서 괜찮아요.
효진: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아침에 너무 일찍 깨면 약간 분하지 않나요? (웃음)
영경: 맞아요. 그리고 저는 회사에 다닐 때 주말에도 새벽 6시에 깼거든요. 그게 싫었어요. 나도 더 자고 싶고 피곤한데, 잠이 더 안 오니까. 그 루틴이 이제 조금 깨진 거죠.
효진: 영경 님은 이전에도 임금 노동을 쉬어 보신 적이 있나요? 제일 오래 쉬어 본 기간이 어느 정도예요?
영경: 제가 퇴사를 좀 여러 번 해서 중간중간 3, 4개월 정도씩 쉬었어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는데도 예전에는 불안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부산 본가에 살 때는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지원들이 있었는데, 혼자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그런 게 없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덜 불안해요.
효진: 그 이유가 뭘까요?
영경: 생각을 해봤는데, 뉴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삶의 모양들을 봐서인 것 같아요. 꼭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것만이 일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다르게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일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알게 돼서 그런가 봐요.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예 임금 노동을 길게 쉬고 있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효진: 지난해부터 퇴사와 관련한 고민을 하셨던 것 같은데, 결정적으로 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신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영경: 작년에는 약간 직장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나 회사 그만둘 거야’ 이런 느낌도 살짝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아까 퇴사를 여러 번 해봤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그 회사에 있는 저 자신이 싫어지면 퇴사를 하거든요. 가끔 그곳에 있는 나를 보고 괴로울 때가 있어요.
이번에는 퇴사하기 직전에 회사에만 가면 제가 화를 엄청나게 내는 거예요. 화를 내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지치기도 하고, 내가 너무 능력주의를 우선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다 보니 모든 것을 내가 다 통제하고 싶더라고요.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또 스스로 내가 지금 일을 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부정적인 상황 안에서 맴돌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번아웃이 와서 힘들었고, 회복하려고 노력해봤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는 않으니 결국에는 퇴사를 하게 됐어요.
효진: 영경 님은 계속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신 거죠? 그간 일을 하시면서 영경 님이 좋아했던 부분이나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뭐였나요?
영경: 제가 하는 일이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대상의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만족도가 높으면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또 저는 아무래도 복지 대상자분들을 직접 자주 만나지는 못했으니까, 가끔 그분들을 볼 기회가 생겼을 때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들이 성장했다는 게 보이면 거기서도 엄청나게 보람을 느꼈어요.
효진: 반대로 어려운 점도 있었나요?
영경: 다른 분야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제가 했던 일은 1년 치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는 방식이라 중간중간 쉼을 두는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사업이 연 단위로 계속 돌아가고, 중간중간에 또 새로운 일들이 나타났거든요. 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오늘 할 일은 끝냈다’ 이러면서 어떤 날 오후에는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들도 있던데, 저는 몸담은 분야 특성상 그게 안 됐던 거죠.
효진: 그렇게 업무가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책을 정말 많이 읽으셨던 것 같아요. 한 달에 정확히 몇 권을 읽으시는지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언제나 책을 읽고 계시고 서점도 자주 가시더라고요. 바쁜 와중에 대체 어떻게 독서 시간을 확보하실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영경: 저는 책을 좀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좋아하는 서점을 통해서 책을 가까이하기 시작했고, 서점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로 책 읽기를 아주 작게 지속하면서 습관을 만들었어요.
그다음부터는 책을 꾸준히 읽게 되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나랑 맞지 않는 책을 만날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꼭 완독을 해야 하는 사람, 완독주의자예요. 책을 읽으면서 ‘모든 문장을 다 해석하고 넘어가겠어’가 아니라 이해가 잘 안되거나 딱히 공감되지 않아도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요. 그러다 보면 다음 문장이, 혹은 다른 챕터가 그 내용을 뒷받침해 주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걸 이해시켜 주기도 해요. 우리가 1년 동안 읽은 책을 다 기억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읽고 넘어간 책이 조금 섞여 있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가볍게 읽으려고 해요.
효진: 그럼 영경 님이 읽은 책 중에 추천하고 싶은 것도 있나요?
영경: 지난해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자’라는 책들을 많이 읽었다면, 올해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착하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나빠’ 이런 책들을 많이 읽었더라고요.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이야기들인 거죠. 추천하고 싶은 건 두 권이 있는데요, 하나는 김화진 소설가의 <동경>이예요. 소설에 세 명의 친구가 나오는데 그들이 다 저의 모습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들이 우정을 쌓는 방법이나 우정을 쌓으면서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나 갈등 같은 것들이 좋은 문장 속에 잘 드러나 있기도 하고요.
다른 한 권은 <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라는 시집이에요. 처음에는 정멜멜 사진가님이 표지 사진을 찍으셨다고 해서 읽게 됐는데요, 여는 글부터 너무 좋아요. 유희경 시인이 쓰셨고 제목이 ‘시라는 거 잘 모르겠지만’인데요, ‘시’의 자리에 ‘우정’이나 ‘사랑’을 넣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사실 뭐든지 좋아하면 깔때기가 그쪽으로 가거든요. 지금은 뉴그라운드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면서도 뉴그라운드를 떠올렸어요.
효진: 그래요? 너무 너무 영광이에요. 근데 뉴그라운드를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영경: 멤버십에 가입한 첫 시즌에 오프라인 밋업을 갔어요. 그때 효진 님이 뉴그라운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가져오셨거든요. 그때 참여한 모든 분이 돌아가면서 그 문제를 논의했었던 것 같아요. 거기 있는 분들이 뉴그라운드의 지속가능성에 엄청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너무 보이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뉴그라운드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속한 곳이 이런 곳이구나, 여기 있는 분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커뮤니티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구나. 그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효진: 정작 저는 그때 밋업을 잊고 있었네요. 말씀해 주셔서 다시 떠올랐어요. 그럼 영경 님이 직접 빵 모임을 열어본 건 어떠셨어요?
영경: 이전에는 빵으로 모임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냥 자기소개에 빵을 좋아한다고만 썼는데 어느 순간 빵 모임을 열게 되었고, 제가 여는 첫 모임이다 보니 더 떨렸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반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기뻤어요.

효진: 각자 좋아하는 빵만 가져가면 되는 거였으니까 너무 좋은 모임이었죠. 비록 저는 식빵을 들고 가서 그대로 다시 들고 돌아왔지만…(웃음) 목적과 목표가 뚜렷한 모임도 필요하지만, 그냥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게 커뮤니티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영경: 맞아요. 돌이켜보면 저도 뉴그라운드를 SNS에서 팔로우만 하고 있을 때는 커뮤니티가 뭔지 잘 감이 안 왔던 것 같아요. 비용까지 내면서 참여를 하는 게 맞나? 싶었어요. 일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실질적으로 어떤 건지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고요. 그러다가 요리도 하고, 댄스 모임도 하는 걸 보면서 ‘아, 여기 들어가면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어서 멤버십을 신청한 거였어요.
효진: 그렇군요. 다음 시즌에 또 빵 모임을 열어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궁금한 건 이제 거의 다 여쭤봤는데요, 마지막으로 영경 님의 25년 하반기 계획을 여쭤봐도 될까요?
영경: 일단은 직장을 구해서 다시 임금노동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동안은 제가 일하는 나와 일하지 않는 나를 되게 분리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그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저와는 맞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일하지 않는 나도 나고, 일을 하는 나도 나니까, 두 자아를 분리하지 않고 완전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
효진: 영경 님, 요즘 주로 어떻게 지내세요?
영경: 두 달 전쯤 회사에서 퇴사해서 개인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어요. 여행도 다녀오고, 사람들도 만나고요. 회사에 가지 않는 생활에도 이제 좀 적응된 것 같아요.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는 루틴을 깨고 싶긴 했거든요.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피곤함이 계속 쌓이더라고요.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예전보다는 잠도 많이 자게 돼서 괜찮아요.
효진: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아침에 너무 일찍 깨면 약간 분하지 않나요? (웃음)
영경: 맞아요. 그리고 저는 회사에 다닐 때 주말에도 새벽 6시에 깼거든요. 그게 싫었어요. 나도 더 자고 싶고 피곤한데, 잠이 더 안 오니까. 그 루틴이 이제 조금 깨진 거죠.
효진: 영경 님은 이전에도 임금 노동을 쉬어 보신 적이 있나요? 제일 오래 쉬어 본 기간이 어느 정도예요?
영경: 제가 퇴사를 좀 여러 번 해서 중간중간 3, 4개월 정도씩 쉬었어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었는데도 예전에는 불안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부산 본가에 살 때는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지원들이 있었는데, 혼자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는 그런 게 없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덜 불안해요.
효진: 그 이유가 뭘까요?
영경: 생각을 해봤는데, 뉴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삶의 모양들을 봐서인 것 같아요. 꼭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것만이 일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인식하고, 다르게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일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알게 돼서 그런가 봐요.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분들도 있고, 아예 임금 노동을 길게 쉬고 있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효진: 지난해부터 퇴사와 관련한 고민을 하셨던 것 같은데, 결정적으로 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신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영경: 작년에는 약간 직장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나 회사 그만둘 거야’ 이런 느낌도 살짝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아까 퇴사를 여러 번 해봤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그 회사에 있는 저 자신이 싫어지면 퇴사를 하거든요. 가끔 그곳에 있는 나를 보고 괴로울 때가 있어요.
이번에는 퇴사하기 직전에 회사에만 가면 제가 화를 엄청나게 내는 거예요. 화를 내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지치기도 하고, 내가 너무 능력주의를 우선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다 보니 모든 것을 내가 다 통제하고 싶더라고요.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또 스스로 내가 지금 일을 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부정적인 상황 안에서 맴돌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번아웃이 와서 힘들었고, 회복하려고 노력해봤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는 않으니 결국에는 퇴사를 하게 됐어요.
효진: 영경 님은 계속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하신 거죠? 그간 일을 하시면서 영경 님이 좋아했던 부분이나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뭐였나요?
영경: 제가 하는 일이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대상의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분들의 만족도가 높으면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또 저는 아무래도 복지 대상자분들을 직접 자주 만나지는 못했으니까, 가끔 그분들을 볼 기회가 생겼을 때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들이 성장했다는 게 보이면 거기서도 엄청나게 보람을 느꼈어요.
효진: 반대로 어려운 점도 있었나요?
영경: 다른 분야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제가 했던 일은 1년 치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는 방식이라 중간중간 쉼을 두는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사업이 연 단위로 계속 돌아가고, 중간중간에 또 새로운 일들이 나타났거든요. 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오늘 할 일은 끝냈다’ 이러면서 어떤 날 오후에는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들도 있던데, 저는 몸담은 분야 특성상 그게 안 됐던 거죠.
효진: 그렇게 업무가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책을 정말 많이 읽으셨던 것 같아요. 한 달에 정확히 몇 권을 읽으시는지는 제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언제나 책을 읽고 계시고 서점도 자주 가시더라고요. 바쁜 와중에 대체 어떻게 독서 시간을 확보하실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영경: 저는 책을 좀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좋아하는 서점을 통해서 책을 가까이하기 시작했고, 서점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로 책 읽기를 아주 작게 지속하면서 습관을 만들었어요.
그다음부터는 책을 꾸준히 읽게 되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나랑 맞지 않는 책을 만날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꼭 완독을 해야 하는 사람, 완독주의자예요. 책을 읽으면서 ‘모든 문장을 다 해석하고 넘어가겠어’가 아니라 이해가 잘 안되거나 딱히 공감되지 않아도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요. 그러다 보면 다음 문장이, 혹은 다른 챕터가 그 내용을 뒷받침해 주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았던 걸 이해시켜 주기도 해요. 우리가 1년 동안 읽은 책을 다 기억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읽고 넘어간 책이 조금 섞여 있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가볍게 읽으려고 해요.
효진: 그럼 영경 님이 읽은 책 중에 추천하고 싶은 것도 있나요?
영경: 지난해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자’라는 책들을 많이 읽었다면, 올해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착하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나빠’ 이런 책들을 많이 읽었더라고요. 인간의 양면성에 관한 이야기들인 거죠. 추천하고 싶은 건 두 권이 있는데요, 하나는 김화진 소설가의 <동경>이예요. 소설에 세 명의 친구가 나오는데 그들이 다 저의 모습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들이 우정을 쌓는 방법이나 우정을 쌓으면서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이나 갈등 같은 것들이 좋은 문장 속에 잘 드러나 있기도 하고요.
다른 한 권은 <도넛을 나누는 기분>이라는 시집이에요. 처음에는 정멜멜 사진가님이 표지 사진을 찍으셨다고 해서 읽게 됐는데요, 여는 글부터 너무 좋아요. 유희경 시인이 쓰셨고 제목이 ‘시라는 거 잘 모르겠지만’인데요, ‘시’의 자리에 ‘우정’이나 ‘사랑’을 넣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사실 뭐든지 좋아하면 깔때기가 그쪽으로 가거든요. 지금은 뉴그라운드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면서도 뉴그라운드를 떠올렸어요.
효진: 그래요? 너무 너무 영광이에요. 근데 뉴그라운드를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영경: 멤버십에 가입한 첫 시즌에 오프라인 밋업을 갔어요. 그때 효진 님이 뉴그라운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가져오셨거든요. 그때 참여한 모든 분이 돌아가면서 그 문제를 논의했었던 것 같아요. 거기 있는 분들이 뉴그라운드의 지속가능성에 엄청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게 너무 보이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뉴그라운드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속한 곳이 이런 곳이구나, 여기 있는 분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커뮤니티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구나. 그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효진: 정작 저는 그때 밋업을 잊고 있었네요. 말씀해 주셔서 다시 떠올랐어요. 그럼 영경 님이 직접 빵 모임을 열어본 건 어떠셨어요?
영경: 이전에는 빵으로 모임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냥 자기소개에 빵을 좋아한다고만 썼는데 어느 순간 빵 모임을 열게 되었고, 제가 여는 첫 모임이다 보니 더 떨렸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반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기뻤어요.
효진: 각자 좋아하는 빵만 가져가면 되는 거였으니까 너무 좋은 모임이었죠. 비록 저는 식빵을 들고 가서 그대로 다시 들고 돌아왔지만…(웃음) 목적과 목표가 뚜렷한 모임도 필요하지만, 그냥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게 커뮤니티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영경: 맞아요. 돌이켜보면 저도 뉴그라운드를 SNS에서 팔로우만 하고 있을 때는 커뮤니티가 뭔지 잘 감이 안 왔던 것 같아요. 비용까지 내면서 참여를 하는 게 맞나? 싶었어요. 일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실질적으로 어떤 건지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고요. 그러다가 요리도 하고, 댄스 모임도 하는 걸 보면서 ‘아, 여기 들어가면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어서 멤버십을 신청한 거였어요.
효진: 그렇군요. 다음 시즌에 또 빵 모임을 열어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궁금한 건 이제 거의 다 여쭤봤는데요, 마지막으로 영경 님의 25년 하반기 계획을 여쭤봐도 될까요?
영경: 일단은 직장을 구해서 다시 임금노동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동안은 제가 일하는 나와 일하지 않는 나를 되게 분리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그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저와는 맞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어요. 일하지 않는 나도 나고, 일을 하는 나도 나니까, 두 자아를 분리하지 않고 완전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