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이 진행된 두 달 동안 슬랙에서, 또 오프라인 모임에서 제가 가장 자주 만난 워머스는 김주연 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일 각자의 자리에서 글을 쓰고 인증하는 '힢라이팅클럽' 슬랙 채널에서는 주연 님의 성실한 인증에 감탄했고, 빵 모임과 워머스 문화센터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주연 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어요.
누군가와 자주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궁금해지는 법이라, 8월의 커뮤니티 리포트를 준비하며 주연 님께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주연 님은 약 2년 간의 휴식 시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회사로의 입사를 앞두고 계셨어요. 입사 전까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즐기며 지냈다는 주연 님에게 그동안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어떤 이유로 새로운 회사에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는지, '옷장 구경' 모임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9월 2일, 주연 님이 '다시입다연구소'에 첫 출근을 하시는 날이네요. 이 인터뷰를 읽고 계신다면, 주연 님의 새출발을 힘껏 응원해 주세요.
효진: 주연 님, 요즘 어디에 시간을 제일 많이 쓰면서 지내세요?
주연: 제가 9월 2일 월요일부터 '다시입다연구소'라는 곳에 출근을 하게 됐어요. 그전까지 웬만하면 하고 싶은 걸 다 하자는 마음으로 북토크에도 참여하고, 뉴그라운드에서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효진: 입사 축하드려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실 예정인가요?
주연: 먼저 다시입다연구소에 관해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비영리 사단법인인 환경단체인데요, 대표님께서 의류 산업이 환경에 굉장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셔서 만든 회사예요. 사람들이 구매한 옷을 오래 입고, 고쳐서 입고, 자기가 안 입는 옷은 나눠 입을 수 있는 행사와 캠페인을 기획하는 곳이죠. 대표적인 행사로는 '21% 파티'가 있어요. 설문조사를 했을 때 '내 옷장에 있는 옷 중 안 입는 옷이 21%'라는 결과가 도출된 것에서 착안하여 만든 의류 교환 행사예요.
앞으로 '21% 클럽'이라는 홈페이지가 오픈될 예정인데요, 다시입다연구소에서 워크숍을 담당하시는 강사분들이 모여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해요. 저는 홈페이지 콘텐츠 관리를 한다거나,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눈여겨 보면서 강사분들이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 같아요.
"다시입다연구소와 아름다운가게가 콜라보했던 [아름다운X수선혁명] 전시회 때 찍은 사진이에요.
관객 참여형 전시도 있어서 바닥에 있는 조각난 천에 무릎을 꿇고 바느질하여 이곳을 지키는 수선 숲의 정령을 만들었답니다.
이날 이후로 다시입다연구소와 연이 닿아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효진: 지금까지 주연 님은 어떤 일들을 해오셨나요? 커리어 패스가 궁금해요.
주연: 제일 처음에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무역회사에서 일했어요. 원래는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어차피 네가 야간 수업을 들으니 오전, 오후 시간대에는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한번 배워봐라'라고 추천해 주셨거든요. 공장 쪽 회계 업무라거나 기술서, 계약서 번역 업무를 했었어요. 그러다 2년 반 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건 그만두고 중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내 꿈을 이뤘구나' 하는 성취감을 맛봤죠.
그런데 이 시기에 저희 어머니께서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어요. 아버지께서 어머니 곁에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제가 다시 아버지 회사 일을 맡아야 했어요. 대표이사 비서로 시작했다가 업무 영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조직 관리, 인사 총무 등까지 하게 된 거예요. 회계도요. 사실, 제가 수학을 굉장히 싫어했거든요. 매일 숫자를 다루면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자꾸 교사로서 수업을 했던 그 장면들이 저를 부르는 거예요. 고민 끝에 아버지께 '이 일은 마무리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는 무역회사에서는 퇴사하고 어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게 됐어요.
효진: 안 해본 일들을 계속 배우면서 업무 범위를 넓혀나가신 거네요. 주연 님은 새롭게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되면 빠르게 학습하시는 편인가 봐요.
주연: 파도가 덮쳤으면 거기에 올라타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웃음) 일이 주어졌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 일단 하자, 라는 마음이 컸고요. 실질적으로 저한테 도움을 주신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그분들이 세세하게 알려주시고 제가 실수할 때마다 다시 해보라고 기회를 주셨어요.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누구든 도와주시잖아요.
효진: 도움 요청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거든요. 자기가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그걸 인정하고, 남한테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럼 강사 일은 어느 정도 하신 건가요?
주연: 3년 정도 했는데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들까지 맡았어요. 유치원과 연결돼 있는 어학원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영어를 쉽게 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많이 연구했어요. 실제로 영어를 싫어했던 아이들이 영어를 좋아하게 되는 걸 보면서 '이게 정말 내 직업이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제가 영어를 가르치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제가 더 많이 배우거든요. 아이들이 저에게 쉽게 다가오고, 제가 주는 것보다 훨씬 큰 사랑을 주기도 하고요. 거기서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효진: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신 이유가 있을까요?
주연: 번아웃이 와서 일을 그만뒀어요. 학원에서 쉬는 날이 없었거든요. 연차를 쓸 수가 없고, 휴가도 아이들 방학에 맞춰서 나왔어요. 그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19 때였는데요, 제가 백신을 맞았다가 부작용 때문에 응급실까지 갈 정도로 되게 아팠어요. 그때 제가 저를 생각해야 하는데 '애들 수업 못 하는데,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먼저 들더라고요. 진료를 받고 다음 날 오전에 바로 출근해서 보충 수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곳의 시스템에서는 나를 돌볼 수가 없구나, 언제나 학생들이 우선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그만뒀죠. 그 이후로 저를 돌보는 시간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걸 많이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일로써 다음 세대를 좀 더 나은 지구에서 살 수 있게끔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효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실 수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그때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상이 바뀌기도 하셨겠어요.
주연: 맞아요. 우선 학원에서는 성적을 기준으로 아이들이 계급화돼요. 아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노력 자체로 인정받을 수가 없고 그냥 딱 숫자로만 성과가 측정된다는 게 좀 참담하더라고요. 또 동료 강사들끼리의 경쟁도 있었거든요. 저희끼리는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열심히 같이 걸어왔던 사이인데 아이들의 시험 성적이라는 기준 하나로 서로를 비교하게 되는 상황이 안타까웠어요. 나는 이런 경쟁 체제를 원했던 게 아닌데, 이 경쟁 체제를 가속하는 위치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퇴사를 하게 됐어요.
그렇게 커리어 패스를 만들어오면서 저의 일로 제가 더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임팩트 지향 조직을 계속 찾아다녔죠. 그러다 루트임팩트라는 회사에서 진행했던 '리부트캠프'에 참여하면서 다시입다연구소를 알게 된 거예요. 저 역시도 옷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의류 산업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일하면서 조금이라도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일으켜서 현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좀 더 나은 지구에서 살 수 있게끔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효진: 뉴그라운드 슬랙 'j-모임해요' 채널에서 '옷장 구경 모임'을 여셨잖아요. 그 모임 역시도 환경에 대한 주연 님의 관심에서 비롯된 기획일까요?
주연: 네, 제가 옷을 너무 좋아하니까 많이 샀거든요. 지금까지는 저한테 잘 안 맞거나 '예쁜 옷인데 누구라도 입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 친구들에게 나눠줬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나눠주는 데서 끝내는 게 아니라 옷에 담긴 자신만의 이야기들도 나누고,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입다연구소에서 여는 21% 파티처럼 저도 제 옷장을 열어서 워머스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희 집에 워머스분들을 초대하는 게 혹시 그분들께 부담이 될까요?
효진: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주연: 정말요? 워머스분들이 각자 애정하는 아이템을 들고 오셔서 거기 담긴 이야기들도 나눠보고, 서로 안 입는 옷들도 교환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이 모임을 좀 더 어필해 보자면(웃음) 여기 오시면 옷이나 아이템 중 하나라도 가져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뭔가를 가져가지 않더라도 그냥 서로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우리가 서로 끈끈해지는 게 정말 중요하겠구나 싶어요."
효진: 이번 시즌에 뉴그라운드에 처음 가입하셨는데 모임까지 여시다니 대단해요. 저는 주연 님이 뉴그라운드에 굉장히 빠르게 적응하고 계시다고 느끼는데요, 아직 두 달밖에 안 되긴 했지만 뉴그라운드에서 주연 님께 가장 재미있었거나 의미 있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주연: 다 좋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꼽기가 힘들어요. 전체적인 맥락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뉴그라운드 슬랙 채널 하나하나마다 코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힢라이팅클럽'은 글쓰기 코치, '워머스체육센터'는 운동 코치인 거죠.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함께 읽었던 워머스문화센터도 인상 깊었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각이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장을 보면서 '여기 오길 진짜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제가 뉴그라운드에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건 전혀 몰랐는데요, 효진 님 말을 듣고 돌이켜보니 뉴그라운드가 제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여기서 제 일로 건너가는 방법을 배웠듯이, 저는 다음 시즌에 다른 분들이 새로 들어오시면 다정하게 반기고 격하게 환영하면서 그분들이 뉴그라운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될 것 같아요.
효진: 앞으로 뉴그라운드에서 더 경험해 보고 싶은 활동도 있으세요?
주연: 지난번에 (신)인아 님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하셨던 토크 프로그램에 참석했었어요. 인아 님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느슨한 연대가 필요하지 않다고, 우리는 끈끈하고 끈덕지게 같이 뭉쳐서 굴러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확 와닿았거든요. 저도 느슨한 연결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우리가 서로 끈끈해지는 게 정말 중요하겠구나 싶어요. 9월 7일에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시는 분들 너무 멋지시고, 또 다른 워머스분들도 제가 너무 아끼고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싶어요.
효진: 주연 님, 요즘 어디에 시간을 제일 많이 쓰면서 지내세요?
주연: 제가 9월 2일 월요일부터 '다시입다연구소'라는 곳에 출근을 하게 됐어요. 그전까지 웬만하면 하고 싶은 걸 다 하자는 마음으로 북토크에도 참여하고, 뉴그라운드에서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효진: 입사 축하드려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을 하실 예정인가요?
주연: 먼저 다시입다연구소에 관해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비영리 사단법인인 환경단체인데요, 대표님께서 의류 산업이 환경에 굉장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셔서 만든 회사예요. 사람들이 구매한 옷을 오래 입고, 고쳐서 입고, 자기가 안 입는 옷은 나눠 입을 수 있는 행사와 캠페인을 기획하는 곳이죠. 대표적인 행사로는 '21% 파티'가 있어요. 설문조사를 했을 때 '내 옷장에 있는 옷 중 안 입는 옷이 21%'라는 결과가 도출된 것에서 착안하여 만든 의류 교환 행사예요.
앞으로 '21% 클럽'이라는 홈페이지가 오픈될 예정인데요, 다시입다연구소에서 워크숍을 담당하시는 강사분들이 모여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해요. 저는 홈페이지 콘텐츠 관리를 한다거나,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눈여겨 보면서 강사분들이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 같아요.
"다시입다연구소와 아름다운가게가 콜라보했던 [아름다운X수선혁명] 전시회 때 찍은 사진이에요.
관객 참여형 전시도 있어서 바닥에 있는 조각난 천에 무릎을 꿇고 바느질하여 이곳을 지키는 수선 숲의 정령을 만들었답니다.
이날 이후로 다시입다연구소와 연이 닿아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효진: 지금까지 주연 님은 어떤 일들을 해오셨나요? 커리어 패스가 궁금해요.
주연: 제일 처음에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무역회사에서 일했어요. 원래는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어차피 네가 야간 수업을 들으니 오전, 오후 시간대에는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한번 배워봐라'라고 추천해 주셨거든요. 공장 쪽 회계 업무라거나 기술서, 계약서 번역 업무를 했었어요. 그러다 2년 반 후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건 그만두고 중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내 꿈을 이뤘구나' 하는 성취감을 맛봤죠.
그런데 이 시기에 저희 어머니께서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어요. 아버지께서 어머니 곁에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제가 다시 아버지 회사 일을 맡아야 했어요. 대표이사 비서로 시작했다가 업무 영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조직 관리, 인사 총무 등까지 하게 된 거예요. 회계도요. 사실, 제가 수학을 굉장히 싫어했거든요. 매일 숫자를 다루면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자꾸 교사로서 수업을 했던 그 장면들이 저를 부르는 거예요. 고민 끝에 아버지께 '이 일은 마무리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는 무역회사에서는 퇴사하고 어학원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게 됐어요.
효진: 안 해본 일들을 계속 배우면서 업무 범위를 넓혀나가신 거네요. 주연 님은 새롭게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되면 빠르게 학습하시는 편인가 봐요.
주연: 파도가 덮쳤으면 거기에 올라타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웃음) 일이 주어졌는데 못할 게 뭐가 있어, 일단 하자, 라는 마음이 컸고요. 실질적으로 저한테 도움을 주신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그분들이 세세하게 알려주시고 제가 실수할 때마다 다시 해보라고 기회를 주셨어요.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누구든 도와주시잖아요.
효진: 도움 요청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거든요. 자기가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그걸 인정하고, 남한테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럼 강사 일은 어느 정도 하신 건가요?
주연: 3년 정도 했는데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들까지 맡았어요. 유치원과 연결돼 있는 어학원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영어를 쉽게 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많이 연구했어요. 실제로 영어를 싫어했던 아이들이 영어를 좋아하게 되는 걸 보면서 '이게 정말 내 직업이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제가 영어를 가르치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제가 더 많이 배우거든요. 아이들이 저에게 쉽게 다가오고, 제가 주는 것보다 훨씬 큰 사랑을 주기도 하고요. 거기서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효진: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그만두신 이유가 있을까요?
주연: 번아웃이 와서 일을 그만뒀어요. 학원에서 쉬는 날이 없었거든요. 연차를 쓸 수가 없고, 휴가도 아이들 방학에 맞춰서 나왔어요. 그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19 때였는데요, 제가 백신을 맞았다가 부작용 때문에 응급실까지 갈 정도로 되게 아팠어요. 그때 제가 저를 생각해야 하는데 '애들 수업 못 하는데,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먼저 들더라고요. 진료를 받고 다음 날 오전에 바로 출근해서 보충 수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곳의 시스템에서는 나를 돌볼 수가 없구나, 언제나 학생들이 우선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그만뒀죠. 그 이후로 저를 돌보는 시간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걸 많이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일로써 다음 세대를 좀 더 나은 지구에서 살 수 있게끔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효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실 수 있었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그때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상이 바뀌기도 하셨겠어요.
주연: 맞아요. 우선 학원에서는 성적을 기준으로 아이들이 계급화돼요. 아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노력 자체로 인정받을 수가 없고 그냥 딱 숫자로만 성과가 측정된다는 게 좀 참담하더라고요. 또 동료 강사들끼리의 경쟁도 있었거든요. 저희끼리는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열심히 같이 걸어왔던 사이인데 아이들의 시험 성적이라는 기준 하나로 서로를 비교하게 되는 상황이 안타까웠어요. 나는 이런 경쟁 체제를 원했던 게 아닌데, 이 경쟁 체제를 가속하는 위치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추구하는 교육의 가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퇴사를 하게 됐어요.
그렇게 커리어 패스를 만들어오면서 저의 일로 제가 더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임팩트 지향 조직을 계속 찾아다녔죠. 그러다 루트임팩트라는 회사에서 진행했던 '리부트캠프'에 참여하면서 다시입다연구소를 알게 된 거예요. 저 역시도 옷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의류 산업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일하면서 조금이라도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일으켜서 현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좀 더 나은 지구에서 살 수 있게끔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효진: 뉴그라운드 슬랙 'j-모임해요' 채널에서 '옷장 구경 모임'을 여셨잖아요. 그 모임 역시도 환경에 대한 주연 님의 관심에서 비롯된 기획일까요?
주연: 네, 제가 옷을 너무 좋아하니까 많이 샀거든요. 지금까지는 저한테 잘 안 맞거나 '예쁜 옷인데 누구라도 입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 친구들에게 나눠줬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나눠주는 데서 끝내는 게 아니라 옷에 담긴 자신만의 이야기들도 나누고,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입다연구소에서 여는 21% 파티처럼 저도 제 옷장을 열어서 워머스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희 집에 워머스분들을 초대하는 게 혹시 그분들께 부담이 될까요?
효진: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주연: 정말요? 워머스분들이 각자 애정하는 아이템을 들고 오셔서 거기 담긴 이야기들도 나눠보고, 서로 안 입는 옷들도 교환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이 모임을 좀 더 어필해 보자면(웃음) 여기 오시면 옷이나 아이템 중 하나라도 가져가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뭔가를 가져가지 않더라도 그냥 서로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우리가 서로 끈끈해지는 게 정말 중요하겠구나 싶어요."
효진: 이번 시즌에 뉴그라운드에 처음 가입하셨는데 모임까지 여시다니 대단해요. 저는 주연 님이 뉴그라운드에 굉장히 빠르게 적응하고 계시다고 느끼는데요, 아직 두 달밖에 안 되긴 했지만 뉴그라운드에서 주연 님께 가장 재미있었거나 의미 있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주연: 다 좋았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꼽기가 힘들어요. 전체적인 맥락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뉴그라운드 슬랙 채널 하나하나마다 코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힢라이팅클럽'은 글쓰기 코치, '워머스체육센터'는 운동 코치인 거죠.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함께 읽었던 워머스문화센터도 인상 깊었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각이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장을 보면서 '여기 오길 진짜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제가 뉴그라운드에 적응을 잘하고 있다는 건 전혀 몰랐는데요, 효진 님 말을 듣고 돌이켜보니 뉴그라운드가 제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여기서 제 일로 건너가는 방법을 배웠듯이, 저는 다음 시즌에 다른 분들이 새로 들어오시면 다정하게 반기고 격하게 환영하면서 그분들이 뉴그라운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될 것 같아요.
효진: 앞으로 뉴그라운드에서 더 경험해 보고 싶은 활동도 있으세요?
주연: 지난번에 (신)인아 님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하셨던 토크 프로그램에 참석했었어요. 인아 님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느슨한 연대가 필요하지 않다고, 우리는 끈끈하고 끈덕지게 같이 뭉쳐서 굴러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확 와닿았거든요. 저도 느슨한 연결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우리가 서로 끈끈해지는 게 정말 중요하겠구나 싶어요. 9월 7일에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시는 분들 너무 멋지시고, 또 다른 워머스분들도 제가 너무 아끼고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