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머스들의 자기소개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겨납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셨는지, 요즘 삶에서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최근 느꼈던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인지 등을 묻고 싶어요. 김예나 님의 자기소개를 읽을 때도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을 만나는 선생님으로 12년째 봉사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졌어요.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위해 줌에 접속한 예나 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현재 하고 계신 청소년 대상의 봉사 활동은 어떤 것인지, 일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변화는 무엇인지, 요즘 주로 어떤 음식을 해 드시는지, 지금보다 덜 바빠지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 등이요. 예나 님은 최근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고 하셨지만, 신기하게도 예나 님과 줌으로 만난 시간은 제게 여름 방학의 하루처럼 느껴졌습니다.
효진: 자기소개에 청소년들을 만나는 선생님으로 12년째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써주셨어요. 정확히 어떤 활동이길래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오실 수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예나: 가톨릭 교리 교사를 맡고 있어요. 교회도 성당도 학생들이 다니는 주일 학교가 있거든요. 거기서 교사로 봉사 활동을 하는 건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시작해서 어떻게 하다 보니 어느새 10년 넘게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교리 교사라고 해서 종교적인 이론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건 아니에요. 청소년 시기에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거나, 지금 사회에 중요한 이슈 같은 것을 소개하기도 해요. 최근에는 저의 개인적인 관심사이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이슈인 ‘환경’을 다루면서 육식을 권장하는 사회에서 한 끼 정도는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너희도 사실은 최애 채소가 하나씩 있지 않아?’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관련 활동을 이어 나가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고요.
결국 여기서 제가 하는 일은 애들이 일상을, 삶을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효진: ‘가르치면서 배우는 일’이라고도 표현하셨죠.
예나: 아이들과 만나는 것, 또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 안에서 계속 저 스스로를 새롭게 보게 되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이 활동 자체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 느껴요. 그래서 ‘가르치면서도 배운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고요, 이게 학교랑 비슷하기 때문에 1년을 놓고 보면 큰 주제나 중요한 행사들이 계속 반복된단 말이죠. 저는 10년 이상 이 일을 했으니 그것도 매해 반복한 거잖아요. 그런데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매년 프로그램을 진행하더라도, 아이들이 성장하고 저도 달라지고 함께 하는 교사들도 달라지니까 지루하다는 생각은 정말 한 번도 안 들었어요. 매번 너무 새로운 거예요. 아마 그래서 오래 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싶어요.
효진: 생각해 보면 본업도 하시면서, 추가로 내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활동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12년째 이어나가고 있다는 건 확실히 이 활동을 통해 얻는 게 활동의 어려움 같은 걸 상쇄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겠네요. 다른 한편으로, 이런 것도 있을까요? 청소년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같이 무언가를 해보자고 권하려면, 내 생활이나 삶도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가야 하잖아요. 그 부분을 좀 더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기도 하나요?
예나: 저는 딱 대답할 수 있어요. 이 활동은 제가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게 해요. 물론 좋은 어른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것이지만, 어쨌든 제 기준안에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게끔 하고 건강한 생각을 하고 싶게 만들어요. 나 혼자 어떤 정보를 접해서 ‘내가 이걸 잘 지켜야지, 실천해 봐야지’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한테 또 전달하게 되는 거잖아요. 이 활동을 하다 보니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요.
그리고 어른들이 가끔은 청소년을 대상화하며 바라보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청소년들과 매주 가깝게 만나다 보면 어른과 청소년이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하는 고민을 지금 저도 똑같이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도 배운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아이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어른들은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걸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그렇게 느낄 수도 있구나’라고 깨닫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더욱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효진: 본업은 어떠세요? 다양한 기획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예나: 저는 실내 건축학을 전공했고, 회사도 관련 계열로 오게 되었어요. 도시 건축, 주거, 지역 관련 사업을 많이 하는 회사예요. ‘기획’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걸 일하면서 많이 느끼는데요, 제가 하는 일을 보면 어떨 때는 갑자기 플라스틱 병 뚜껑을 모으기도 하고, 파주에 장단콩을 취재하러 다닐 때도 있었어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해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한다거나 전시나 강연, 북토크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하고요. 또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공유 주택이 있어서 그곳을 직접 관리하기도 하고, 동네 하나를 정해서 박물관과 함께 지역 연구를 하기도 하죠.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효진: 본업에서도 지루해질 틈 없는 방식으로 일하고 계시네요.
예나: 맞아요. 말하고 나니 그렇네요.
효진: 자기소개에 ‘일에 있어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라고도 써주셨잖아요. 그건 어떤 생각인 건가요?
예나: 그게 뉴그라운드 멤버십을 신청한 이유와도 좀 연결이 되어 있어요. 이번에 인터뷰 요청을 받고, ‘내가 뉴그라운드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더라?’ 싶어서 뉴그라운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예전 것까지 살펴봤거든요. 2021년 후반부터 제가 봐왔던 게시물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주어진 업무에 적응하기가 바빴어요. ‘일을 회고한다… 근데 내가 회고할 일이 있나?’라고 생각했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회사에서 했던 일이 무엇인지 정리할 필요를 느꼈고, 그때 바로 뉴그라운드가 떠올라서 멤버십에 가입한 거예요. 일하는 방식이 정말 다양하게 펼쳐지는 시대라는 걸 쏟아지는 개인 채널들을 통해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싶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면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실은 제가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성향이라 이런 커뮤니티도 처음이고 그래서 아직은 낯선데요, 필요가 성향을 이겼다고 봐야죠. (웃음)
효진: 정말 신기해요. 2021년에 뉴그라운드를 처음 알게 되셨는데 그사이에 예나 님은 더 많은 경력을 쌓으셨고, 다행히 뉴그라운드도 사라지지 않았고... (웃음) 뉴그라운드에 가입하신 김에, 여기서 어떤 주제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거나 어떤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상상도 해보셨나요?
예나: 예전에 개인적으로 ‘봄풀 잔치’라는 모임을 연 적이 있어요. 향긋한 봄나물들이 많이 나왔을 때인데, 1인 가구인 저 혼자만 그걸 즐기기엔 아쉬워서 친구랑 조그맣게 점심을 해먹은 모임이었거든요. 원래 제가 맺고 있던 관계 안에서 열었던 거라 뉴그라운드 같은 커뮤니티 안에서는 제가 어떤 걸 제안할 수 있을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새로운 모임을 뭔가 열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도 있고요. 제가 사람들이 모이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직접 계획을 짜놓고 정해 놓은 시간과 정해 놓은 장소에서 뭔가를 하는 건 좋아하거든요. 친구들은 이런 저를 모순적이라고 보기는 하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 어떻게 그런 모임은 막 열고 그래?’ 이렇게요.
효진: 여름에도 제철 재료가 많이 나잖아요. 최근에는 어떤 재료를 이용해서 요리하셨나요?
예나: 가지요. 제철 가지는 한 바구니에 많이 담아서 팔잖아요. 한 번에 많은 양이 생기니까 걔를 다 먹기 좋게 잘라서 절여놨어요. 식초랑 간장 베이스로 절임 액을 만들어서요. 가지절임을 해놓으면 마음이 든든해요. 여름 메뉴로 면만 호록 삶아서 가지를 얹어 먹어도 맛있고, 그냥 반찬처럼 먹어도 맛있어요. 말하다 보니 약간 침이 고이네요.
효진: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다 보면 요리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예나 님은 어떻게 음식을 직접 해 드세요?
예나: 저는 거의 다 만들어 먹는 것 같아요. 배달시켜 먹은 적이 인생을 통틀어봐도 거의 없어요. 제가 본가에서 독립한 지 이제 막 1년이 됐거든요. 그동안 사계절을 겪으면서 내가 음식을 얼마나 해 먹는지, 집에 오면 컨디션이 어떤지 이런 것들을 파악해 왔는데 살펴보니 장 보는 것, 음식을 해 먹는 것, 정리하는 것에 시간을 많이 쓰더라고요. 재료 손질부터 먹기, 정리하기까지가 전부 요리 과정이잖아요. 가끔은 ‘내가 음식을 해 먹는 데 이만큼의 시간을 써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다른 여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루틴화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효진: 그럼 다른 여가 시간에는 주로 뭘 하시나요?
예나: 앎에 대한 욕심이 있다 보니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책 자체에 대한 욕심도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책을 읽는 거랑은 별개로 곁에 두기만 하고, 책등만 보고 약간 읽는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지내기도 해요.
최근에는 동네 서점과 함께하는 큐레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거든요. 연남동에 ‘책방 밀물’이라는 서점이 있는데, 거기서 몇 명이 모여 책장 한 칸을 조그맣게 큐레이션 해보는 거였어요. 제가 소개한 건 <걷기 예찬>이라는 책이에요. 2년 전에 그 책을 처음 읽었는데, 다시 읽어 보니 ‘삶을 어떻게 걸어 나갈 것인가’라는 이야기로 다가오더라고요. 곁에 두고 읽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 읽으면 좋은 책인 것 같아요.
효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실제로는 너무 더워서 걷기 어려운 시기이지만, 여름은 왠지 느슨하게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분위기의 계절이기도 하니까요.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바쁜 일정이 조금 정리되면 어떻게 남은 여름을 보내고 싶으세요?
예나: 독립을 한 후로, 온전히 혼자 있는 게 저한테는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엄마가 ‘가족이랑 살 때도 너 혼자 방에 있었는데 뭘 또 혼자 살려고 하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방에는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잖아요. 누군가 예측 불가능하게 제 공간에 들어오지 않고, 갑자기 어떤 자극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끼는데요, 사실 요즘은 그런 시간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집에 오롯이 혼자 있으면서 책도 읽으며 쉬고 싶어요. 여름이라 음식을 해 먹는 것도 최대한 에너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여유가 생기면 재료를 더 늘어놓고 긴 시간 동안 여유롭게 요리하면서 저를 잘 먹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효진: 자기소개에 청소년들을 만나는 선생님으로 12년째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써주셨어요. 정확히 어떤 활동이길래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오실 수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예나: 가톨릭 교리 교사를 맡고 있어요. 교회도 성당도 학생들이 다니는 주일 학교가 있거든요. 거기서 교사로 봉사 활동을 하는 건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시작해서 어떻게 하다 보니 어느새 10년 넘게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교리 교사라고 해서 종교적인 이론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건 아니에요. 청소년 시기에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거나, 지금 사회에 중요한 이슈 같은 것을 소개하기도 해요. 최근에는 저의 개인적인 관심사이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이슈인 ‘환경’을 다루면서 육식을 권장하는 사회에서 한 끼 정도는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너희도 사실은 최애 채소가 하나씩 있지 않아?’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관련 활동을 이어 나가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고요.
결국 여기서 제가 하는 일은 애들이 일상을, 삶을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효진: ‘가르치면서 배우는 일’이라고도 표현하셨죠.
예나: 아이들과 만나는 것, 또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 안에서 계속 저 스스로를 새롭게 보게 되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이 활동 자체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 느껴요. 그래서 ‘가르치면서도 배운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고요, 이게 학교랑 비슷하기 때문에 1년을 놓고 보면 큰 주제나 중요한 행사들이 계속 반복된단 말이죠. 저는 10년 이상 이 일을 했으니 그것도 매해 반복한 거잖아요. 그런데 같은 주제를 가지고 매년 프로그램을 진행하더라도, 아이들이 성장하고 저도 달라지고 함께 하는 교사들도 달라지니까 지루하다는 생각은 정말 한 번도 안 들었어요. 매번 너무 새로운 거예요. 아마 그래서 오래 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싶어요.
효진: 생각해 보면 본업도 하시면서, 추가로 내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활동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12년째 이어나가고 있다는 건 확실히 이 활동을 통해 얻는 게 활동의 어려움 같은 걸 상쇄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겠네요. 다른 한편으로, 이런 것도 있을까요? 청소년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같이 무언가를 해보자고 권하려면, 내 생활이나 삶도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가야 하잖아요. 그 부분을 좀 더 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되기도 하나요?
예나: 저는 딱 대답할 수 있어요. 이 활동은 제가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게 해요. 물론 좋은 어른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것이지만, 어쨌든 제 기준안에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게끔 하고 건강한 생각을 하고 싶게 만들어요. 나 혼자 어떤 정보를 접해서 ‘내가 이걸 잘 지켜야지, 실천해 봐야지’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한테 또 전달하게 되는 거잖아요. 이 활동을 하다 보니 더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요.
그리고 어른들이 가끔은 청소년을 대상화하며 바라보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청소년들과 매주 가깝게 만나다 보면 어른과 청소년이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하는 고민을 지금 저도 똑같이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도 배운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아이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어른들은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걸 너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그렇게 느낄 수도 있구나’라고 깨닫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더욱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효진: 본업은 어떠세요? 다양한 기획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예나: 저는 실내 건축학을 전공했고, 회사도 관련 계열로 오게 되었어요. 도시 건축, 주거, 지역 관련 사업을 많이 하는 회사예요. ‘기획’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걸 일하면서 많이 느끼는데요, 제가 하는 일을 보면 어떨 때는 갑자기 플라스틱 병 뚜껑을 모으기도 하고, 파주에 장단콩을 취재하러 다닐 때도 있었어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해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한다거나 전시나 강연, 북토크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하고요. 또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공유 주택이 있어서 그곳을 직접 관리하기도 하고, 동네 하나를 정해서 박물관과 함께 지역 연구를 하기도 하죠.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효진: 본업에서도 지루해질 틈 없는 방식으로 일하고 계시네요.
예나: 맞아요. 말하고 나니 그렇네요.
효진: 자기소개에 ‘일에 있어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라고도 써주셨잖아요. 그건 어떤 생각인 건가요?
예나: 그게 뉴그라운드 멤버십을 신청한 이유와도 좀 연결이 되어 있어요. 이번에 인터뷰 요청을 받고, ‘내가 뉴그라운드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더라?’ 싶어서 뉴그라운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예전 것까지 살펴봤거든요. 2021년 후반부터 제가 봐왔던 게시물들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주어진 업무에 적응하기가 바빴어요. ‘일을 회고한다… 근데 내가 회고할 일이 있나?’라고 생각했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회사에서 했던 일이 무엇인지 정리할 필요를 느꼈고, 그때 바로 뉴그라운드가 떠올라서 멤버십에 가입한 거예요. 일하는 방식이 정말 다양하게 펼쳐지는 시대라는 걸 쏟아지는 개인 채널들을 통해서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싶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면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실은 제가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는 성향이라 이런 커뮤니티도 처음이고 그래서 아직은 낯선데요, 필요가 성향을 이겼다고 봐야죠. (웃음)
효진: 정말 신기해요. 2021년에 뉴그라운드를 처음 알게 되셨는데 그사이에 예나 님은 더 많은 경력을 쌓으셨고, 다행히 뉴그라운드도 사라지지 않았고... (웃음) 뉴그라운드에 가입하신 김에, 여기서 어떤 주제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거나 어떤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상상도 해보셨나요?
예나: 예전에 개인적으로 ‘봄풀 잔치’라는 모임을 연 적이 있어요. 향긋한 봄나물들이 많이 나왔을 때인데, 1인 가구인 저 혼자만 그걸 즐기기엔 아쉬워서 친구랑 조그맣게 점심을 해먹은 모임이었거든요. 원래 제가 맺고 있던 관계 안에서 열었던 거라 뉴그라운드 같은 커뮤니티 안에서는 제가 어떤 걸 제안할 수 있을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새로운 모임을 뭔가 열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도 있고요. 제가 사람들이 모이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직접 계획을 짜놓고 정해 놓은 시간과 정해 놓은 장소에서 뭔가를 하는 건 좋아하거든요. 친구들은 이런 저를 모순적이라고 보기는 하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 어떻게 그런 모임은 막 열고 그래?’ 이렇게요.
효진: 여름에도 제철 재료가 많이 나잖아요. 최근에는 어떤 재료를 이용해서 요리하셨나요?
예나: 가지요. 제철 가지는 한 바구니에 많이 담아서 팔잖아요. 한 번에 많은 양이 생기니까 걔를 다 먹기 좋게 잘라서 절여놨어요. 식초랑 간장 베이스로 절임 액을 만들어서요. 가지절임을 해놓으면 마음이 든든해요. 여름 메뉴로 면만 호록 삶아서 가지를 얹어 먹어도 맛있고, 그냥 반찬처럼 먹어도 맛있어요. 말하다 보니 약간 침이 고이네요.
효진: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다 보면 요리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예나 님은 어떻게 음식을 직접 해 드세요?
예나: 저는 거의 다 만들어 먹는 것 같아요. 배달시켜 먹은 적이 인생을 통틀어봐도 거의 없어요. 제가 본가에서 독립한 지 이제 막 1년이 됐거든요. 그동안 사계절을 겪으면서 내가 음식을 얼마나 해 먹는지, 집에 오면 컨디션이 어떤지 이런 것들을 파악해 왔는데 살펴보니 장 보는 것, 음식을 해 먹는 것, 정리하는 것에 시간을 많이 쓰더라고요. 재료 손질부터 먹기, 정리하기까지가 전부 요리 과정이잖아요. 가끔은 ‘내가 음식을 해 먹는 데 이만큼의 시간을 써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다른 여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루틴화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효진: 그럼 다른 여가 시간에는 주로 뭘 하시나요?
예나: 앎에 대한 욕심이 있다 보니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책 자체에 대한 욕심도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책을 읽는 거랑은 별개로 곁에 두기만 하고, 책등만 보고 약간 읽는 듯한 착각을 느끼면서 지내기도 해요.
최근에는 동네 서점과 함께하는 큐레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거든요. 연남동에 ‘책방 밀물’이라는 서점이 있는데, 거기서 몇 명이 모여 책장 한 칸을 조그맣게 큐레이션 해보는 거였어요. 제가 소개한 건 <걷기 예찬>이라는 책이에요. 2년 전에 그 책을 처음 읽었는데, 다시 읽어 보니 ‘삶을 어떻게 걸어 나갈 것인가’라는 이야기로 다가오더라고요. 곁에 두고 읽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 읽으면 좋은 책인 것 같아요.
효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실제로는 너무 더워서 걷기 어려운 시기이지만, 여름은 왠지 느슨하게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분위기의 계절이기도 하니까요.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바쁜 일정이 조금 정리되면 어떻게 남은 여름을 보내고 싶으세요?
예나: 독립을 한 후로, 온전히 혼자 있는 게 저한테는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엄마가 ‘가족이랑 살 때도 너 혼자 방에 있었는데 뭘 또 혼자 살려고 하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방에는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잖아요. 누군가 예측 불가능하게 제 공간에 들어오지 않고, 갑자기 어떤 자극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끼는데요, 사실 요즘은 그런 시간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집에 오롯이 혼자 있으면서 책도 읽으며 쉬고 싶어요. 여름이라 음식을 해 먹는 것도 최대한 에너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여유가 생기면 재료를 더 늘어놓고 긴 시간 동안 여유롭게 요리하면서 저를 잘 먹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