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모임을 만들 수도 있고, 모임에 참여만 할 수도 있고, 슬랙에 글을 올릴 수도 있고, 슬랙에서 댓글을 달거나 이모지를 누를 수도 있지요. 서민주 님은 그 중 '연결'하는 활동을 다양하게 해오신 분입니다. 슬랙에 '혹시 000 분야에 아는 분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올라오면, 그 아래에는 어김없이 민주 님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마침,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하고 조금 여유가 생기신 것 같은 민주 님께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연결'을 잘할 수 있는지, 그것이 자신이 잘하는 일임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회사와 퇴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연결, 달리기, 박수(?), 좋은 대화까지 쭉쭉 뻗어나갔습니다.
효진: 민주 님, 지금 퇴사하신 지 한 달 정도 되신 건가요?
민주: 한 달 하고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아요.
효진: 전 회사에 9년 정도 다녔다고 하셨죠? 민주 님이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이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처음 들어가서 9년이나 다녔던 조직에서 나온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어요.
민주: 2015년에 입사했으니까 햇수로 치면 9년 정도고, 실제로는 8년이 조금 넘은 것 같네요. 정말 회사가 저의 20대와 모든 것을 함께 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인턴으로 그 회사에 입사했고, 학교도 회사에 다니면서 졸업했거든요. 인생에서 좀 큰 일들이나 오래 만나는 사람들도 회사에서 경험한 경우들이 많고요. 그래서 퇴사하면서 기분이 좀 싱숭생숭했어요. 장기연애를 끝낸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슬픈 건 아니고, 깨끗한 마음으로 정리한 것 같아요.
효진: 회사에 다닐 때는 어떤 업무들을 주로 하셨어요? 원래 마케터셨던 거죠?
민주: 맞아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크리에이터들과 광고, 콘텐츠 제작 파트너십 업무를 하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저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어요. 크리에이터분들을 통해서 우리 브랜드를 알리고, 또 우리 브랜드만이 갖고 있는 자체적인 채널이나 마케팅 프로젝트를 하면서 회사를 알리는 일이었죠.
그런데 아무래도 한 회사에 9년 정도 다니다 보니 여러 일들을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었어요. 파트너십 매니저도 해보고, 콘텐츠 제작팀에서도 일해보고. 그러다 브랜드 마케터로 졸업한 거예요.
효진: 일하셨던 시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뭘까요? 민주 님께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경험을 듣고 싶어요.
민주: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제가 혼자 하는 일보다는 같이 하는 일을 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와 동료들이 촬영차 독도에 간 적이 한 번 있었어요. 독도가 가기 굉장히 어려운 곳이거든요. 강릉에서 울릉도를 거쳤다가 울릉도에서 다시 독도로 이동해야 하는데, 거기가 기상 변화가 심해요. 그러다 보니 촬영을 세 번이나 ‘빠꾸’ 먹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독도에 갔거든요. 그때 높은 곳에 올라가서 독도 풍경을 보는데 너무너무 아름답더라고요. 독도 자체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그걸 찍으려고 다 같이 열심히 노력했던 동료들과 그 과정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무슨 독도 수비대도 아닌데. (웃음)
혼자 일을 잘하거나, 혼자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도 물론 뿌듯함이 있겠지만 낮은 산이라도 다 같이 올라가서 다 같이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거, 그런 게 제가 원하는 일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던 것 같아요.
"‘연결’이라는 것은 제가 시니어로서
조금 성장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자 기쁨인 것 같아요."
효진: 그렇게 의미 있는 깨달음을 준 회사를 그만두신 거군요. 지난 시즌 마무리 오프라인 밋업 때 퇴사를 했으니 좀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일이나 활동에 관심이 있으세요?
민주: 저는 몸을 쓰면서 일해보고 싶어요. 일단 마케터로 일할 때는, 아무래도 콘텐츠 회사였다 보니 사람들을 온라인으로밖에 만나지 못하거든요. 온라인에 있는 콘텐츠나 크리에이터의 팬들이 댓글을 남기거나 리액션을 하는 거죠.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직접 만나면서 이 사람들이 이걸 왜 사려고 하는지, 혹은 왜 이걸 경험해 보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동안 온라인으로 내 업무 경험이 치우쳐있었다면, 이걸 오프라인으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또 다른 차원에서는, 몸으로 쓸 수 있는 기술이 없는 경우에는 컴퓨터나 아이패드만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잖아요. 마케터도 누군가 나를 고용해서 ‘이걸 대신 팔아줘’, ‘이렇게 이야기 해줘’라는 미션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죠. 그러니 제가 고용되지 않은 상태에 놓이거나, 혹은 갑자기 인터넷이 끊기거나 접속할 수 있는 기기가 사라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예요. 이 부분이 해소되지 않으니까 스스로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나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나 무슨 일을 잘할 수 있지?
그래서 더더욱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은 건데요, 개인적으로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영화관도 좋고요. 요즘 또 집안일에 꽂혀있기 때문에 청소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고요. 몸을 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효진: 최근 주변에서 정직하게 몸 쓰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꽤 계시더라고요. 저는 몇 년 전부터 커뮤니티에서 민주 님을 보면서, ‘민주 님은 연결하는 일을 잘하시는구나’라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브랜딩이 필요한 친구와 디자인 스튜디오를 연결한다거나, 구인 중인 회사에 사람을 소개해 준다거나 하는 일들을 하시더라고요. 슬랙에서도 댓글을 자주 달아주시고요. 민주 님 스스로는 연결하는 일을 잘 한다는 걸 알고 계시는지 궁금했어요. 어떠세요?
민주: 저는 이 질문을 받고 ‘이게 내가 잘하는 일인가?’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그냥 오지랖이 넓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웃음) 질문을 받고 고민해봤는데, 일단 제 주변에 있는 여성 동료들이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 멋있어요. 저도 다음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회사 상황이나 제 상황이 있으니까, 바로 그분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보석함처럼 기억하고 있다가 누가 ‘혹시 이런 분 아세요?’라고 질문하면 ‘너무 멋있는 사람이 여기 있어요’라고 추천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뉴그라운드에 처음 가입했을 때는 제 경력이 그렇게 길지 않았어요. ‘연결’이라는 것은 제가 시니어로서 조금 성장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자 기쁨인 것 같기는 해요. 이제서야 저도 뉴그라운드에서 다른 분들을 서로 연결해 드리고, 어떤 판을 작게나마 벌려드릴 수 있는 위치가 된 건가 싶기도 해서 조금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효진: 그러고 보니 뉴그라운드가 2021년에 문을 열었고, 지금 2024년이니까 시간이 꽤 흘렀네요. 민주 님이 그 사이에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성장했다고 말씀하시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져요.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달리기를 열심히 하시는 것 같던데, 오래 하셨나요?
민주: 진짜 꾸준히 했었던 것 같아요. 7~8년 정도? 그런데 잘 뛰지는 못해요. 꾸준히 하는 것과 잘하는 건 다르잖아요. 개인적으로 달리는 행위를 좋아해서 하기는 하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뛰거나 하프를 완주하거나, 기록을 경신하는 방식으로 뛰고 있지는 않고요.
효진: 제일 처음에 달리기를 시작했던 게 분노 때문이었다고 ‘워머스체육센터’ 채널에서 알려주셨잖아요. 그때 너무 힘들어서 뛰다가 분노가 잊혀졌다고도 말씀하셨죠. (웃음) 그렇게 힘들면 보통 달리기를 지속하지 않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7~8년을 뛸 수 있으셨나요?
민주: 그때는 매일매일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는 어떤 마음이 있었어요. 그때 회사랑 집이 한강대교 부근에 있었는데, 한강대교가 1km 조금 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거기를 뛰기 시작한 거죠. 한강대교를 뛰면서 ‘맞아, 되게 하기 어려운 일인 것처럼 보여도 이렇게 조금씩 뛰다 보면 예상보다 빨리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루틴처럼 되어서 달리기를 지속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효진: 달리기는 민주 님께 건강을 위한 활동인가요, 즐거움의 영역인가요?
민주: 즐거움의 영역인데요, 달리기가 정신 건강에 되게 좋은 것 같기는 해요. 달리면서 집중을 해야 하잖아요. 특히 밖에서 달리면 앞에 사람이 오는지, 밑에 뭐가 있는지, 지금 내가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는 않은지를 계속 생각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잡생각들이 사라져요. 어느샌가 상쾌함만이 남는 거죠. 달리기가 끝나고 나면 평온함을 느끼는 거, 그런 게 제가 생각하는 달리기의 장점이에요.
효진: 민주 님의 자기소개에서 ‘건강’에 관심이 많다고 써주신 것이 기억나요. 달리기 외에 건강을 위해서 하고 계신 활동이 있나요?
민주: 제가 건강에 관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 몸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2022년도쯤 발목 인대가 진짜 크게 파열돼서 좋은 선생님들을 찾아다닌 적이 있거든요. 그때 선생님께서 제 다리를 보면서 남들은 평지에 서서 생활한다고 치면, 저는 항상 비탈길에 서 있는 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 남들보다 더 잘 다칠 수밖에 없고, 위험한 운동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거죠. 어떤 운동을 해도 근육 발달 속도가 느릴 거라는 얘기도요.
그 얘기를 들은 순간 엄청 ‘멘붕’이 왔어요. 왜냐하면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해 왔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왜 내 몸이 이렇게 좋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선생님과 얘기도 나누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다른 사람 몸과 내 몸을 바꿀 수도 없고, 어쨌든 내가 이 몸에서 점점 나아가는 거긴 하잖아요. 내가 내 몸을 미워하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지금 여기가 별로 안 좋구나, 지금은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구나. 하지만 괜찮아. 오늘은 딱 여기까지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니까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 것 같아요.
효진: 민주 님이 커뮤니티에서는 어디가 다쳤다거나, 안 좋다거나 하는 말씀을 거의 안 하셔서 그런 경험이 있으신 줄 전혀 몰랐어요. ‘건강’하니까 또 민주 님이 ‘박수 크게 치기가 특기’라고 말씀하셨던 게 떠오르는데요, 황수관 박사님 때문일까요…? 어쩐지 건강과 박수를 연결하게 되는데, ‘박수 크게 치기’가 특기인 걸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웃음)
민주: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어느 순간 모두가 다 같이 박수를 쳐야 되는 타이밍에 박수를 치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제 쪽을 돌아보는 시선을 느낀 적이 있어요. 그때 ‘내 박수 소리가 커서 조금 시끄럽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가 굉장히 차가운 경상도 분이시거든요. 제가 박수를 칠 때마다 유달리 ‘민주야, 느무 시끄럽다’라는 말씀을 몇 번 하시더라고요.
박수를 크게 치는 비법은… 오늘 인터뷰 시작 전에 박수를 여러 번 쳐봤거든요. 손바닥을 다 펴면 안 되고, 중간을 약간 오목하게 만들어서 공간을 살려서 쳐야 소리가 크게 나요.
효진: 그렇죠, 그렇죠. 공간감이 있어야 하는 거네요. 그러고 보니 토요일에 진행하는 달리기와 맥주 모임에 (박)해주 님도, 연두 님, 민주 님도 오시고 저도 가니까, 드디어 박수 소리 대결이 성사될 수 있겠어요. (주: 네 사람은 이번 시즌 웰컴데이 때 박수 크게 치는 것을 서로 자랑한 적이 있다.)
민주: 연습해야겠어요. (웃음)
"어떤 방향으로든 마음을 나아가게 하는 것,
그런 게 좋은 대화들이었던 것 같아요."
효진: 자기소개에 ‘좋은 대화’에도 관심이 많다고 써주셨어요. 민주 님은 어떨 때 좋은 대화를 했다고 느끼시나요?
민주: 요즘 퇴사를 하고 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거든요.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좋았다’고 느껴진 기억들을 돌이켜 보면, 어떤 방향으로든 마음을 나아가게 하는 대화들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은 뭐가 맛있대, 어떤 음식이 제철이래’라는 대화를 나누고 나면 집에 가서 ‘그거 사 먹어야지’ 하게 되고, 실제로 그걸로 저녁에 요리를 하게 되거나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소소하지만 내가 새롭게 마음을 먹게 하거나, 아니면 이미 내가 갖고 있던 마음이지만 조금 걱정하거나 불안했던 부분들을 인정하고 나아가게 하는 그런 대화들, 그런 게 요즘은 좀 좋은 대화라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효진: 그럼 민주 님 스스로 ‘좋은 대화’를 만들기 위해 신경 쓰시는 부분도 있을까요?
민주: 퇴사를 하고 깨달은 부분인데요, 집중하면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집중한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거든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어도 회사에서 슬랙 메시지가 오거나, 업무적인 연락이 오거나, 회사에 이슈나 리스크가 생기면 휴일에 관계 없이 무조건 모니터링을 해야 했으니까요. 이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피로함을 느끼고, 사람을 만나도 신경을 나눠서 한쪽은 일에 투입하고 있었던 시간이 많았는데요,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정말 좀 깨끗하게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어요.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많이 깨닫고 있어요.
효진: 민주 님, 지금 퇴사하신 지 한 달 정도 되신 건가요?
민주: 한 달 하고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아요.
효진: 전 회사에 9년 정도 다녔다고 하셨죠? 민주 님이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이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처음 들어가서 9년이나 다녔던 조직에서 나온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어요.
민주: 2015년에 입사했으니까 햇수로 치면 9년 정도고, 실제로는 8년이 조금 넘은 것 같네요. 정말 회사가 저의 20대와 모든 것을 함께 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인턴으로 그 회사에 입사했고, 학교도 회사에 다니면서 졸업했거든요. 인생에서 좀 큰 일들이나 오래 만나는 사람들도 회사에서 경험한 경우들이 많고요. 그래서 퇴사하면서 기분이 좀 싱숭생숭했어요. 장기연애를 끝낸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슬픈 건 아니고, 깨끗한 마음으로 정리한 것 같아요.
효진: 회사에 다닐 때는 어떤 업무들을 주로 하셨어요? 원래 마케터셨던 거죠?
민주: 맞아요. 제가 다녔던 회사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크리에이터들과 광고, 콘텐츠 제작 파트너십 업무를 하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저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어요. 크리에이터분들을 통해서 우리 브랜드를 알리고, 또 우리 브랜드만이 갖고 있는 자체적인 채널이나 마케팅 프로젝트를 하면서 회사를 알리는 일이었죠.
그런데 아무래도 한 회사에 9년 정도 다니다 보니 여러 일들을 두루두루 경험할 수 있었어요. 파트너십 매니저도 해보고, 콘텐츠 제작팀에서도 일해보고. 그러다 브랜드 마케터로 졸업한 거예요.
효진: 일하셨던 시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뭘까요? 민주 님께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경험을 듣고 싶어요.
민주: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제가 혼자 하는 일보다는 같이 하는 일을 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저와 동료들이 촬영차 독도에 간 적이 한 번 있었어요. 독도가 가기 굉장히 어려운 곳이거든요. 강릉에서 울릉도를 거쳤다가 울릉도에서 다시 독도로 이동해야 하는데, 거기가 기상 변화가 심해요. 그러다 보니 촬영을 세 번이나 ‘빠꾸’ 먹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독도에 갔거든요. 그때 높은 곳에 올라가서 독도 풍경을 보는데 너무너무 아름답더라고요. 독도 자체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그걸 찍으려고 다 같이 열심히 노력했던 동료들과 그 과정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무슨 독도 수비대도 아닌데. (웃음)
혼자 일을 잘하거나, 혼자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을 해도 물론 뿌듯함이 있겠지만 낮은 산이라도 다 같이 올라가서 다 같이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거, 그런 게 제가 원하는 일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던 것 같아요.
"‘연결’이라는 것은 제가 시니어로서
조금 성장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자 기쁨인 것 같아요."
효진: 그렇게 의미 있는 깨달음을 준 회사를 그만두신 거군요. 지난 시즌 마무리 오프라인 밋업 때 퇴사를 했으니 좀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일이나 활동에 관심이 있으세요?
민주: 저는 몸을 쓰면서 일해보고 싶어요. 일단 마케터로 일할 때는, 아무래도 콘텐츠 회사였다 보니 사람들을 온라인으로밖에 만나지 못하거든요. 온라인에 있는 콘텐츠나 크리에이터의 팬들이 댓글을 남기거나 리액션을 하는 거죠.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직접 만나면서 이 사람들이 이걸 왜 사려고 하는지, 혹은 왜 이걸 경험해 보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동안 온라인으로 내 업무 경험이 치우쳐있었다면, 이걸 오프라인으로 옮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또 다른 차원에서는, 몸으로 쓸 수 있는 기술이 없는 경우에는 컴퓨터나 아이패드만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잖아요. 마케터도 누군가 나를 고용해서 ‘이걸 대신 팔아줘’, ‘이렇게 이야기 해줘’라는 미션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죠. 그러니 제가 고용되지 않은 상태에 놓이거나, 혹은 갑자기 인터넷이 끊기거나 접속할 수 있는 기기가 사라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예요. 이 부분이 해소되지 않으니까 스스로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나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나 무슨 일을 잘할 수 있지?
그래서 더더욱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은 건데요, 개인적으로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영화관도 좋고요. 요즘 또 집안일에 꽂혀있기 때문에 청소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고요. 몸을 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효진: 최근 주변에서 정직하게 몸 쓰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꽤 계시더라고요. 저는 몇 년 전부터 커뮤니티에서 민주 님을 보면서, ‘민주 님은 연결하는 일을 잘하시는구나’라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브랜딩이 필요한 친구와 디자인 스튜디오를 연결한다거나, 구인 중인 회사에 사람을 소개해 준다거나 하는 일들을 하시더라고요. 슬랙에서도 댓글을 자주 달아주시고요. 민주 님 스스로는 연결하는 일을 잘 한다는 걸 알고 계시는지 궁금했어요. 어떠세요?
민주: 저는 이 질문을 받고 ‘이게 내가 잘하는 일인가?’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그냥 오지랖이 넓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웃음) 질문을 받고 고민해봤는데, 일단 제 주변에 있는 여성 동료들이 제가 생각하기에 너무 멋있어요. 저도 다음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회사 상황이나 제 상황이 있으니까, 바로 그분들과 같이 일할 기회가 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보석함처럼 기억하고 있다가 누가 ‘혹시 이런 분 아세요?’라고 질문하면 ‘너무 멋있는 사람이 여기 있어요’라고 추천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뉴그라운드에 처음 가입했을 때는 제 경력이 그렇게 길지 않았어요. ‘연결’이라는 것은 제가 시니어로서 조금 성장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자 기쁨인 것 같기는 해요. 이제서야 저도 뉴그라운드에서 다른 분들을 서로 연결해 드리고, 어떤 판을 작게나마 벌려드릴 수 있는 위치가 된 건가 싶기도 해서 조금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효진: 그러고 보니 뉴그라운드가 2021년에 문을 열었고, 지금 2024년이니까 시간이 꽤 흘렀네요. 민주 님이 그 사이에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성장했다고 말씀하시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져요.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달리기를 열심히 하시는 것 같던데, 오래 하셨나요?
민주: 진짜 꾸준히 했었던 것 같아요. 7~8년 정도? 그런데 잘 뛰지는 못해요. 꾸준히 하는 것과 잘하는 건 다르잖아요. 개인적으로 달리는 행위를 좋아해서 하기는 하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뛰거나 하프를 완주하거나, 기록을 경신하는 방식으로 뛰고 있지는 않고요.
효진: 제일 처음에 달리기를 시작했던 게 분노 때문이었다고 ‘워머스체육센터’ 채널에서 알려주셨잖아요. 그때 너무 힘들어서 뛰다가 분노가 잊혀졌다고도 말씀하셨죠. (웃음) 그렇게 힘들면 보통 달리기를 지속하지 않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7~8년을 뛸 수 있으셨나요?
민주: 그때는 매일매일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는 어떤 마음이 있었어요. 그때 회사랑 집이 한강대교 부근에 있었는데, 한강대교가 1km 조금 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거기를 뛰기 시작한 거죠. 한강대교를 뛰면서 ‘맞아, 되게 하기 어려운 일인 것처럼 보여도 이렇게 조금씩 뛰다 보면 예상보다 빨리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루틴처럼 되어서 달리기를 지속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효진: 달리기는 민주 님께 건강을 위한 활동인가요, 즐거움의 영역인가요?
민주: 즐거움의 영역인데요, 달리기가 정신 건강에 되게 좋은 것 같기는 해요. 달리면서 집중을 해야 하잖아요. 특히 밖에서 달리면 앞에 사람이 오는지, 밑에 뭐가 있는지, 지금 내가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는 않은지를 계속 생각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잡생각들이 사라져요. 어느샌가 상쾌함만이 남는 거죠. 달리기가 끝나고 나면 평온함을 느끼는 거, 그런 게 제가 생각하는 달리기의 장점이에요.
효진: 민주 님의 자기소개에서 ‘건강’에 관심이 많다고 써주신 것이 기억나요. 달리기 외에 건강을 위해서 하고 계신 활동이 있나요?
민주: 제가 건강에 관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 몸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거예요. 2022년도쯤 발목 인대가 진짜 크게 파열돼서 좋은 선생님들을 찾아다닌 적이 있거든요. 그때 선생님께서 제 다리를 보면서 남들은 평지에 서서 생활한다고 치면, 저는 항상 비탈길에 서 있는 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 남들보다 더 잘 다칠 수밖에 없고, 위험한 운동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거죠. 어떤 운동을 해도 근육 발달 속도가 느릴 거라는 얘기도요.
그 얘기를 들은 순간 엄청 ‘멘붕’이 왔어요. 왜냐하면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해 왔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왜 내 몸이 이렇게 좋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선생님과 얘기도 나누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다른 사람 몸과 내 몸을 바꿀 수도 없고, 어쨌든 내가 이 몸에서 점점 나아가는 거긴 하잖아요. 내가 내 몸을 미워하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지금 여기가 별로 안 좋구나, 지금은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구나. 하지만 괜찮아. 오늘은 딱 여기까지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니까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 것 같아요.
효진: 민주 님이 커뮤니티에서는 어디가 다쳤다거나, 안 좋다거나 하는 말씀을 거의 안 하셔서 그런 경험이 있으신 줄 전혀 몰랐어요. ‘건강’하니까 또 민주 님이 ‘박수 크게 치기가 특기’라고 말씀하셨던 게 떠오르는데요, 황수관 박사님 때문일까요…? 어쩐지 건강과 박수를 연결하게 되는데, ‘박수 크게 치기’가 특기인 걸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웃음)
민주: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어느 순간 모두가 다 같이 박수를 쳐야 되는 타이밍에 박수를 치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제 쪽을 돌아보는 시선을 느낀 적이 있어요. 그때 ‘내 박수 소리가 커서 조금 시끄럽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가 굉장히 차가운 경상도 분이시거든요. 제가 박수를 칠 때마다 유달리 ‘민주야, 느무 시끄럽다’라는 말씀을 몇 번 하시더라고요.
박수를 크게 치는 비법은… 오늘 인터뷰 시작 전에 박수를 여러 번 쳐봤거든요. 손바닥을 다 펴면 안 되고, 중간을 약간 오목하게 만들어서 공간을 살려서 쳐야 소리가 크게 나요.
효진: 그렇죠, 그렇죠. 공간감이 있어야 하는 거네요. 그러고 보니 토요일에 진행하는 달리기와 맥주 모임에 (박)해주 님도, 연두 님, 민주 님도 오시고 저도 가니까, 드디어 박수 소리 대결이 성사될 수 있겠어요. (주: 네 사람은 이번 시즌 웰컴데이 때 박수 크게 치는 것을 서로 자랑한 적이 있다.)
민주: 연습해야겠어요. (웃음)
"어떤 방향으로든 마음을 나아가게 하는 것,
그런 게 좋은 대화들이었던 것 같아요."
효진: 자기소개에 ‘좋은 대화’에도 관심이 많다고 써주셨어요. 민주 님은 어떨 때 좋은 대화를 했다고 느끼시나요?
민주: 요즘 퇴사를 하고 나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거든요.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좋았다’고 느껴진 기억들을 돌이켜 보면, 어떤 방향으로든 마음을 나아가게 하는 대화들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은 뭐가 맛있대, 어떤 음식이 제철이래’라는 대화를 나누고 나면 집에 가서 ‘그거 사 먹어야지’ 하게 되고, 실제로 그걸로 저녁에 요리를 하게 되거나 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소소하지만 내가 새롭게 마음을 먹게 하거나, 아니면 이미 내가 갖고 있던 마음이지만 조금 걱정하거나 불안했던 부분들을 인정하고 나아가게 하는 그런 대화들, 그런 게 요즘은 좀 좋은 대화라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효진: 그럼 민주 님 스스로 ‘좋은 대화’를 만들기 위해 신경 쓰시는 부분도 있을까요?
민주: 퇴사를 하고 깨달은 부분인데요, 집중하면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집중한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거든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어도 회사에서 슬랙 메시지가 오거나, 업무적인 연락이 오거나, 회사에 이슈나 리스크가 생기면 휴일에 관계 없이 무조건 모니터링을 해야 했으니까요. 이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피로함을 느끼고, 사람을 만나도 신경을 나눠서 한쪽은 일에 투입하고 있었던 시간이 많았는데요,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정말 좀 깨끗하게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어요.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많이 깨닫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