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방법

커뮤니티 만드는 일을 한 지 올해로 6년째입니다. 그동안 커뮤니티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어요. 그중에는 소식을 알지 못하게 된 사람도, 지금은 같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도, 커뮤니티에서 쭉 만나며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다슬 님은 제가 커뮤니티 만드는 일을 시작했던 201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커뮤니티를 통해 만나온 분입니다. 그사이에 저의 일도, 다슬 님의 일도 많이 바뀌었고 커뮤니티에 대한 생각이나 커뮤니티 안에서 활동하는 방식도 변화했다고 느껴요. 일터의 동료도, 어릴 때부터 만나온 친구도 아닌 관계가 6년이나 지속되고 그 시간 속에서 아주 천천히 서로의 변화를 지켜보고 관찰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4월의 커뮤니티 리포트를 위해 다슬 님께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어째서 꾸준히 커뮤니티 활동을 하시는지, 활동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무엇보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지 물었어요.



효진: 생각해 보니 제가 예전에 일했던 여성 커뮤니티(빌라선샤인)부터 지금 뉴그라운드까지, 커뮤니티 안에서 다슬 님을 뵌 지 벌써 6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커뮤니티에서 계속 활동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다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에너지를 받는 타입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무의식적으로 좋은 영향,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그룹에 저를 계속 가져다 두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싶어요. 

돌이켜보면, 커뮤니티에서 경험했던 것들과 제 커리어에서의 변화가 함께 흘러간 부분도 있더라고요. 빌라선샤인에서 '커리어 기획'이라는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는 중구난방이었던 제 커리어를 다듬는 데 도움을 받았고, 뉴그라운드 초기에도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드 스킬이나 소프트 스킬을 정리하는 거나 제 일을 회고하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또 그 이후에는 '일 외에 나머지 일상도 잘 가꿔보자'라는 뉴그라운드의 메시지와 번아웃을 겪고 난 저의 상황이 잘 맞았고요. 


효진: 번아웃은 언제 겪으신 건가요?

다슬: 작년에 겪었어요. 심적으로 많이 지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다시 한번 힘을 내보자, 다시 으쌰으쌰 해보자, 라고 마음먹고 일을 많이 벌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때마침 허리 건강이 나빠지면서 더 큰 번아웃이 온 거예요.


효진: 지금은 좀 어떠세요? 번아웃 상태에서 많이 멀어지셨나요?

다슬: 지금은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일하는 곳에서 최대한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을 이루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을 경험해 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까지는 에너지가 찼어요.


효진: 번아웃을 '극복'한다고 하면 좀 이상하고... 어쨌든 그 시간을 버티는 과정이 있으셨을 것 같거든요. 그때 제일 도움이 됐던 건 뭐였나요?

다슬: 뉴그라운드죠. (웃음)


효진: 아니, 그렇게 말씀해 주시지 않아도 돼요. (웃음)

다슬: 그런데 진짜예요. 


효진: 왜요? 어떻게요? 어떤 식으로요? 사실 뉴그라운드가 서로 엄청 자주 만나는 커뮤니티는 아니잖아요. 

다슬: 그렇죠. 그런데 제가 마음의 부침을 많이 겪고 있었던 때에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가 제일 큰 위로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마음이 한참 힘들 때 오프라인 밋업에서 (박)해주 님을 만났는데, 제가 겪었던 일들을 털어놨더니 해주 님이 '그래도 수고가 많으셨던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 님이 해주셨던 거죠. 그 이후에 해주 님이 '나만을 위한 시간, 미타임'이라는 프로그램을 열어주셔서 거기에 참여하면서 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일과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게 됐어요.

그렇지만 번아웃도 겪었고, 허리도 아프고 이러니까 감정이 가라앉는 건 계속되고 있었거든요. 그건 얼마 전 뉴그라운드 멤버들과 삼척 여행을 다녀온 후에 확 좋아졌어요. 그때 에너지가 확 채워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효진: 저 그 이야기 너무 듣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같은 커뮤니티의 멤버들이긴 하지만 아직 서로 잘 알지는 못하고, 함께 여행을 가서 오히려 더 불편한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여행을 함께 가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우셨는지, 또 막상 다녀와 보니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다슬: 저도 사실은 조금 고민했어요. 저는 괜찮은데, 과연 다른 분들이 오실까 싶더라고요. 혹은 같이 여행을 가긴 갔는데 거기서 불편함을 느끼는 바람에 결국 사이가 멀어지면 어떡하지, 괜히 뉴그라운드에 안 좋은 불씨를 만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다행히 전혀 그런 일은 없었지만요. 


효진: 엄청 재미있으셨던 것 같던데요?

다슬: 정말 좋았어요. 그래도 제가 뉴그라운드에서 꾸준히 활동을 해왔잖아요. 여기서 다른 분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마다 늘 너무 좋았고, 다들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그동안 여기서 봐왔던 사람들의 모습을 믿어보자.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나의 힘듦이나 내밀한 부분을 마음 놓고 털어놨던 거니까, 여행에도 또 그런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그럼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더 새로운 이야기와 만남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서 슬랙에 모집 글을 올려본 거예요. 알고 보니 오신 분들도 처음에는 저와 비슷한 고민이 있으셨더라고요.


효진: 거기에 대해서도 여행을 함께 하시면서 충분히 얘기를 나누셨군요.

다슬: 네. 서로 존댓말을 쓰는 사람들끼리 여행을 가는 게 다들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친구도 가족도 아닌,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이잖아요. 저희 언니는 "야, 모르는 사람들이랑 여행을 가는데 어떻게 서로 믿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다른 분들도 가족분들이 비슷한 얘기를 하셨었대요. 어쨌든 주변에서 걱정하는 만큼 여행에 참여하신 분들도 그런 걱정을 안 하셨던 건 아니지만, 알고 보니 다들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저와 나눴던 대화들이 인상 깊게 남아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무튼 여행지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그 시간 동안에도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일하면서 상처받았던 것, 일로 힘들었던 것, 그 밖에 가족이나 사랑의 아픔에 대한 것들 등 사적인 얘기도 많이 나눴고요. 재미있는 건, 여행 마지막 전날에 (김)정은 님이랑 사우나를 함께 하면서 더 친해졌어요. 남자들이 같이 사우나를 하면서 왜 친해지는지 알겠다 싶더라고요. (웃음)


진다슬 님의 리드로 (왼쪽부터)김정은, 김금진, 정명인, 박지영 님이 함께 떠났던 삼척 여행 사진.


효진: 너무 급속도로 친해질 수밖에 없겠어요. (웃음)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한다고 해도, 타인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저쪽에서 거절하면 어떡하지?' 혹은 '내 시간이랑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내가 굳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도 제가 운영하는 커뮤니티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면 어떤 제안을 먼저 쉽게 하진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다슬 님은 어떻게 그런 행동을 먼저 하시나요?

다슬: 음... 생각하고 하는 행동은 아니라서 이 질문이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저는 커뮤니티에서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거나 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꾸준히 관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분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면 '그다음 일은 어떻게 됐을까?'가 궁금해서 그분의 일 회고를 더 유심히 읽게 되는 거죠. 한편으로는 그분으로부터 나도 응원이나 위로의 말을 받았으니까, 내가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효진: 다슬 님의 그런 성향이 잘 드러났던 게 지난해 11월 진행했던 뉴그라운드 오프라인 팝업 프로그램에서였던 것 같아요. 참여자분들께 일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영상 인터뷰를 진행하셨잖아요. 그때 옆에서 다슬 님을 보면서 '지금 엄청 즐거우신 것 같다'라고 느꼈거든요. 실제로 그 경험이 다슬 님께는 어떤 의미가 되었나요?

다슬: 그때 번아웃을 겪는 중이었는데도 영상 촬영을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그 경험을 한 후에 사이드프로젝트든 뭐든, 앞으로 그와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나름의 방향을 정했어요.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지원하는 일을 내가 하고 싶구나'라는 맥락을 찾은 거죠. 꼭 영상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에게 제가 기획이나 매니지먼트 면에서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효진: 좋네요. 다슬 님은 다른 분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강점을 살려서 인터뷰를 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드셔도 좋을 것 같고요. 이런 커리어의 방향성을 포함해서, 요즘 다슬 님이 제일 관심을 두고 있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다슬: 커리어 정체성을 찾아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고 싶은 것이 가장 큰 관심사고요, 개인적으로는 저의 건강과 엄마의 건강, 부양이 큰 문제이자 걱정, 숙제로 남아 있어요. 그 외에는 여성들의 연대에 관심이 있고요.


효진: '여성들의 연대'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어요.

다슬: 가령 이런 거예요. 뉴그라운드 오프라인 모임에서 (이)진실 님이 워머스분들의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실 때 저는 영상으로 기록하려고 함께한 적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서로 낯설어하시고 촬영도 어색해하시던 분들이 점점 더 친해지는 모습이나 부끄러움을 벗어 던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모임이나 만남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언젠가는 내가 그런 데 좀 기여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콘텐츠를 통해서 마음 돌봄을 많이 하잖아요. 그게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영상 인터뷰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저의 역량을 가지고 그런 과정에 도움을 주는 데 관심이 있어요.


효진: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 인터뷰를 읽으실 분들께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다슬: 모임을 만드는 게 쑥스럽다고 생각하고 계실 워머스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가 썼던 방법이랑 비슷한 건데요, 일단 나 말고 한 명만 더 참여하면 모임을 열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모임을 열고 싶으실 때는 슬랙에서 저한테 DM을 보내주세요. 제가 참여할게요. 딱 한 명만 있으면 덜 부끄러워지고, '아무도 참여 안 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도 줄어들 거예요. 모임을 열기 전에 먼저 DM을 보내주시면, 그 모임에 잘 참여하는 1인이 되어보겠습니다. 


효진: 이제 다슬 님께 막 DM이 쇄도하는 거 아니에요? 

다슬: 그럼 일정을 협의해서 모든 모임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