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워머스 정명인 님이 진행하시는 프로젝트 '힐끗힐끗'에 참여했습니다. '힐끗힐끗'은 기록에 관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인터뷰 프로젝트예요. 명인 님이 직접 기획한 질문에 따라 천천히 답변을 정리하면서, 그간 제가 어떤 방식으로 기록을 해왔는지, 예전에 해왔던 기록과 지금의 기록이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 시기에 따라 기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스스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이것을 계기로 명인 님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묻고 싶어 이번에는 제가 거꾸로 명인 님께 인터뷰 요청을 드렸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명인 님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비장해지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였어요. 저는 그 말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한 일종의 주문처럼 느껴졌습니다. 좋아했던 일들도 무거워지고, 비장해지면서 어느 순간 싫어질 때가 있으니까요.
명인 님과 기록, 사이드 프로젝트, 그리고 비장해지지 않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고 나면, 아마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습니다.
효진: 명인 님, 왜 하필 '기록'이라는 주제로 인터뷰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명인: 다른 사람들은 기록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저도 3~4년 전부터 일 회고를 주기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형식이 반복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는 느낌이 좀 있더라고요.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의 다이어리나 노트가 궁금했거든요. 정말 저를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효진: 나에게 그것이 절실해서 기획을 할 때 훨씬 재미도 있고, 콘텐츠도 잘 나오는 것 같아요. '힐끗힐끗'은 책으로도 만드셨잖아요. 처음부터 인쇄물로 만들려고 하셨던 건가요?
명인: 그걸 정해두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제게 제일 친숙한 포맷인 인스타그램 정방형 이미지나 영상으로 만들면 어떨까, 했어요. 디자이너다 보니 본업으로 SNS 홍보 이미지를 자주 만들었었거든요. 중요한 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저에게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럼 일단 제일 빨리,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포맷으로 만들고, 나중에 콘텐츠가 쌓이면 그때 다시 생각을 해보자 싶었죠. 그러다 제가 회사를 그만둔 후에 한 번 인쇄까지 해본 거예요.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께도, 저에게도 기억에 남는 물성 있는 결과물이 될 테니까요.
효진: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프로젝트를 하는 게 중요했다고 하셨는데,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떠셨어요? 예전에도 인터뷰라는 일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명인: 예전에 다른 분들과 매거진 <Her.e>(히어)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때 인터뷰 담당은 아니었지만, 어깨 너머로 다른 분들이 하는 걸 봤었죠. 하지만 제가 인터뷰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보니,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질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 질문도 기록에 관한 사소한 것들, 예를 들면 브이로그나 비하인드 영상 같은 느낌으로 뽑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혼자 하는 프로젝트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가벼운 게 장점이에요."
효진: <Her.e>를 만드셨던 경험에 대해서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명인: 페미니즘 독서 모임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어요. 모임을 할 때마다 모임비가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책값, 공간 대여비, 밥값, 커피값... 하루에 한 4만 원씩 쓰는 거죠. '그럼 우리, 나랏돈으로 페미니즘을 해보자!'라는 취지로 서울시 지원 사업을 받았고, 그걸로 독서 모임을 지속했어요. 그때 인연이 된 분들과 공간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Her.e>를 만든 거예요.
효진: 그럼 완전히 혼자 진행하신 프로젝트는 '힐끗힐끗'이 최초인 거네요.
명인: 네, 이전에는 최소 2~3인이 함께 했었어요. 함께 하는 프로젝트와 혼자 하는 프로젝트는 뚜렷한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동료들과 함께 할 때는 업무 영역을 나눌 수도 있고,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울 수도 있죠. 지원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과정을 습득해서 다른 사업에 지원할 때도 참고할 수 있었고요.
혼자 하는 프로젝트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가벼운 게 장점이에요. 사람이 많으면 모두의 의견을 다 듣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완성도에 대한 합의도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은 혼자 결정할 수 있으니 편한 부분이 있어요.
효진: 보통 동료들과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다가 혼자 뭔가를 해보려면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명인 님은 빠르게 확 실행을 해버리신 것 같아요.
명인: 남에게 보여주는 콘텐츠이지만, 처음 말씀드렸듯 정말 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잖아요. 내가 재미있고, 내가 하는 게 어렵지 않다면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해본 거예요.
효진: '힐끗힐끗'을 하면서 '오, 나 이런 거 되게 재미있어하네?' 혹은 '나 이거 잘하네?'라고 생각하셨던 부분도 있을까요?
명인: 인터뷰이들을 섭외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잖아요. 진행 방식이나 섭외 이유, 이런 것들을 포함해서 섭외 요청 메시지를 보내야 해요. 이런 내용들을 담은 제안 메시지를 포맷화해서 사용했죠. 예전에 어디서 들은 것 중 하나가, '상대방이 기초적인 질문을 다시 하지 않도록 육하원칙에 맞춰서 제안 메일을 보내는 게 좋다'라는 이야기였어요. 그것에 따라 인터뷰이에게 정보를 제공하되, 강압적이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일정과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그리고 레퍼런스를 모아두는 습관도 힘이 되더라고요. 기록을 자주 하는 사람들, 또는 기록하는 모습을 제가 눈여겨 봐놨던 사람들을 인터뷰이로 섭외한 거거든요. 평소에 관심 있는 내용을 잘 저장해뒀다가 잘 써먹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효진: 프로젝트를 하면서 명인 님이 제일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시는 건 뭐예요?
명인: 마인드컨트롤에 관한 부분인 것 같아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랄까요. 열심히 하되,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자. 더군다나 '힐끗힐끗'은 인터뷰 프로젝트고, 글 작업이 바탕이 되고, 나는 거기에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생각하려고 했어요.
어쨌든 저도 이 일에 엄청 능숙한 게 아니다 보니 실수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마인드 세팅을 저렇게 해놓으니 실수를 하거나, 후회되는 지점들이 있어도 타격이 덜하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지 뭐, 어차피 사이드 프로젝트인데. 이런 식으로 넘길 수 있었어요.
효진: 어떤 실수를 하셨나요?
명인: 인쇄할 때 좀 실수를 했어요. 종이 사양을 잘못 선택해서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게 뽑힌 거예요. 만약 제가 이걸 아주 완벽하게 하려고 했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어차피 혼자 하는 거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그냥 인쇄를 다시 했거든요. '또 어떤 실수가 있었나' 돌이켜봐도 기억이 잘 안 나요. 아마 크고 작은 실수를 했을 텐데 저한테 크게 남지 않았던 거죠. 인쇄는 원래 본업에서도 하던 영역이니까 관련된 실수가 기억에 남아있는 거고요.
효진: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많이들 고민하시는 게 '내가 본업에서 충분히 쌓은 노하우나 기술을 활용해야 하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하나'인 것 같기도 해요. 명인 님처럼 본업과 아주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분야의 경험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가져가는 것도 좋아 보여요.
명인: 그런데 또 제가 이 프로젝트를 쉽게 할 수 있었던 건, 지인들의 도움 덕분이기도 해요. 인터뷰에 섭외한 분들 대부분은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이나 몇 번 만나본 지인들이에요. 그리고 글 작업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보니 이게 맞는지 불안해서 또 다른 지인에게 리뷰를 받아보기도 했고요. 맛있는 것을 사드리고(웃음) 도움을 알음알음 받아가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것 같아요.
효진: 필요한 부분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역량이죠. 기록에 대한 매너리즘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로 답을 찾으셨나요? 기록하는 방법이 바뀌셨는지 듣고 싶어요.
명인: 아,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짜 할 말이 없어요. (웃음)
효진: 기록을 안 하고 계신 건가요? (웃음)
명인: 일 회고를 할 때처럼 주기적으로 하지는 않아요. 지금 일을 쉬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사진이나 영상 기록을 좀 더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이 프로젝트를 하고 느꼈던 게, 특별한 기록 방법이라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인터뷰이분들을 보면 다들 온라인이든 아날로그든 일단 그냥 쓰시더라고요. 어쨌든 꾸준히 쓰고, 그것을 좀 더 발전시키면 분기별로 복기를 하고 요약을 해두는 정도였어요. 습관적으로 기록을 하는 행위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방식인 거죠. 그걸 보면서 기록하는 태도에 관한 인사이트가 있었어요. 그냥 계속 기록을 하면서 달라지는 본인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꾸준히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기록이라는 것이 마음을 단련시키는 활동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이걸 내가 해내겠어!'라는 마음을
요즘에는 좀 멀리 두려고 해요."
효진: 그렇다면 앞으로 기록을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다시 회고를 하고 싶다거나, 일기를 열심히 쓰고 싶을 수도 있겠죠. 혹은 '나는 기록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구나'를 깨닫고 기록을 멈출 수도 있겠고요.
명인: 시기에 따라 제가 기록하는 방법이 계속 달라지긴 하거든요. 사진으로 남길 때도 있고, 영상으로 남길 때도 있고, 글 작업만 할 때도 있어요. 그게 잡탕으로 섞여도 다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록을 할 때 포맷이나 분야가 섞이면 나누고 싶어지잖아요. 그것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쌓이는 기록을 해야겠다 싶어요.
인스타그램에도 계정이 굉장히 많거든요. 덕질 계정과 일상 계정이 따로 있어요. (웃음) 좀 부끄럽더라도 계정을 합쳐서 기록을 잘 쌓아나가야겠다, 그걸 견뎌야겠다 생각해요.
효진: 맞아요. 자꾸 형식이나 매체별로 기록을 나누려고 하는 게, 남에게 보여지는 콘텐츠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쓰는 노트의 종류를 나눠봤었거든요. 이렇게 하니까 어떤 부분의 내용이 비어버리면 더 이상 기록하기가 싫어지더라고요.
명인: 그래서 요즘은 '비장해지지 말자'라는 생각을 항상 해요. 뭔가를 이뤄내야지, 라고 다짐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더 부담이 생기잖아요. '이걸 내가 해내겠어!'라는 마음을 요즘에는 좀 멀리 두려고 해요.
효진: 명인 님, 왜 하필 '기록'이라는 주제로 인터뷰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명인: 다른 사람들은 기록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어요. 저도 3~4년 전부터 일 회고를 주기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형식이 반복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는 느낌이 좀 있더라고요.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의 다이어리나 노트가 궁금했거든요. 정말 저를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효진: 나에게 그것이 절실해서 기획을 할 때 훨씬 재미도 있고, 콘텐츠도 잘 나오는 것 같아요. '힐끗힐끗'은 책으로도 만드셨잖아요. 처음부터 인쇄물로 만들려고 하셨던 건가요?
명인: 그걸 정해두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원래는 제게 제일 친숙한 포맷인 인스타그램 정방형 이미지나 영상으로 만들면 어떨까, 했어요. 디자이너다 보니 본업으로 SNS 홍보 이미지를 자주 만들었었거든요. 중요한 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저에게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럼 일단 제일 빨리,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포맷으로 만들고, 나중에 콘텐츠가 쌓이면 그때 다시 생각을 해보자 싶었죠. 그러다 제가 회사를 그만둔 후에 한 번 인쇄까지 해본 거예요.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께도, 저에게도 기억에 남는 물성 있는 결과물이 될 테니까요.
효진: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프로젝트를 하는 게 중요했다고 하셨는데, 인터뷰를 하는 건 어떠셨어요? 예전에도 인터뷰라는 일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명인: 예전에 다른 분들과 매거진 <Her.e>(히어)를 만든 적이 있어요. 그때 인터뷰 담당은 아니었지만, 어깨 너머로 다른 분들이 하는 걸 봤었죠. 하지만 제가 인터뷰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보니,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질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 질문도 기록에 관한 사소한 것들, 예를 들면 브이로그나 비하인드 영상 같은 느낌으로 뽑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혼자 하는 프로젝트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가벼운 게 장점이에요."
효진: <Her.e>를 만드셨던 경험에 대해서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명인: 페미니즘 독서 모임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어요. 모임을 할 때마다 모임비가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책값, 공간 대여비, 밥값, 커피값... 하루에 한 4만 원씩 쓰는 거죠. '그럼 우리, 나랏돈으로 페미니즘을 해보자!'라는 취지로 서울시 지원 사업을 받았고, 그걸로 독서 모임을 지속했어요. 그때 인연이 된 분들과 공간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Her.e>를 만든 거예요.
효진: 그럼 완전히 혼자 진행하신 프로젝트는 '힐끗힐끗'이 최초인 거네요.
명인: 네, 이전에는 최소 2~3인이 함께 했었어요. 함께 하는 프로젝트와 혼자 하는 프로젝트는 뚜렷한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동료들과 함께 할 때는 업무 영역을 나눌 수도 있고,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울 수도 있죠. 지원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과정을 습득해서 다른 사업에 지원할 때도 참고할 수 있었고요.
혼자 하는 프로젝트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가벼운 게 장점이에요. 사람이 많으면 모두의 의견을 다 듣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완성도에 대한 합의도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은 혼자 결정할 수 있으니 편한 부분이 있어요.
효진: 보통 동료들과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다가 혼자 뭔가를 해보려면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명인 님은 빠르게 확 실행을 해버리신 것 같아요.
명인: 남에게 보여주는 콘텐츠이지만, 처음 말씀드렸듯 정말 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잖아요. 내가 재미있고, 내가 하는 게 어렵지 않다면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해본 거예요.
효진: '힐끗힐끗'을 하면서 '오, 나 이런 거 되게 재미있어하네?' 혹은 '나 이거 잘하네?'라고 생각하셨던 부분도 있을까요?
명인: 인터뷰이들을 섭외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잖아요. 진행 방식이나 섭외 이유, 이런 것들을 포함해서 섭외 요청 메시지를 보내야 해요. 이런 내용들을 담은 제안 메시지를 포맷화해서 사용했죠. 예전에 어디서 들은 것 중 하나가, '상대방이 기초적인 질문을 다시 하지 않도록 육하원칙에 맞춰서 제안 메일을 보내는 게 좋다'라는 이야기였어요. 그것에 따라 인터뷰이에게 정보를 제공하되, 강압적이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일정과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그리고 레퍼런스를 모아두는 습관도 힘이 되더라고요. 기록을 자주 하는 사람들, 또는 기록하는 모습을 제가 눈여겨 봐놨던 사람들을 인터뷰이로 섭외한 거거든요. 평소에 관심 있는 내용을 잘 저장해뒀다가 잘 써먹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효진: 프로젝트를 하면서 명인 님이 제일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시는 건 뭐예요?
명인: 마인드컨트롤에 관한 부분인 것 같아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랄까요. 열심히 하되,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자. 더군다나 '힐끗힐끗'은 인터뷰 프로젝트고, 글 작업이 바탕이 되고, 나는 거기에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생각하려고 했어요.
어쨌든 저도 이 일에 엄청 능숙한 게 아니다 보니 실수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마인드 세팅을 저렇게 해놓으니 실수를 하거나, 후회되는 지점들이 있어도 타격이 덜하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지 뭐, 어차피 사이드 프로젝트인데. 이런 식으로 넘길 수 있었어요.
효진: 어떤 실수를 하셨나요?
명인: 인쇄할 때 좀 실수를 했어요. 종이 사양을 잘못 선택해서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게 뽑힌 거예요. 만약 제가 이걸 아주 완벽하게 하려고 했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어차피 혼자 하는 거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그냥 인쇄를 다시 했거든요. '또 어떤 실수가 있었나' 돌이켜봐도 기억이 잘 안 나요. 아마 크고 작은 실수를 했을 텐데 저한테 크게 남지 않았던 거죠. 인쇄는 원래 본업에서도 하던 영역이니까 관련된 실수가 기억에 남아있는 거고요.
효진: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많이들 고민하시는 게 '내가 본업에서 충분히 쌓은 노하우나 기술을 활용해야 하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하나'인 것 같기도 해요. 명인 님처럼 본업과 아주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을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분야의 경험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가져가는 것도 좋아 보여요.
명인: 그런데 또 제가 이 프로젝트를 쉽게 할 수 있었던 건, 지인들의 도움 덕분이기도 해요. 인터뷰에 섭외한 분들 대부분은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이나 몇 번 만나본 지인들이에요. 그리고 글 작업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보니 이게 맞는지 불안해서 또 다른 지인에게 리뷰를 받아보기도 했고요. 맛있는 것을 사드리고(웃음) 도움을 알음알음 받아가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것 같아요.
효진: 필요한 부분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역량이죠. 기록에 대한 매너리즘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로 답을 찾으셨나요? 기록하는 방법이 바뀌셨는지 듣고 싶어요.
명인: 아,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짜 할 말이 없어요. (웃음)
효진: 기록을 안 하고 계신 건가요? (웃음)
명인: 일 회고를 할 때처럼 주기적으로 하지는 않아요. 지금 일을 쉬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사진이나 영상 기록을 좀 더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이 프로젝트를 하고 느꼈던 게, 특별한 기록 방법이라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인터뷰이분들을 보면 다들 온라인이든 아날로그든 일단 그냥 쓰시더라고요. 어쨌든 꾸준히 쓰고, 그것을 좀 더 발전시키면 분기별로 복기를 하고 요약을 해두는 정도였어요. 습관적으로 기록을 하는 행위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방식인 거죠. 그걸 보면서 기록하는 태도에 관한 인사이트가 있었어요. 그냥 계속 기록을 하면서 달라지는 본인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꾸준히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기록이라는 것이 마음을 단련시키는 활동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이걸 내가 해내겠어!'라는 마음을
요즘에는 좀 멀리 두려고 해요."
효진: 그렇다면 앞으로 기록을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다시 회고를 하고 싶다거나, 일기를 열심히 쓰고 싶을 수도 있겠죠. 혹은 '나는 기록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구나'를 깨닫고 기록을 멈출 수도 있겠고요.
명인: 시기에 따라 제가 기록하는 방법이 계속 달라지긴 하거든요. 사진으로 남길 때도 있고, 영상으로 남길 때도 있고, 글 작업만 할 때도 있어요. 그게 잡탕으로 섞여도 다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록을 할 때 포맷이나 분야가 섞이면 나누고 싶어지잖아요. 그것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쌓이는 기록을 해야겠다 싶어요.
인스타그램에도 계정이 굉장히 많거든요. 덕질 계정과 일상 계정이 따로 있어요. (웃음) 좀 부끄럽더라도 계정을 합쳐서 기록을 잘 쌓아나가야겠다, 그걸 견뎌야겠다 생각해요.
효진: 맞아요. 자꾸 형식이나 매체별로 기록을 나누려고 하는 게, 남에게 보여지는 콘텐츠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이나 쓰는 노트의 종류를 나눠봤었거든요. 이렇게 하니까 어떤 부분의 내용이 비어버리면 더 이상 기록하기가 싫어지더라고요.
명인: 그래서 요즘은 '비장해지지 말자'라는 생각을 항상 해요. 뭔가를 이뤄내야지, 라고 다짐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더 부담이 생기잖아요. '이걸 내가 해내겠어!'라는 마음을 요즘에는 좀 멀리 두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