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챙길 시간

사진 찍히는 거, 좋아하세요? 질문을 바꿔볼게요. 혹시 사진 찍히는 데 익숙하신가요? 저는 많이 쑥스러워하는 편입니다. 아주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군가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저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저의 모습을 포착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져요.

그래서 이진실 님이 여는 사진 촬영 모임에 다녀온 분들이 '너무 편안한 분위기였다'는 소감을 남길 때마다 궁금함이 일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사진을 찍으시길래 다들 편안했다고 느낀 걸까? 진실 님만의 노하우는 뭘까? 

이번에는 이진실 님을 만났습니다. 진실 님은 그 순간에만 담을 수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즐겁다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 기록의 과정에 함께 하는 기쁨이 사진 촬영도, 뉴그라운드에서의 모임도 지속하게 되는 동기라고요. 어쩌면 진실 님과의 대화는 삶에서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스스로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효진: 진실 님,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많이 바쁘세요?

진실: 회사에서는 연간 목표를 새로 잡고 있어요. 사진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종류의 일들이 들어와서 장비도 업그레이드하고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계획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고요.


효진: 새로운 일들이 어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진실: 두 개인데요, 하나는 저의 친구이자 스윙 선생님이 스윙 파티를 연다고 하셔서 포토그래퍼로 참여하게 된 거예요. 또 하나는, 지인 중 한 분이 홈스냅을 요청 주셔서 하게 되었어요. 그 집에 고양이와 네 살짜리 어린이가 있는데 다 같이 가족사진을 찍는 거죠. 이런 종류의 촬영은 처음이라 어떻게 찍을지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기획안을 짜서 전달해 드렸어요.


효진: 일요일에는 워머스 박지영 님과 요가 사진 촬영 모임을 진행하시기도 했죠. 제 생각에 사진 촬영이란, 엄청 많은 애정과 수고와 시간이 드는 활동인 것 같거든요. 대가를 받지 않고 워머스분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계시는데, 이 모임을 계속 진행하시는 동기가 뭘까요?

진실: 워머스분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었어요. 물론 슬랙에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오프라인 행사에서 만나 뵙긴 하지만, 그것보다 조금 더 이분들에 대해 알아갈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 모임을 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사진 촬영을 사이드잡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거든요. 스스로 계속 기회를 만들어야 해요. 그런 판을 꾸리기에 뉴그라운드가 굉장히 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 모임 모집 글을 슬랙에 올렸을 때 다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시고 피드백도 열심히 주셔서 이 일을 지속해 나가는 데 용기와 힘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모임을 열게 되는 것 같아요.


효진: 첫 모임은 혼자, 두 번째는 진다슬 님과, 이번에는 박지영 님과 함께 진행하셨죠. 다들 실행력이 엄청 좋으신 것 같아요. 

진실: 지영 님은 제가 처음 프로필 촬영 모임을 열었을 때 참여하셨었어요. 그때 지영 님이 요가를 하신다는 걸 알게 됐고, 지영 님도 제게 다음엔 같이 모임을 해봐도 좋겠다고 먼저 말씀해 주셨어요. 그걸 기억해 뒀다가 두 번째 모임을 기획하면서 지영 님께 함께 해보자고 요청을 드린 거예요. 지영 님도 실행력이 굉장하신 분이라 거의 대화 몇 번 만에 모임 세부 내용이 정리됐어요.

다슬 님과는, 다슬 님이 진행하시는 인터뷰 영상 촬영 모임에 제가 참여했다가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 다슬 님이 '다음에 사진 촬영 모임을 하게 되면 영상을 촬영하러 가도 되겠냐'라고 먼저 제안을 주시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무척 감사한 일이었죠. 다슬 님이야말로 영상 촬영이 본업이고 전문가이신데, 아무런 조건 없이 함께해 주시는 거니까요. 그렇게 모임을 진행하게 됐어요.


효진: 진실 님의 모임에 참여해 본 분들이 공통으로 말씀하시길, 분위기가 너무 편안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들 사진 촬영에 익숙하지 않고, 서로 아주 가까운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촬영장 분위기가 어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고요. 어떻게 촬영을 이끌어 가시나요?

진실: 제 MBTI의 제일 앞자리가 'E'이긴 한데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에요. 현장에서 신나게 분위기를 띄우는 건 어렵기 때문에, 장치를 하나 만들었어요. 촬영 시작 1시간 전에 참여자분들과 만나서 다 같이 대화한 거죠.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이나 분위기를 가졌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 나눴어요. 그다음에는 반대로 서로가 보는 서로의 이미지나 분위기를 말해줬고요. 다들 초면이기도 하고 서로 호의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칭찬이 오가면서 분위기가 많이 풀어지더라고요. 거기서 오갔던 이야기를 촬영할 때 힌트로 써먹기도 했어요.


효진: 좋네요. 포토그래퍼로서 진실 님의 강점은 뭘까요?

진실: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 약간 타고나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찍는 사진의 방향성도 그렇거든요. 요즘 프로필 사진들은 완벽함을 많이 추구하잖아요. 사진에 빛도 쫙 들어오고, 얼굴도 잡티 하나 없이 다듬고요. 제가 원하는 사진은 그것과는 조금 달라요. 그냥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모습을 찍는 것에 가까워요. 사진에 찍히시는 분들이 그런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어요.


효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외적인 약점을 사진에서 숨기고 싶어 하기도 하잖아요. 포토그래퍼의 입장에서는 그걸 보완해서 찍거나, 혹은 그것을 더 개성으로 부각해서 찍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진실 님은 어떠신가요?

진실: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사전에 많이 들어보고, 제 의견도 전달해 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얼굴이 비대칭이었던 분이 계셨거든요. 그분은 본인의 얼굴을 굉장히 잘 알고 계셨고, 특정 각도에서 얼굴을 찍을 때 자신이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그 부분을 최대한 살려드렸어요. 

그런데 외적인 콤플렉스가 있으니 그걸 숨겨 달라고 제게 요청하신 분들은 아직 안 계셨어요. 어쨌든 제가 기존에 찍은 사진들을 보고 저에게 촬영 요청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사진을 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본인 사진을 원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가령 앞머리가 삐죽삐죽해도 그게 콤플렉스가 아니라 나의 개성이라고 판단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죠.


효진: 사진에 찍힐 때 잘 나올 수 있는 팁도 있을까요?

진실: 저는 일단 숨을 쉬라고 말씀드려요. 옛날에 저도 그랬거든요. 카메라가 앞에 있으면 긴장하게 되고, 긴장하면 숨을 안 쉬기 때문에 입 모양이 이상하게 나올 수 있어요. 참지 말고 꼭 호흡을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죠. 그리고 눈빛은... 이건 성격에 따라 먹히기도 하고 어려워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저를 꼬신다고 생각하시고 유혹하는 눈빛을 보여주세요'라고 말해요. (웃음) 이러면 좀 자신감 있는 눈빛이 나오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사람은 계속 바뀌니까, 

지금의 그 사람을 기록하는 게 좋아요."


효진: 저는 기본적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게 굉장히 내밀한 행위라고 느끼거든요. 렌즈를 통해서 내가 누군가를 보는 게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진실 님께는 인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진실: 오,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효진 님의 생각이 엄청 다정하고 신기하게 느껴져요.


효진: 제가 너무 내향인이라서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어요. (웃음)

진실: 저한테 인물 사진이란, 기록인 것 같아요. 작년의 저와 올해의 저, 내년의 저는 다르잖아요. 지금 제가 사진에 찍힌다면 2024년 2월의 제가 기록되는 거죠. 사람은 계속 바뀌니까, 지금의 그 사람을 기록하는 행위를 함께하는 게 좋아요. 뉴그라운드 슬랙에 처음 사진 촬영 모임을 홍보할 때 '올해가 가기 전에 내 모습을 남겨 보아요'라는 말을 썼거든요. 지금의 나를 기억하게끔 해주는 것이 제가 인물 사진을 찍는 이유이자, 제가 인물 사진 찍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효진: 언제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하게 되셨어요? 

진실: 2017년에 쿠바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냥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돌아와 보니 제대로 된 사진을 못 남긴 게 너무 아쉽더라고요. 5개월 뒤에 다시 쿠바에 가려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고, 사진 박사 과정 중에 계신 분께 10시간 정도 속성으로 사진 과외를 받으면서 여러 가지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러고서 다시 쿠바에 나가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여행을 하면서 사진 촬영을 시작하다 보니 풍경도, 인물도 많이 찍었는데 풍경은 제게 조금 단조롭게 느껴졌어요. 풍경 속에 인물이 있어야 스토리가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풍경보다는 인물을 더 좋아하는구나'라고 그때 깨달았어요.



© 이진실 (@trueleeconcept)


효진: 인물 사진에도 여러 종류가 있짆아요. 어떤 걸 찍을 때 가장 재미있거나 즐거우세요?

진실: 누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모습을 찍는 게 제일 좋아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이 스윙 댄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찍는 거죠. 커플 댄스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교감하고 있고,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기 때문에 표정이 엄청 다채로워요. 그런 상황을 찍는 것 자체가 재미있게 느껴져요. 그럴 때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러면 제가 찍을 수 있는 게 조금 더 다양해지니까 그런 것도 즐겁고요. 


효진: 그렇다면 스윙 파티를 촬영하시는 게 엄청나게 기대되시겠군요. 진실 님도 스윙을 꾸준히 배우고 계신 거죠?

진실: 2012년부터 스윙 댄스를 시작해서 올해로 12년 차가 됐어요. 


효진: 진짜 오래 하셨네요. 스윙의 무엇이 진실 님을 그렇게 오래 붙들어두고 있나요?

진실: 일단은 노래가 엄청 좋아요. 활동적이고 밝은 곡들이 많아서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라이브 밴드의 연주에 맞춰서 스윙을 추면 진짜 너무너무 행복하고요. 몸을 움직이는 데서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죠. 그리고 다른 사람과 같이 추는 춤이다 보니 무표정으로 출 수 없거든요. 웃어야 하고, 웃으면 기분이 좋아지죠. 다른 나라에 가서도 스윙을 추러 간 적이 있는데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춤으로 교류할 수 있으니 친구를 금방 사귀게 되더라고요. 소셜 댄스는 계속하고 싶어요.


"회사 바깥으로 나오면 

최대한 일에 대한 스위치를 끄기 위해 노력해요."


효진: 사진 촬영도 그렇고 스윙 댄스도 그렇고, 진실 님은 일하지 않는 시간을 풍성하게 꾸려가는 방법도 스스로 잘 찾아내는 분이신 것 같아요. 그런데 일에 너무 몰입해서 힘들었던 적도 있으신가요?

진실: 첫 직장에서 그런 시절을 겪었어요. 일을 오래 해야 하는 직업이어서 야근도 주말 출근도 잦았어요. 제가 서울이 아닌 곳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서울에 취직하면 일주일 내내 춤을 출 수 있겠네'라는 부푼 꿈을 안고 상경을 했거든요. 하지만 춤을 출 시간이 전혀 없는 직장이었던 거죠. 그때 '일주일에 세 시간만 춤출 수 있는 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어요. 제가 오랫동안 꿈꿨던 일을 했었는데도 그런 상황이 너무 힘들었어요.


효진: 누가 진실 님께 새로운 일을 제안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연봉을 준대요. 하지만 대신,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은 없대요. 그렇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

진실: 당연히 연봉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 그렇게 열심히 일해봤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업무 시간에는 엄청나게 몰입하지만, 회사 바깥으로 나오면 최대한 일에 대한 스위치를 끄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야 또 충전할 수 있으니까요. 

춤뿐만 아니라 제 삶의 다른 부분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예요.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처럼 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챙길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