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몸은 나만이 머물 수 있는 집

11월 커뮤니티 리포트의 주인공은 양은진 님입니다. 은진 님은 각자의 몸을 잘 이해하고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몸잼'을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 몇 년 간 제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고 가장 이른 시간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이기도 합니다. 


11월의 마지막주 화요일 아침 7시 30분, 줌으로 은진 님을 만났습니다. 커뮤니티 리포트 사상 가장 이른 시간에 진행된 인터뷰라 조금 피곤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은진 님과의 생기 넘치는 대화 덕분에 오히려 하루를 더욱 가뿐하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나의 몸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나와의 관계를 잘 맺는 것, 그리고 타인과 잘 연결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은진 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저의 시간 또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건 은진 님이 인터뷰 도중 가끔 거꾸로 제게 던져주신 질문들 덕분이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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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 사실 제가 커뮤니티 리포트용 인터뷰를 이 시간에 하는 건 처음이에요. 다른 분들과는 주로 밤 시간대에 인터뷰를 했었는데, 은진 님은 밤에 되게 힘들어하실 것 같더라고요. 아침에는 은진 님 컨디션이 어떠신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침을 훨씬 편안해하실 것 같아서 아침에 만나자고 제안 드렸어요.

은진: 저는 보통 아침에 인터뷰를 하시는 줄 알았어요. (웃음)


효진: 은진 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어디에 가장 시간을 많이 쓰고 계신가요?

은진: 저 이 질문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제가 꾸준히 고민하고 있는 게 무엇에 가장 시간을 많이 쓰는지, 그렇게 한쪽에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면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거든요. 저는 하나만 엄청나게 파는 스타일이에요. 그게 운동이 될 수도 있고, 책이 될 수도,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더 깊게 아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하나에 빠지면 1년 동안 거기에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시간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서 놓치는 것들이 많았어요. 

요즘에는 시간을 조금씩 분리해서 다양한 데 써보는 것을 연습해보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서 하루 안에 나를 위한 시간과 관계를 위한 시간이 있고, 사회를 위한 시간이 있고, 혹은 그것들이 다 합쳐지는 시간이 있을 수도 있죠.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최대한 다양한 시간들을 골고루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효진: 나를 위한 시간과 관계를 위한 시간, 사회를 위한 시간은 어떻게 다른가요?

은진: 저를 위한 시간은 일단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힘든 데가 있는지, 아픈 데가 있는지, 혹은 참고 있는 게 있는지 요즘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과거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서 함께 바라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상상도 같이 해봐요. 또 다르게는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매일 새벽에 수련을 하고요. 

그리고 관계를 위한 시간은, 일단 저는 관계맺기에 되게 미숙한 사람이었어요. 저 자신에게 진짜 잘 빠지는 사람이에요. 그러다보니 주변 소리를 못 들을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결국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양은진이라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더라고요. 주변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게 많이 노력하고, 거기에 시간을 많이 투자… ‘투자’라는 단어는 좀 별로지만 아무튼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내는 편이에요. 

사회를 위한 시간에는 제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 예를 들면 페미니즘이 될 수도 있고 제가 하는 일 쪽에서는 운동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억압되어 있다 보니 그런 부분을 어떻게 고민하고 나눌 수 있을지 공부도 해보고 있어요. 그런 목소리를 내는 곳들에 한 번씩 가보기도 하고요. 


효진: 은진 님은 몸 움직임 수업인 ‘몸잼’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어떠세요? 운영하는 게 재밌으신가요?

은진: 재미있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행복하고 다 있어요. 몸잼을 생각하면 정말 다양한 감정들이 그냥 다 올라오는 것 같아요. 2024년 11월에 몸잼을 시작했으니 이제 딱 1년 됐네요.


효진: 1년 해보니 뭐가 제일 재밌고 뭐가 제일 어렵다고 느끼세요?

은진: 눈물 난다, 갑자기. (웃음) 처음 제가 몸잼을 열었을 때는 ‘내가 뭔가를 해야지’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1년을 하면서 보니, 내가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오시는 분들과 함께 해나가는 거구나, 그 과정 속에서 아름다운 게 이루어지고 더 확장되는 거구나, 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함께’라는 키워드가 요즘에는 저에게 많이 와닿는 것 같아요. 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수업을 좀 더 지향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운동 수업을 보면 누군가의 지시를 따라 진행되거나, 정말 절제된 환경 아래에서 ‘이걸 따라야 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그런 분위기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저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좀 더 조성하고 싶어요.


효진: 왜 그런 지향을 갖고 계신지 듣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은진 님이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게 편할 수도 있잖아요. 한국에서 운동을 한다고 할 때 선생님이 가르치고 회원들은 배우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기도 하고요.

은진: 일단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몸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 가볍게 나누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효진 님 혹시 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효진: 너무 어려워요. 한 단어는 아니고 지금 딱 생각나는 건 ‘몸이라는 건 몸이 없으면 내가 있을 수 없는데 아프지 않으면 있는지 모르겠는 것’입니다.

은진: 아프면 좀 더 감각할 수 있는 것, 소중함이 느껴지는 것. 너무 공감돼요. 저는 몸이라는 게 나의 과거가 머물고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유일한 공간이자 나만이 머물 수 있는 집이죠. 우리가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게 되는데, 나의 유일한 집이자 주체인 몸을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결국은 이게 나의 것이고 나만이 감각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에 따라서 몸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이 그것들을 절제시키면서 운동을 시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봐요. 몸이 가지고 있는 다른 목소리들을 억압해서 운동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모두가 참여하는 운동이 되게 중요해요. 내가 어떤 동작을 했을 때 감각은 어떻고 어떤 고통이 느껴지고, 그걸 운동하면서 바로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수업이 끝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함께’ 운동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게 결국 나를 존중하는 것이고, 또 함께 수업하는 사람들과의 존중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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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 말씀하셨던 것처럼 한국 운동 문화가 대부분 은진 님이 하시려는 방향과는 다르기 때문에 은진 님의 방식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셨을 듯 해요. 1년 정도 해보니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은진 님 나름대로의 언어나 논리가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1년 해보니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해요.

은진: 반반인 것 같아요. 사람마다 제가 ‘이 수업은 필요해’라고 말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요. 이미 운동을 많이 해오신 분들께는 제가 지향하는 운동이 그 분이 했던 운동과 어떻게 다르거나 비슷한지 설명하는 편이에요. 운동을 아예 안하셨거나 몸이 조금 아픈 분들께는 몸이 왜 아픈지 먼저 여쭤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는 편이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냥 일단 와서 몸잼을 해보는 것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언어로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기 때문에 그것은 제가 대신해줄 수 없고, 제가 느낀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더 크거나 혹은 작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도전해 보세요’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어요.


효진: 앞으로도 몸잼을 계속 운영할 예정이세요? ‘몸’이라는 키워드로 다른 방식의 일을 하실 수도 있고, 완전히 커리어를 전환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가요?

은진: 저는 몸잼에 아주 큰 꿈을 갖고 있습니다. 


효진: 어떤 꿈이에요?

은진: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한국에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혹은 밥을 먹고 가볍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항상 어딘가에 돈을 내고 들어가야 되더라고요. 공원 같은 공간이 잘 없어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비가 내려도 괜찮은 곳, 편안하고 안전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이 많이 없는데 몸잼이 그런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운동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누구든지 와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 또 거기서 정말 자유롭게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또 제가 음식을 좋아하고 나누는 걸 좋아하다보니 뭔가를 같이 기르고 먹는 행위가 가능한 공간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기본적인 욕구들이 다 충족될 수 있는 곳이자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까지 담겨있는 장소를 만드는 게 저의 꿈입니다.


효진: 언제 정도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으세요?

은진: 10년? 지금처럼 하루하루 꾸준히 몸잼을 운영하다 보면 10년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런 생각도 제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하는 거니까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효진: 10년 안에 충분히 해내실 것 같아요. 그럼 최근 은진 님의 가장 중요한 즐거움은 뭐예요?

은진: 저와의 사소한 대화인 것 같아요. 주변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다 보니 저도 시간을 갑자기 슉 흘려보낼 때가 있고, 갑자기 효율성을 따지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정말 무의식적으로요. 그런 생각들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보다는 왜 그랬는지, 그럼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저 혼자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되게 중요해요. 


효진: 최근에는 스스로 어떤 질문을 하셨나요?

은진: 요즘 외발 자전거를 배우고 있는데요, ‘이렇게 하면 조금 쉽게 되지 않을까?’라는 꾀를 부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 생각이 되게 무의식적으로 딱 든 거죠. ‘어, 나 왜 이런 생각하고 있지? 뭐 때문에 이렇게 자전거를 빨리 배우고 싶어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생각을 바라보니까 그냥 빨리 달리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더라고요. 그런 본질적 질문을 하다 보니 결국 나의 욕심이었구나, 싶어서 그 마음을 내려놓게 됐어요.


효진: 근데 외발 자전거는 왜 타게 되신 거예요? 저는 주변에서 외발 자전거 타는 사람을 본 적이 없거든요. 어떤 마음으로 이걸 타기 시작하신 걸까 싶었어요.

은진: 솔직히 아무 마음 없었어요. (웃음) 그냥 재미있게 즐기는 활동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몸 움직임을 가르치다보니 제가 수련할 때는 항상 고민이 많아지고 좀 무거운 분위기에서 운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즐기는 활동이 있으면 마음도 편해지고, 생각도 비울 수 있으니 그런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서 외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어요. 


효진: 외발 자전거 타는 거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엄두가 안 나요.

은진: 효진 님도 아시잖아요. 세상에 어려운 건 없다는 거. 


효진: 이제 2025년이 정말 얼마 안 남았잖아요. 시간은 계속되는 거니까 한 해가 12월 31일로 끝난다고 해서 거기에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올해가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올해 나 뭘 하려고 했더라?’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남은 2025년 동안 은진 님께 제일 중요한 게 있다면 뭘까요?

은진: 주변 사람들과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갖고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시간은 계속되지만 시간을 단위로 나눠서 경험한다는 게 또 의미 있는 거잖아요. 거기서 비롯되는 변화를 바라보는 것도 너무 소중하고요. 효진 님은요?


효진: 저한테도 제일 중요한 건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지난주에 친구들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하룻밤을 자고 갔거든요. 성인이 되고 나서는 집에 친구가 자러 오고 이럴 일이 잘 없는데, 그날은 뭘 특별히 한 게 아닌데도 좋더라고요. 시간을 함께 쓰고 아침을 같이 먹는 일이요. 생활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항상 일하는 시간, 내가 쉬는 시간 정도로 나눠서 생각했는데 관계 맺기를 위한 시간을 좀 의식적으로 만들고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은진: 너무 아름답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많이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