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오직 '신두란'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래놀라를 직접 집에서 구워본 적이 있습니다. 매일 요거트에 곁들여 먹는 그래놀라니까,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도한 일이었어요. 집에 남아있던 오트밀과 견과류, 꿀 등을 섞고 미니오븐에 구웠습니다. 마음처럼 잘되지 않더라고요. 겁먹고 굽는 시간을 줄이면 허여멀건한 그래놀라를 먹어야 했고, 조금만 방심하면 그래놀라가 너무 바짝 구워져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을 필요는 없다는 걸.... 그때 생각했습니다. 


워머스 신두란 님이 만드시는 고마워서그래의 그래놀라는 제가 살면서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그래놀라입니다. 향도, 맛도, 색깔도, 냄새도 완벽해요. 고마워서그래의 그래놀라를 먹고 있으면 만든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기도 하지요. 그래서, 5월의 커뮤니티 리포트에서는 두란 님을 만났습니다.





효진: 두란 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어디에 가장 시간을 많이 쓰시는지, 두란 님의 일주일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두란: 아무래도 고마워서그래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요, 애들 챙기는 게 2순위예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제가 좋아하는 일에 쓰는 것 같아요. 운동과 쇼핑을 잘 안 하고 나머지는 다 해요. 


효진: 자녀분들 연령대가 어떻게 되나요?

두란: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에요. 큰 애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고마워서그래를 시작했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더라고요. 


효진: 자녀분들을 양육하면서 고마워서그래 일을 병행하는 게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제가 육아를 해본 적은 없지만, 오히려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장 손이 많이 간다고 하던데요. 

두란: 제 상황은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를 수 있어요. 첫째가 너무 심한 음식 알레르기를 갖고 있어서 동네 유치원을 못 다녔거든요. 다 거부당했어요. 수소문 끝에 대안 교육기관에 들어갔는데, 제가 간식 도시락을 직접 다 싸서 보냈죠. 제 시간이 아이한테 올인되어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저희 아이들이 시골에 있는 학교에 다녀요. 그 학교에서는 방과 후 활동이 필수고, 그래서 아이들이 오후 4시는 되어야 집에 오거든요. 제가 일을 하기에는 괜찮은 환경인 거죠. 학교에서 애들을 픽업해서 가게로 데리고 올 수도 있었고요. 


효진: 그랬군요. 그럼 고마워서그래 일을 하시면서 가장 좋은 점과 가장 힘든 점은 뭐라고 느끼시나요?

두란: 제가 사장이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놀라를 선물할 수 있는 게 가장 좋고요. (웃음) 출퇴근 시간을 직접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좋아요. 단점은 온전히 '고마워서그래=신두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고 그게 조금 힘들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단점과도 이별한 것 같고요. 애들한테 신경을 더 써주고 싶은데 못 그럴 때가 있다는 게 미안하죠. 예를 들면 애들이 1월에 겨울방학을 시작하는데, 그때는 고마워서그래가 제일 바쁜 시기이거든요. 그리고.... 요즘 1인 자영업자는 a부터 z까지 다 해야 하잖아요. 브랜딩이라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또 엊그제 일기장에 쓴 얘기가 있는데, 기후위기가 고마워서그래에게는 가장 주된 적이라는 거예요. 고마워서그래가 수제 그래놀라 중에서도 제일 가격이 높은 편인데요, 5년 동안 한 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5년 동안 물가는 미친 듯이 올랐거든요. 전쟁 때문에 곡물 가격이 뛰고, 미국에서 오는 견과류 가격도 또 뛴다고 그러고. 기후위기 때문에 카카오 가격이 엄청 뛰었고요. 날씨가 점점 습하고 더워지기도 하잖아요. 올해 산업용 제습기를 처음으로 샀어요. 어제도 산업용 제습기를 켜고 일을 하는데 너무 덥더라고요. 그래놀라를 굽는다고 오븐까지 켜야 하니까요. 그럼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전기를 잡아먹으면서까지 이런 일을 내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죠. 

"나처럼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마워서그래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 생각해요."


효진: 브랜딩이 너무 어렵다고 말씀하셨지만, 최근 고마워서그래 그래놀라를 다양한 책들의 북토크에서 자주 만나고 있거든요. 여러 책에서 좋았던 문장들을 직접 써서 그래놀라와 함께 배송해주시기도 하고요. 두란 님이 원래 좋아하는 것과 하는 일을 결합한 결과인 것 같은데,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는지 듣고 싶어요.

두란: 제가 만드는 그래놀라 레시피는 제가 개발한 게 아니라 어디서 배워온 거예요. 만약 이 레시피를 100명이 배웠다고 치면, 다들 비슷비슷한 맛을 내면서 그래놀라를 파는 건데 '그럼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차이점은 뭘까?'라는 고민이 들었어요. 다른 브랜드들과 조금 달라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는 몰랐고, 그래놀라를 주문해 주신 분들께 너무 고마운 마음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딱히 쓸 말이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편지를 메꿔 줄 좋은 문장들을 엽서에 적은 거예요. 좋은 시 구절, 문장이 있으면 손님들이 엽서를 버리지 않고 냉장고에 붙여두지 않을까 싶었어요. 

마케팅 수업에 가면 고객 페르소나를 정하라고 하는데 어떤 분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브랜드는 주인을 닮아간다고. 당신과 비슷한 타깃층을 찾아보라고요. 그럼 나처럼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마워서그래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효진: 고마워서그래가 확 알려진 건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 '여둘애드'로 광고가 나가면서부터인 거죠?

두란: 네, 그때부터 쫙 알려지게 됐어요. 이슬아 작가님 등이 본인 인스타에 고마워서그래를 소개해 주시면서 책 읽는 분들이 고객으로 많이 들어오시기도 했고요. 요즘에는 오프라인 북토크에 그래놀라 샘플을 협찬하기도 하는데요, 정말 좋아요. 나와 생각이 완전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 커뮤니티인데 북토크가 딱 그런 곳이잖아요. 그 자리만의 현장감, 안전함이 저한테 주는 기쁨이 있어요. 


효진: 그래놀라를 손으로 직접 다 구우시잖아요. 저도 몇 달 전에 심심해서 그래놀라를 구워본 적이 있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잘 안되고, 맛있지도 않고. (웃음) 그래놀라를 만든다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거든요. 더구나 날씨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기도 할 것 같고요. 그래놀라 굽는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고 해서 늘 같은 결과물이 보장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점에서 어렵고 힘든, 한편으로는 대단한 일을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두란: 그런데 모든 일이 다 어렵지 않나요? 저는 기본값을 그렇게 잡기로 했어요. 모든 일이 잘될 리 없다. 모든 일은 다 어렵다. 그런 점에 있어서 저는 오히려 축복받은 사람인 것 같아요. 일단 고객분들이 너무 착해요. 다정한 사람들이 많아요. 리뷰나 배송 메시지에 "남편한테서도 못 받은 편지를 여기서 받네요", "사장님, 아프시면 안 돼요" 이런 글들이 가끔 있어요. 저는 어디서 뭘 주문하면서 한 번도 배송 메시지에 그런 말을 써본 적이 없거든요. 저는 굉장히 느리게 반응하는 사람인데, 고마워서그래에 이렇게 반응해 주는 분들을 보면서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나도 열심히 따라가야겠다, 생각해요. 


효진: 초반에 '고마워서그래 일과 양육을 제외하고는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쓴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인스타그램에 올리시는 걸 보면 모임이나 커뮤니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두란: 일단 뉴그라운드 활동을 하고 있고요, 예전에 밑미에서 함께 육아 일기를 쓰셨던 분께 졸라서 사업 일기 쓰는 모임을 함께 하고 있어요. 그리고 '창고살롱'이라는 커뮤니티에서 만난 분들이 너무 좋았어서 그 분들과 가끔 만나고요, 마케팅 수업 같은 것도 엄청 들으러 다녔고요. 일단 궁금한 게 있으면 어디든 다 가봐요.


"오직 '신두란'만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 
남들이 안 하는 걸 해보려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효진: 궁금하면 움직여보는 타입이신 거네요. 제가 인터뷰 준비를 하다가 예전에 두란 님이 창고살롱에서 진행하셨던 토크 프로그램 요약본을 읽었거든요. 정말 많은 직업과 일들을 거쳐 오셨더라고요. 그때그때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그 일들을 선택하셨을 텐데, 지금 현재 두란 님께 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두란: 이 질문이 제일 답하기 어려웠어요. (웃음) 일단, 일을 시작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돈을 벌고 싶었어요. 남편이 갖다 주는 돈 말고 내 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고 있고요. 또 하나는, 일은 제게 재미있는 것이에요. 주변에서 저한테 많이 하시는 이야기가 '왜 그렇게 돈 안 되는 일만 하고 있냐'라는 거거든요.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재미인데 그걸 빼버리면 나란 사람은 그냥 없어지는 것 같아요. '엄마', '며느리', '아내'도 중요한 역할이지만 오직 '신두란'만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 남들이 안 하는 걸 해보려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효진: 남은 2025년, 두란 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두란: 올해 제 목표는 생존이에요. 과연 저성장 시대에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저도 하고 있어요. 올해가 지나고 나면 자영업자들이 진짜 우수수 다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거든요. 

저는 고마워서그래를 10년 운영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5년을 지나왔으니 앞으로의 5년은 브랜드를 이렇게 내 마음대로 운영해도 먹고 살 수는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