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그라운드 이번 시즌에는 이전 시즌들보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사실이 반갑고 신기했어요. 수도권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지만 그 외 지역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수도권 외 지역에 계신 워머스분들과 오프라인으로 자주 뵙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테니, 이번 시즌의 커뮤니티 리포트에서는 그런 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시즌 인터뷰의 첫 번째 주인공은 장지현 님입니다. 사랑스러운 강아지 '하지'의 반려인이기도 한 지현 님은 부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계신다고 해요. 지난 토요일 정오, 줌으로 마주한 지현 님께 '연구'라는 업무에 관해서, 일을 하는 지현 님의 마음과 태도에 관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화면 너머의 지현 님과 직접 마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오르는 시간이었습니다.
효진: 지현 님, 요즘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계세요?
지현: 당연히 일이에요. 저는 부산에 있는 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11월이 연구 마감 기간이거든요. 연구원에서는 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계속 연구를 진행하는데 1년에 한 사람당 2~3개 정도의 연구를 담당해요. 한 연구당 5, 6개월이 소요되고 중첩되는 부분들이 많다 보니 늘 마감에 찌들어 살고 있습니다.
효진: 어떤 연구를 하시는 건가요?
지현: 지역에 필요한 사회복지 관련 정책들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이제 제가 박사 과정까지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거든요.
효진: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지현: 저기 멀리 보이는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본 적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어요. 연구를 할 때마다 단기적인 목표는 가지고 가지만요. 최근에 했던 생각을 조금 공유하면, 작년에는 제가 자립 준비 청년 연구를 했고 올해는 소위 말하는 빈곤 청년들의 성인기 이행이 늦어지는 이유를 살펴보는 연구를 했어요. 그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감정은 좌절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랬어요.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서 어떤 정책을 개발하고 제안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대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결국에는 이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필요한 건 돈인데, 사회복지 연구자로서 저의 원래 지향점은 현금보다는 현물 지원을 통해 대상자들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돈을 먼저 주는 게 맞을까? 그런데 돈 없이 역량 강화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이들에게 '그래도 힘을 가져야지'라고 말할 수 있나? 이런 고민들이 들고, 또 한편으로는 이게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흐름과 자본주의의 문제도 있는 건데 시에서 감당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해요. 그래서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라는 식으로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가는 거죠.
효진: 지현 님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청년 문제인가요?
지현: 네, 청년이지만 그 청년이라는 범주 안에서 조금 소외된 청년이요. 앞으로는 다양성에 관해 조금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사회에서 무엇이라고 분류되는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요.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은 주제인데, 저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 청년들이 궁금하거든요. 한국 이주 1세대라는 건 보통 결혼 이주 여성인데, 매매혼이 굉장히 많아요. 그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아이들이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감정과 불안을 느낄 것인가, 그게 걱정돼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고민하는 중이에요.
효진: 이주 노동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지금 한국 상황에서도 너무 필요한 연구일 것 같아요. 또 저는 지현 님의 일주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척 궁금한데요, 하시는 일이 연구다 보니 공부와 업무의 경계가 거의 없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어떠세요?
지현: 일주일 단위로는 뭘 하고 있다고 말할 건덕지가 없고요(웃음), 5개월 단위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책임을 맡게 되는 연구가 1년에 2, 3개 있는 건데, 연구 시작 전 일단 그 주제에 관한 선행 연구를 다 검토해요. 논문 쓰는 과정과 비슷해요. 그 순간부터 매일, 거의 한 달 동안은 선행 연구만 계속 공부하는 것 같아요.
그다음으로 내 연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대상자를 직접 만나야 할지 아니면 통계 자료를 활용할지, 전문가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등을 정하는 게 한 달 정도예요. 이후에는 주제 관련 전문가들을 모셔서 자문을 구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을 2, 3개월 정도 하죠. 나머지 기간에는 자리에 앉아서 글만 써요.
효진: 어떻게 보면 외로운 작업이기도 하겠네요.
지현: 직장 내 동료들과 제 연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데, 저는 잘 얘기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냥 혼자 해요. 연구라는 게 시작부터 끝까지 제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끌고 가는 것이다 보니, 다른 의견이 들어왔을 때 제 중심이 흔들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대신 제가 모르는 부분들은 주변에 물어보죠.
그런데 귀를 닫고 연구하는 게 절대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아요. 논문을 쓸 때는 그럴 수 있는데, 제가 하는 일은 합의도 있어야 하고 다른 분야의 관점을 담아서 확장될 필요도 있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연구를 하는 도중에 어떤 코멘트를 듣는 게 평가받는 느낌이 들어서 혼자 완성해 버리고는 하는데, 그럴 때 보고서 퀄리티가 조금 아쉬운 경우도 있어서 요즘 이 부분을 성찰하고 있어요.
효진: 일을 하시면서 재미있거나 좋은 부분, 혹은 그 일을 버티게끔 하는 동력은 뭔가요?
지현: 일단, 직장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저희 회사의 근무제도가 조금 좋은 편이에요. 유연근무제는 못하더라도 시차 출퇴근제는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그걸 제가 매일매일 바꿀 수 있어요. 또 박사들에게는 다 개인 연구실이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연구실에만 있을 수 있죠.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게 좋아요.
조금 더 폭넓게, 연구자라는 직업의 측면에서 보면 연구를 할 때 몰입할 수 있는 게 재미있어요. 학술적으로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문제 제기를 한다는 자체가 성취감을 줘요. 근거로 설득하고 증명하면서 '이 가설이 맞다'라는 걸 드러내는 과정이 저한테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효진: 그렇군요. 사실 제가 부산 출신인데, 어릴 때부터 늘 서울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굉장히 컸어요. 지현 님은 부산에서 태어나 학업도, 일도 부산에서 쭉 하며 살고 계시잖아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계속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지현: 제가 다른 지역에서 생활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경우와 비교하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서울로 간 친구들,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쟁이 너무 치열한 분위기인 것 같더라고요. 물론 서울이라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체로 그런 분위기라면 거기서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을 때 조급함이 있을 수 있잖아요. 부산에서는 그런 감정이 덜한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가까운 친구, 부모님도 다 제 주변에 있으니 여기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진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부산에서 사는 게 괜찮고 좋아요. 어쨌든 안정적 직장에 자리 잡고 있고, 가족이랑 친구도 있다 보니까요. 하지만 '부산에서 일하는 여성' 전체로 보면 좀 힘든 것 같아요. 괜찮은 회사가 부족하니까 많은 사람이 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 기업에서 일할 수밖에 없어요. 조금 회사 규모가 있다 해도 여성의 경우에는 승진도 어렵고요.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도 크고... 그래서 일하는 여성들이 부산에 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물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별로이지만요. (웃음)
효진: 말씀하신 것처럼 지현 님은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에 계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그라운드 같은 커뮤니티가 지현 님께 필요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지현: '안전한 공간에서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지지해 주는 모임'이라는 뉘앙스의 뉴그라운드 홍보 문구를 읽었는데, 그게 되게 좋았어요.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안전한 공간에서 얘기 나누면서 서로를 지지해 주는 것, 그게 제가 갈망했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좀 좋아해요. 새로운 모임에 가서 저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간접적인 경험을 하는 게 환기가 돼요.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참여하는 북클럽이 있는데요,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그 북클럽 멤버들과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모임을 하고 있거든요. 제 일상을 벗어난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오는 환기가 저한테 자극이 돼요. 자기계발적인 자극이 아니라... 정말 인생의 어떤 부분에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열심히,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그 모임에 다녀왔을 때, 그리고 뉴그라운드 이번 시즌에서 웰컴데이 모임을 끝내고 났을 때도 그랬어요. 내가 스스로 좀 열심히 잘 살아서 큰 부분을 변화시키지는 못해도, 정말 0.001%라도 사회에 빛이 되고 싶다. 이 마음이 문장으로 잘 설명은 안 되는데 아무튼 그래요.
효진: 지현 님 마음에 뉴그라운드가 그런 작용을 했다니 너무 반갑고 기뻐요. 이번 시즌에 지현 님처럼 수도권 외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꽤 계시는 것 같은데요, 혹시 커뮤니티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이나 모임이 있을까요?
지현: 한 공간에 모여서 각자 일하다가 헤어지는 것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런 걸 '괴상한 스터디'라고도 하던데, 누구는 뜨개질하고 누구는 책 읽고 누구는 일 하고, 그런 걸 그냥 한 공간에서 함께 하다가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기도 하는 모임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함께하고 있는 북클럽 멤버 중 한 분이 독일의 '오프라인 걸스'에서 영감을 받아서 부산에서도 모임을 만드셨거든요. 11월 9일 오전 10시에 부산에서 진행하는데, 제가 참석해 보고 어땠는지 뉴그라운드에서 꼭 공유할게요.
효진: 지현 님 가까이에 좋은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언젠가 워머스분들과도 부산에서 지현 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지현 님의 반려견 '하지'에 관한 것이에요. 지현 님의 가장 큰 삶의 즐거움은 역시 하지에게서 오는 걸까요?
지현: 맞아요. 하지는 제가 <효리네 민박>을 보고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에 포인핸드를 보고 데려온 저의 첫 반려견이에요. 2020년 5월 6일에 저희 집에 왔고, 올해로 9~11세 사이인 것으로 추정돼요. 하지를 데려올 당시에 제가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약을 먹고 있었거든요. 얘가 그런 것도 좀 치유해 주고, 저에게 책임감도 심어준 존재예요. 이제는 제 삶의 100% 이상을 하지가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 하지가 없으면 저는 일 안 해요. 정말 때려치웠을 거예요. (웃음)
효진: 지현 님, 요즘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계세요?
지현: 당연히 일이에요. 저는 부산에 있는 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11월이 연구 마감 기간이거든요. 연구원에서는 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계속 연구를 진행하는데 1년에 한 사람당 2~3개 정도의 연구를 담당해요. 한 연구당 5, 6개월이 소요되고 중첩되는 부분들이 많다 보니 늘 마감에 찌들어 살고 있습니다.
효진: 어떤 연구를 하시는 건가요?
지현: 지역에 필요한 사회복지 관련 정책들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이제 제가 박사 과정까지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거든요.
효진: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요.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지현: 저기 멀리 보이는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본 적은 정말 단 한 번도 없어요. 연구를 할 때마다 단기적인 목표는 가지고 가지만요. 최근에 했던 생각을 조금 공유하면, 작년에는 제가 자립 준비 청년 연구를 했고 올해는 소위 말하는 빈곤 청년들의 성인기 이행이 늦어지는 이유를 살펴보는 연구를 했어요. 그들을 만나면서 들었던 감정은 좌절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랬어요.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서 어떤 정책을 개발하고 제안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대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결국에는 이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필요한 건 돈인데, 사회복지 연구자로서 저의 원래 지향점은 현금보다는 현물 지원을 통해 대상자들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돈을 먼저 주는 게 맞을까? 그런데 돈 없이 역량 강화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이들에게 '그래도 힘을 가져야지'라고 말할 수 있나? 이런 고민들이 들고, 또 한편으로는 이게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흐름과 자본주의의 문제도 있는 건데 시에서 감당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기도 해요. 그래서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라는 식으로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가는 거죠.
효진: 지현 님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청년 문제인가요?
지현: 네, 청년이지만 그 청년이라는 범주 안에서 조금 소외된 청년이요. 앞으로는 다양성에 관해 조금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사회에서 무엇이라고 분류되는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요.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은 주제인데, 저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 청년들이 궁금하거든요. 한국 이주 1세대라는 건 보통 결혼 이주 여성인데, 매매혼이 굉장히 많아요. 그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아이들이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감정과 불안을 느낄 것인가, 그게 걱정돼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고민하는 중이에요.
효진: 이주 노동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지금 한국 상황에서도 너무 필요한 연구일 것 같아요. 또 저는 지현 님의 일주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척 궁금한데요, 하시는 일이 연구다 보니 공부와 업무의 경계가 거의 없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어떠세요?
지현: 일주일 단위로는 뭘 하고 있다고 말할 건덕지가 없고요(웃음), 5개월 단위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책임을 맡게 되는 연구가 1년에 2, 3개 있는 건데, 연구 시작 전 일단 그 주제에 관한 선행 연구를 다 검토해요. 논문 쓰는 과정과 비슷해요. 그 순간부터 매일, 거의 한 달 동안은 선행 연구만 계속 공부하는 것 같아요.
그다음으로 내 연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대상자를 직접 만나야 할지 아니면 통계 자료를 활용할지, 전문가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등을 정하는 게 한 달 정도예요. 이후에는 주제 관련 전문가들을 모셔서 자문을 구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을 2, 3개월 정도 하죠. 나머지 기간에는 자리에 앉아서 글만 써요.
효진: 어떻게 보면 외로운 작업이기도 하겠네요.
지현: 직장 내 동료들과 제 연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데, 저는 잘 얘기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냥 혼자 해요. 연구라는 게 시작부터 끝까지 제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끌고 가는 것이다 보니, 다른 의견이 들어왔을 때 제 중심이 흔들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대신 제가 모르는 부분들은 주변에 물어보죠.
그런데 귀를 닫고 연구하는 게 절대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아요. 논문을 쓸 때는 그럴 수 있는데, 제가 하는 일은 합의도 있어야 하고 다른 분야의 관점을 담아서 확장될 필요도 있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연구를 하는 도중에 어떤 코멘트를 듣는 게 평가받는 느낌이 들어서 혼자 완성해 버리고는 하는데, 그럴 때 보고서 퀄리티가 조금 아쉬운 경우도 있어서 요즘 이 부분을 성찰하고 있어요.
효진: 일을 하시면서 재미있거나 좋은 부분, 혹은 그 일을 버티게끔 하는 동력은 뭔가요?
지현: 일단, 직장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저희 회사의 근무제도가 조금 좋은 편이에요. 유연근무제는 못하더라도 시차 출퇴근제는 가능하거든요. 그리고 그걸 제가 매일매일 바꿀 수 있어요. 또 박사들에게는 다 개인 연구실이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연구실에만 있을 수 있죠.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게 좋아요.
조금 더 폭넓게, 연구자라는 직업의 측면에서 보면 연구를 할 때 몰입할 수 있는 게 재미있어요. 학술적으로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고 문제 제기를 한다는 자체가 성취감을 줘요. 근거로 설득하고 증명하면서 '이 가설이 맞다'라는 걸 드러내는 과정이 저한테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효진: 그렇군요. 사실 제가 부산 출신인데, 어릴 때부터 늘 서울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굉장히 컸어요. 지현 님은 부산에서 태어나 학업도, 일도 부산에서 쭉 하며 살고 계시잖아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계속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지현: 제가 다른 지역에서 생활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경우와 비교하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서울로 간 친구들,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쟁이 너무 치열한 분위기인 것 같더라고요. 물론 서울이라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체로 그런 분위기라면 거기서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을 때 조급함이 있을 수 있잖아요. 부산에서는 그런 감정이 덜한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가까운 친구, 부모님도 다 제 주변에 있으니 여기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진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부산에서 사는 게 괜찮고 좋아요. 어쨌든 안정적 직장에 자리 잡고 있고, 가족이랑 친구도 있다 보니까요. 하지만 '부산에서 일하는 여성' 전체로 보면 좀 힘든 것 같아요. 괜찮은 회사가 부족하니까 많은 사람이 환경이 별로 좋지 않은 기업에서 일할 수밖에 없어요. 조금 회사 규모가 있다 해도 여성의 경우에는 승진도 어렵고요.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도 크고... 그래서 일하는 여성들이 부산에 살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물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별로이지만요. (웃음)
효진: 말씀하신 것처럼 지현 님은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에 계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그라운드 같은 커뮤니티가 지현 님께 필요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지현: '안전한 공간에서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지지해 주는 모임'이라는 뉘앙스의 뉴그라운드 홍보 문구를 읽었는데, 그게 되게 좋았어요.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안전한 공간에서 얘기 나누면서 서로를 지지해 주는 것, 그게 제가 갈망했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좀 좋아해요. 새로운 모임에 가서 저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간접적인 경험을 하는 게 환기가 돼요.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참여하는 북클럽이 있는데요,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그 북클럽 멤버들과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모임을 하고 있거든요. 제 일상을 벗어난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오는 환기가 저한테 자극이 돼요. 자기계발적인 자극이 아니라... 정말 인생의 어떤 부분에 자극이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열심히,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그 모임에 다녀왔을 때, 그리고 뉴그라운드 이번 시즌에서 웰컴데이 모임을 끝내고 났을 때도 그랬어요. 내가 스스로 좀 열심히 잘 살아서 큰 부분을 변화시키지는 못해도, 정말 0.001%라도 사회에 빛이 되고 싶다. 이 마음이 문장으로 잘 설명은 안 되는데 아무튼 그래요.
효진: 지현 님 마음에 뉴그라운드가 그런 작용을 했다니 너무 반갑고 기뻐요. 이번 시즌에 지현 님처럼 수도권 외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꽤 계시는 것 같은데요, 혹시 커뮤니티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이나 모임이 있을까요?
지현: 한 공간에 모여서 각자 일하다가 헤어지는 것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런 걸 '괴상한 스터디'라고도 하던데, 누구는 뜨개질하고 누구는 책 읽고 누구는 일 하고, 그런 걸 그냥 한 공간에서 함께 하다가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기도 하는 모임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함께하고 있는 북클럽 멤버 중 한 분이 독일의 '오프라인 걸스'에서 영감을 받아서 부산에서도 모임을 만드셨거든요. 11월 9일 오전 10시에 부산에서 진행하는데, 제가 참석해 보고 어땠는지 뉴그라운드에서 꼭 공유할게요.
효진: 지현 님 가까이에 좋은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언젠가 워머스분들과도 부산에서 지현 님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지현 님의 반려견 '하지'에 관한 것이에요. 지현 님의 가장 큰 삶의 즐거움은 역시 하지에게서 오는 걸까요?
지현: 맞아요. 하지는 제가 <효리네 민박>을 보고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에 포인핸드를 보고 데려온 저의 첫 반려견이에요. 2020년 5월 6일에 저희 집에 왔고, 올해로 9~11세 사이인 것으로 추정돼요. 하지를 데려올 당시에 제가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약을 먹고 있었거든요. 얘가 그런 것도 좀 치유해 주고, 저에게 책임감도 심어준 존재예요. 이제는 제 삶의 100% 이상을 하지가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만약 하지가 없으면 저는 일 안 해요. 정말 때려치웠을 거예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