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작가/독립 출판 제작자 황문진 “제가 계속 궁금해하고, 생각하는 건 ‘인간’인 것 같아요”


황문진 님을 소개하려면 한 단어로는 부족합니다. 작가, 독립 출판 제작자, 영상 편집자, 일상을 단단하게 만드는 소모임의 리더. 언뜻 보기엔 맞닿아 보이지 않는 일들, 하지만 그 속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창작’에 대한 욕구가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죠.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만나는 사람, 경험은 모두 문진 님의 영감이 되어주니까요. 앞으로도, 문진 님을 한 단어로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인간’과 ‘창작’이란 키워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주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요. 앞으로 더 큰 세계에서,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문진 님을 일찍이 만나 즐거웠습니다.

* 이 인터뷰는 뉴그라운드 시즌 1 프로그램 <서로 서로 일 인터뷰>를 통해 콘텐츠 크리에이터 한지혜 님이 황문진 님께 묻고, 답변을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Q. 문진 님, 하고 계신 일을 소개해주세요! 
현재 다섯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독립 출판 제작자로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고요. 만 보 걷기, 다섯 문장 쓰기 같은 일상 습관을 만드는 ‘이치모임’을 진행해요. 이전에 독립영화를 만들어 본 경험을 살려 유튜브 채널의 영상 편집자이기도 하죠. 한편, 오전에는 초등학생 아이들 돌봄 교사이고, 주일엔 교회 미디어팀 팀장으로도 일해요.


Q.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정작 본인은 혼란스럽거나 고민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문진 님도 혹시 고민이 있으신가요?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해요.
나의 전문성은 어떤 걸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전문성이라고 부를만한 게 뭘까. 늘 궁금해하고 고민해요. 

지금 하는 일들은 거의 ‘프리랜서’로 하는 일인데요. 그 역할로 본다면 시간 약속과 마감에 대한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불안을 견디는 힘도요. 누가 나를 감독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합리화하기가 굉장히 쉽거든요. 그게 쌓이면 습관이 되고, 자책하고,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존감도 낮아지더라고요. 목표가 있다면 그걸 아주 잘게 쪼개서 목표를 달성하는 습관들을 연습해 오고 있어요. 물론, 지금도 참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여전히 마감을 앞두고 일이 마무리가 안 되어있으면 자책 왕이 되기도 하고요. 

한편,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아요. 당장 어떤 성과나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믿음을 가지고 그 시간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 싶어요. 저는 1월부터 지금까지 목, 금, 토 오전에는 저와 비슷한 프리랜서 작가랑 줌으로 각자의 작업을 하는 시간을 보내거든요. 작업이 잘 되든, 안 되든 시간을 지키고 책상에 앉아서 집중하기 위해서 애쓰는 시간이 필요하단 걸 알았어요. 그런 노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Q. ‘조직 밖에서 홀로 일하는 사람’이면서도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반대로,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경험도 해보셨나요? 어떠셨어요? 
제일 재밌고 시너지 넘쳤던 협업은, 독립영화 워크숍에서 했던 단편영화 제작이었어요. 물론, 너무 힘들고 피곤하고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요. 그래도 이 질문을 받고 딱 떠오른 게 그때네요! 

팀으로 나눠서 단편영화 두 편을 만들었어요. 회의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좀 더 나은 목표를 위해서 함께 달리고 있다는 감각이 굉장히 짜릿했어요. 워크숍 특성상,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책임을 공동으로 가지고 가야 했는데요. 분명 어느 부분에선 비효율적이기도 했는데, 모든 파트를 조금씩이라도 경험할 수 있어서 재밌기도 했어요. 기한 안에 만들어야 하는 일인 만큼, 서로의 주장이나 고집만 계속 내세울 수도 없었죠. 적당한 타협과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면서도, 중심은 잃지 않는 것도 중요했고요. 사실 결과물 퀄리티는 정말 처참한 수준이었고, 과정도 여러모로 어려웠지만 가장 재밌었던 협업이었어요.


"당장 어떤 성과나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믿음을 가지고 그 시간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 싶어요."


Q. 일하면서 실수를 했던 적은 없나요? 실수로부터 배운 것도 말해주세요. 
어떤 일을 기획하고 진행할 때, 상사에게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먼저 공지를 해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제게는 그게 약간 트리거가 됐는데요. 그래서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는 조직에서는 보고체계가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고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같이 진행하는 팀원들이 있는 상황에서도, 중간중간 진행 상황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나 방향성을 공유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또 하나는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 마감기한을 어긴 것인데요. 그 이면에는 하기 싫은 마음도 있고, 때로는 너무 잘하고 싶어서 완벽함을 추구하느라 두려워서 회피하는 경향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절대 한 번에 완벽하게 잘할 수 없다는 생각, 아주 간단한 일이라도 해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Q. 그럼 문진 님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은 뭔가요? 
저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걸 잘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제게 ‘사람 모으는 걸 잘한다’라고도 하고요. 혼자 일하는 게 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럿이 같이할 때 느껴지는 시너지가 좋아요.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진행하는 걸 좋아해요. 일의 방향성이나 결이 비슷한 사람일 경우 더할 나위 없고요!


Q. 주변에서 칭찬할 정도로 잘한다는 ‘문진표 사람 모으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교회에서 미디어팀을 만든 일로 예를 들어볼게요. 제가 영상에 관심을 두고 영상 편집을 배우자마자 생긴 일이었는데요. 마침 ‘미디어팀을 꾸리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제가 팀을 꾸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건 ‘하고 싶은 사람들이랑 하기’였어요. 물론 관심사만으로 모이다 보니 당장의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나진 않았어요. 그래도 모임 분위기를 좋게 만들 수는 있더라고요! 

그 외에는 걷기, 독서, 쓰기의 매달 모임이 있는데요. 이것 역시, 어떤 하나의 작은 목표를 기준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을 모았어요. 

저는 채찍과 당근 중, 당근을 더 많이 주려고 하는 리더예요. 저야말로 당근이 더 잘 맞는 스타일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우선 기준을 현실적으로 잡아요. 그리고 작은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면서 진행을 하는 편이에요. 안 걷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만 보를 매일 걸을 순 없잖아요. 일단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거로 목표로 하자, 성공하면 그다음에는 점심시간에 15분, 저녁 먹고 15분 이런 식으로 걸어보자 등으로 제안을 하는 편이에요. 말하고 보니, 저는 방향성이 같은 사람들을 독려하는 일을 잘하는 것 같아요! 


Q. 방향성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모여도 어려움이 있지 않나요? 그럴 땐 어떻게 해결하세요? 
맞아요. 여전히 고민이고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처음 마음먹은 것처럼 잘 안되기도 하고요. 저는 통제를 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내 뜻대로 안 되면 답답하기도 한데요. 그럴수록 ‘내가 이 모임을 이끄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흘러가는 대로 맡겨야 한다’는 마음을 기억하려고 해요. 제가 손에 꽉 쥐면 쥘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없다’라는 문장 역시 기억하려고 해요. ‘애초에 불가능한 거니까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자’ 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오히려 일이 좀 부드럽게 풀리더라고요.


‘내가 이 모임을 이끄는 게 아니다’,
‘흘러가는 대로 맡겨야 한다’는 마음을 기억하려고 해요.


Q. 지금도 여러 형태의 일을 만들고, 또 해내고 계시잖아요.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을 딱 하나 꼽으면 뭘까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일이에요. 그게 수입과 연결이 될지 안 될지는 나중의 문제 같고요. 어렸을 적부터 창작, 특히는 영상 쪽과 관련하여 욕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고3에는 예능 PD가 되고 싶었고, 드라마 작가나 영화감독을 꿈꿨던 때도 있었어요. 만드는 일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견뎌야 하죠. 분명 괴롭기는 해요. 하지만 그냥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 자체로 유의미한 게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도 콘텐츠 만들기의 연장선인데요. 두려워서 선뜻 마주하기 어려웠던 영화제작을 해보고 싶어요.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해보는 거죠!


Q. 문진 님께 영향을 준 콘텐츠는 뭔지도 궁금해요. 
책, 영화, 드라마, 노래 같은 다양한 장르를 전반적으로 다 좋아해요. 요즘은 유튜브 영상도 꽤 많은 영향을 줘요. 같은 장르가 아닌 것들 사이에서 동시성을 발견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드라마는 <괜찮아, 사랑이야>, <질투의 화신>, <또 오해영>. 영화는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의 한국 영화들을 참 좋아해요.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시월애> 같은 거요. 그 외에도 손꼽을 수 있는 작품은 <중경삼림>, <라라랜드>도 있네요. 독립영화들도 관심이 많은데요. 구교환, 이옥섭 감독의 작품을 좋아해요.

제가 요즘 기다리고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도 몇 개 꼽아보면요. 홍진경의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패션과 브이로그 유튜버 <런업>,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클립 영상을 재밌게 보고 있어요. 

그 외에는 중화권 드라마나 영화도 좋아해요. 특히 대만 영화나 드라마가 주는 아련함, 청춘 느낌! 아시죠? 제가 아련한 정서가 깔려있거나 기억을 미화시키는 영상들을 좋아해요. 중국어를 전공하기도 해서 문화가 친숙하기도 하고요. 


Q. 콘텐츠 종류도, 성격도 다양하게 즐기시는군요! 그렇다면, 앞으로 문진 님이 만들고 싶은 콘텐츠는 어떤 모습인가요? 
가족, 연인 등 어떤 관계의 양상이나 개인의 내면, 고민과 관련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그게 글이든 영상이든.

저는 넓고 얕게 호기심이 많은 편이에요. 그 중에도 계속 궁금하고, 생각하고, 왜 그럴까 하는 것들은 ‘인간’ 같아요. 자꾸 실망하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저는 제가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사랑’에 대한 궁금증도 여전해요. 단순히 어떤 연인관계의 사랑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차원으로요. 결국은 사랑이 이긴다는 생각도 하고요. 

제가 요즘 하고 싶은 건 '재미있는 콘텐츠'예요. 예전에는 메시지 중심적인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재미'에 꽂혀있어요. 저는 콘텐츠를 통해서 제 생각이나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일종의 나와 비슷한 군의 사람들을 찾는 일이랄까. 좀 덜 외롭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네요.


Q. 어느덧 마지막 질문입니다. 문진 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요? 
나를 조금 더 큰 세계로,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성장시키는 것. 그리고 전문성을 키우고, 인정받고 싶은 것.

현재 제가 하는 일은 크게 둘로 나뉘어요. 돌봄 교사나 영상 편집 등의 생계를 꾸리는 일, 책과 영화를 만드는 목표를 위한 일. 하지만 일이라는 게 딱딱 구분 짓는 것도 어렵지 않을까요? 나중에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하고요. 아마 나중에 제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때는 또 다른 목표를 찾고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아예 새로운 일이든, 아니면 그 일에서 더 심화하는 일이든지요!


인터뷰, 글. 한지혜 (콘텐츠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