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어린이를 위한 디자이너 이소림 “다양한 사람들을 환대하는, 일상의 활력을 얻어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소림 님의 일 이야기엔 항상 사람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배려가 담겨있었습니다. 어린이에게 디자인으로 소통하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법을 알려주며 일의 기쁨을 느끼고, 함께 일하는 동료에겐 언제든 대화 가능한 믿음직한 선배가 되어주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담겨있는 소림 님의 일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공간과 그 안에 머물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이너이자 기획자 소림 님이 만들 따뜻할 그 공간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소림 님의 다음 스텝을 응원하며.

* 이 인터뷰는 뉴그라운드 시즌 1 프로그램 <서로 서로 일 인터뷰>를 통해 네이버 파트너 스퀘어 PD 진다슬 님이 이소림 님께 묻고, 답변을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Q.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도서관, 놀이터 등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건축설계 회사에서 공간기획과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며, 어린이 건축 교육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지금 하는 일을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영유아를 위한 교육용 장난감을 디자인하는 제품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해 디자인 개발 프로세스 경험을 쌓았고, 이후 2개의 에이전시에서 일하며 제품과 공간디자인으로 디자인 영역을 넓혔습니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디자인 교육에 큰 가치를 느껴, 건축문화 관련 팟캐스트를 만들고 어린이 건축 수업의 교사 활동을 사이드잡으로 하기도 했는데, 그 경험과 역량을 인정받아 산업디자인에서 건축설계 회사로 점프하게 되었습니다. 

에이전시이면서도 ‘어린이’라는 특정 타깃을 위한 공간에 주력하고, 자체적으로 '건축 교육'을 진행하는 것이 제가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Q. 건축회사와 공간기획이 제게는 조금 생경하게 느껴지는데요. 최근 소림 님께서 가장 몰두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소림 님의 일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힌트가 될 것 같습니다. 요즘 가장 에너지와 애정을 쏟은 업무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요? 
최근에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는데요, 저는 PM이자 설계 초기 단계의 공간 계획을 맡았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사명감과 평소에 애정이 있던 임상 심리 활동가분들을 위한 좋은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기쁨으로 열심히 참여했어요. 특히 청소년만이 아닌, 공간에서 일하는 심리상담 활동가분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듣고 인터뷰, 사용자 여정 지도 등 여러 종류의 사용자 리서치 경험을 했던 발휘해, 애정을 가지고 정말 진취적으로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 제 전문성이 발휘되는 효능감도 크게 느꼈고, 특히 건축과가 아닌 저만 할 수 있는 일로 사무실에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Q. 일하며 쌓은 노하우를 소개해주세요. 아주 사소한 팁이라도 좋습니다.
일을 할 때 시스템을 잡아 진행하는 편입니다. 회사 인원대비 정말 많은 수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굴러가요. 하나의 프로젝트는 1년 정도가 걸리기도 하고, 많을 때는 동시에 4개의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외에도 설계 외의 업무가 함께 돌아가요. 그래서 각 프로젝트별 스텝을 늘 파악하고 있어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업무단계와 순서에 맞춰 폴더명을 만들어놓습니다. 해야 할 일을 시각화하는 작업이기도 하고, 진행률을 체크하기도 좋습니다. 또 프로젝트들의 단계별로 예산집행이 되고 있는지 등을 한눈에 트래킹 할 수 있는 툴도 필요해요. 

그렇게 저에게 필요하고 팀분들에게도 쓸모가 있을 것 같은 부분, 혹은 회사 시스템적으로 빈 곳들이 보이면 바로바로 해결책을 만들고 전체에 공유해요. 대단한 솔루션은 아니더라도요. 예를 들어 프로젝트별로 추후 미디어 대응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자료를 모아 따로 폴더에 정리해둔다든지 하는 것은 정말 큰 일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회사에도 필요한 부분이었어요.

설계 프로젝트를 할 때는 업무시간의 20~30% 정도만 디자인 자체에 쓰는 것 같아요. 나머지 에너지는 소통의 과정을 꾸리고, 단계별로 관계자들과 논의하고, 엄청난 행정 서류들을 만드는 데 쓰여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마다 디자인 외의 업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고민도 합니다.


Q. 일하면서, 또는 일과 관련한 소림 님만의 원칙이 있나요? 
협업을 할 때, 보이지 않는 영역의 업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데이터 정리, 인테리어 시공, 혹은 사무실 비품 정리 등 그 업무의 중요도와 크기를 막론하고 뒷사람과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고민하려고 합니다. 실제로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을만한 과정과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데는 그런 중첩되는 업무들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일을 하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되도록 좋은 일의 경험을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동료에게는 커리어패스상 어떤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일까, 외주 작업을 해주시는 작가분께는 개인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그분들께 갑-을 관계의 고달픔이 아닌 작가로서 존중받는 경험을 하게 해드리고 싶다, 등의 생각을 합니다. 


Q. 일에서 성취감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팀원들과 ‘손발을 맞추며' 일하는 기분이 들때도 결과물을 볼 때 못지않은 성취감을 느껴요. 팀워크를 맞춰 즐겁게 일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함께 일하는 후배 디자이너분께 제가 '언제나 대화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어려운 업무를 맡았을때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가장 힘들었거든요. 늘 대화가 가능하며, 함께 고민해주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Q. 일 경험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것을 좋아하거나 잘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인을 글로 표현하고 정리하는 것을 (힘들지만) 좋아합니다. 매거진에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쓰게 될 때가 있는데, 디자인 개념이나 논리를 적확한 언어로 표현해냈을 때 종종 희열을 느낍니다. 디자인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언어가 가진, 어렵지만 정직한 힘을 좋아합니다. 프로젝트를 글로 정리하며 곱씹어보고 내면화 할 수 있어서 꽤 중요한 단계라고도 생각합니다. 

또 디자이너로서 저만의 장기는 '스토리텔링'인데요. 제품과 공간 디자인을 두루 다룰 수 있기에, 사용자와 브랜드가 만나는 각 지점에서, 디자인이 사용자에게 무엇을 선사해야 할지에 대해 큰 관점에서 꼼꼼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을 잘합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Q. 건축교육프로그램에서 어린이들을 만나 웃고 이야기 나누면서 때때로 ‘이러려고 이 일을 하지’ 하고 생각하신다고 하셨는데요. 그중 일화 한 가지만 소개해주세요. 어떤 지점에서 그런 생각이 드셨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궁금해요.
초등학교 안에 놀이 공간을 구축할 때, 그 공간의 주 사용자인 어린이들과 ‘건축 워크숍'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과정을 가져요. 광주에 있는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워크숍을 할 때의 일이에요. 워크숍 과정에 정말 적극적으로 임하고, 아이디어도 기발하고, 또 리더쉽도 있던 한 어린이가 있었는데요, 나중에 담임 선생님께 전해 들으니 사실 그 아이가 학교에서는 일명 ‘문제아동'이어서 교우관계도 좋지 않고 선생님들께 꾸지람도 많이 받았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기가 죽어 학교에 다니고요. 

그런데 워크숍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기회가 주어지고, 또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생각에 귀 기울여주는 시간을 통해 자신감이 많이 회복된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워크숍이 다 끝난 후에 저희에게 살금살금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하고요. 나중에 시공이 끝나고 방송국 취재도 하게 되었었는데, ‘어린이 디자인단'을 대표해서 책임감 있게 자신들이 만든 놀이 공간을 소개하기도 했어요.

어린이들에게 좋은 놀이풍경을 만들어주는 것 외에도 어린이들과 직접적으로 만나며 ‘디자인’이라는 것이 단지 결과물이 아닌, 문제해결과 상호존중의 과정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일이 정말 뿌듯해요. 워크숍이 주로 3회로 구성되는데, 횟수가 적어 보여도 그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꼼꼼히 만들어가는 어린이들, 또 자기 의견을 조금은 더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게 되는 어린이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Q. 앞으로 계획 중인 일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사이드 활동이나 거리가 먼 미래의 목표도 좋아요. 언어로 구체화 시켜보고 싶은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제품, 공간 등 실체가 있는 무언가를 오랫동안 만들어왔고 거기에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린이가 스스로,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위한 무언가를 조직하고 만들 수 있는 경험 혹은 그 활동을 지원해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그동안 디자인을 하며 얻은 삶에 대한 활력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어요. 


Q. 만약 소림 님이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면 그곳은 어떤 공간일까요? 어떤 분위기로 꾸며질까요?
우선은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실험적으로 진행하고 싶어요. 팝업식으로 레스토랑도 열고 싶고, 목공소도 해보고요. 어린이와 할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을 환대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일상의 활력을 얻어가는 곳이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서는 햇살도 잘 들고 천장도 높고, 공간적인 활용을 여러 가지로 시도해볼 수 있는 재미난 구조면 좋을 것 같아요.

일상을 돌아보고, 돌보고, 더 나아가 우리 각자가 삶에 활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인터뷰, 글. 진다슬(네이버 파트너 스퀘어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