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콘텐츠 크리에이터 한지혜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제가 만난 한지혜님은 본인의 비전이나 꿈이 무엇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찾고자 하는 사람, 그리고 현실에서 나만의 돌파구를 찾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어요. 비관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몽상가도 아닌 현실주의자 같았달까요. 저 역시 ‘소통’을 잘하는 일이 우리 삶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니 참 반가웠어요. 일과 삶을 분리할 줄 알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으려는 지혜님을 보면서 이미 지혜님이 생각하는 '일 잘하는 사람'의 모습에 부합한다고 느꼈습니다. 주도권을 손에 쥐고 일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할 사람이 될 지혜님을 묵묵히 응원하겠습니다.

* 이 인터뷰는 뉴그라운드 시즌 1 프로그램 <서로 서로 일 인터뷰>를 통해 작가 황문진 님이 한지혜 님께 묻고, 답변을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Q.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문화예술 중 미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합니다. 대중에게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경험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전시 일정을 비롯한 관련 정보 소개, 흥미로운 사건이나 개념으로 예술을 설명하는 콘텐츠, 작품 감상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 등을 만들어요.

콘텐츠 유형은 주로 영상과 글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주로 전시소개(감상) 영상 콘텐츠 대본 작성을 해요. 접근성이 높은 전시를 골라 소개하고 감상 방법이나 필요한 알짜배기 팁 등을 담아요. 미술 관련 스토리텔링 영상 콘텐츠 대본을 작성하기도 해요. 전시나 시사 등에서 파생된 미술사 용어, 관련 이슈를 이해하기 쉽게 스토리텔링형식으로 풀어내는 방식이에요. 마지막으로 한국 현대 미술 작가 인터뷰 콘텐츠 제작 등을 해요. 리얼리티형 인터뷰 영상을 텍스트 콘텐츠로 변환, 재구성해요.

영상 콘텐츠는 주로 협업으로 진행하는데 저는 촬영과 편집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요. 사전 작업(아이템 선정, 섭외, 구성안 작성 등)을 거쳐, 직접 출연을 하고, 이후에는 관련 제작자(촬영/편집)들과 협업해 진행합니다. 이후 해당 영상 콘텐츠를 글로 재가공해서 블로그와 홈페이지에 업로드 해요.


Q. 일하며 쌓은 나만의 노하우를 소개해주세요. 아주 사소한 팁이라도 좋아요.
첫 번째 질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 협업하는 걸 좋아해요. 대신 최소한의 R&R(Role and Responsibilities, 역할과 책임)은 분명해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잖아요. 협업 상대도 이 세 가지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R&R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불분명할 때, 서로의 기대 수준을 조율하고 맞추는 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맥락과 이어져서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말의 이면에 ‘뭐가 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이렇게 단답형으로 반응하지?’ 등등 많이 생각하지 않는 거요. 대체로 생각과 감정이 꼬이는 시작점이 되더라고요. 강경화 전 장관이 비슷한 내용으로 인터뷰한 게 있어요. 그걸 보곤 더 ‘꼬아서 생각하지 말자’고 한 번 더 다짐했어요.


"협업할 때 서로의 기대 수준을 조율하고 
맞추는 대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Q. 일 경험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것을 좋아하거나 잘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친절하게 말하는 걸 좋아해요. 좋아하는 만큼 잘하진 못해서 늘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더 노력하자’ 생각하고 있어요.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는 세상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요. 인간은 좋은 대화, 피드백, 콘텐츠를 통해 성장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고, 더 잘하고 싶어요.


Q. 친절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관련해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지금 하는 일을 하기 직전에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일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스피치 강의를 하는 강사도 겸했어요. 아나운서와 강사의 공통점은 ‘친절하게 말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냥 다정한 사람의 말하기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과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친절하게 말하는 거로 생각해요. 지금도 일하면서 문화예술이라는 어려운 분야, 낯선 분야, 가깝지 않은 분야를 어떻게 더 쉽게, 가깝게 느끼도록 전달할 수 있나 고민하고 있어요.


Q. 친절하게 말하기 위해서 특히 주의하는 게 있으신가요? 실전 팁이나 친절하게 말하기 위한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법 같은 것도 있는지 궁금해요.

날카로운 질문이네요. 친절하게 말하려고 하지만 인내심이 부족해서 금방 화가 날 때도 있는 저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긴 해요. (웃음)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게 같은 말을 몇 번씩 해야 하고, 주의 산만한 태도 때문에 주의를 주는 경우는 언성을 높이지 않거나 웃으면서 말하는 게 효과가 없더라고요. 엄숙한 분위기, 낮은 목소리 톤, 그리고 눈을 분명하게 바라보며 한 번 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어요.

누군가를 상대하기 전, 후(예를 들면 학생들의 수업 전후)와 그들의 컨디션과 발달단계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한 것이 효과적이었어요. 제가 상대하는 친구 중에 주말에도 아침 8시에 일어나서 학원 세 곳을 마치고 또 수업하러 오는 친구가 있었어요. 매일 졸거나 퉁명스럽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은 쉬는 시간을 넉넉히 주면서 수업 이외의 이야기를 한참 나눴습니다. 아이는 제게 마음을 여는 시간이 됐고, 저는 그 친구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되게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아이들이 얼마나 피곤한지, 뭘 배워서 알고 있고, 어떤 걸 어려워하는지도요.

상대와 나의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이해하려는 태도도 중요한 것 같아요.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부분인지 관찰 또는 대화로 확인하려고 행동하고요. 또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어느 정도 에너지를 쓰는지 관찰하는 것도 도움이 됐어요. 저 같은 경우는 아무리 즐거운 자리라도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한 뒤에 최소 5-10분 정도라도 멍하니 있는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혼자 화장실이라도 가서 그냥 멍-하니 앉아있기도 해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과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친절한 말하기라고 생각해요."


Q. 위 질문의 마지막 답변과 연결되기도 하는데요. 지혜님은 일과 관련한 나만의 원칙이 ‘기분 따라 일하지 말자'라고 하셨잖아요. 그러지 않기 위해 어떻게 기분을 환기하나요? 지혜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을까요?
(기분이) 좋아도 싫어도 일의 과정과 결과는 일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저는 별로 그러지 못하는 것 같은데 계속 되새기려고 해요. 기분 따라 일하는 분과 일했던 경험이 있는데 엄청 힘들더라고요. 아직 묘수는 없는 것 같지만, 퇴근 후에는 되도록 업무 관련해서 철저하게 off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노트북을 펼치는 순간 일이 시작되는지라 퇴근 후에는 되도록 PC 앞에 앉기를 피해요.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으로는 철저하게 딴짓을 합니다. 자동으로 PC 앞에선 업무 모드, PC 없으면 off가 돼요.

퇴근한 후가 아닌 일을 해야 하는데 힘들 때면 조용히 나가서 좀 걷고 와요. 혹은 혼자만의 멍 타임을 가져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모두 안 될 때는 종이를 들고 조용한 곳에 가서 할 일을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서 적어봐요.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요. 일종의 to-do 리스트를 만들고,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체크해보면서 풀어요.


Q. 일하다 힘들 때도 있듯 일하면서 하신 실수 혹은 실패로 인한 경험으로 인해 얻은 인사이트 혹은 문제에 따른 해결방안이 있을까요?
‘그냥 다 싫다’는 뭉텅이 감정의 타래를 풀어보려고 노력해요. 조금 더 세분화해서 보면서 할 수 있는 것, 없는 것을 구분하면 조금은 나아지더라고요. (황문진: 마치 to-do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과 같네요!) 근본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제가 먼저 일의 방향이나 일정을 제안하는 주도성을 갖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입장이 아닐 경우에는 당장이 급한 걸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정신이 없을 때가 많은 게 스스로 아쉬워요.

그리고 마인드맵을 그려요. 시간을 정해놓고 생각이나 감정의 흐름을 그냥 줄줄 적어 봅니다. 때로는 이것만으로 해소가 되기도 해요. 일과 연관돼 있다면 역시나 쪼개기를 합니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등으로 나눠서 적어봐요.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대략의 각이 나오면, 포기하거나 집중할 부분을 선택하려고 노력해요.


Q. 듣다 보니 근본을 묻고 싶어져요. 지혜 님에게 ‘일’이란 무엇일까요?
잘하고 싶은 거요. 살면서 저한테 정말 다양한 맛의 성취감을 만들어주리라 기대되는 것이기도 해요.


Q. 그렇다면 지혜 님에게 ‘일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은 뭘까요? 혹은 타인의 일하는 모습 중  어느 부분을 보고 일을 잘한다고 느끼는지 궁금해요.
개인적인 제 생각으로 저는 아직 주니어의 위치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책임지고 이끌고 하는 것보다 실무능력의 빈틈을 더 빠르게 채워야 하는 단계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제 단계에선 기본 소양을 잘 갖춘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여요. 예를 들면, 혼자 일하는 것 말고 협업을 위한 기본 툴 활용을 능숙하게 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경우예요. 자신의 (크고 작은) 성과를 잘 기록하는 사람을 볼 때도 일을 잘한다고 느껴요. 조직 내에서 혹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아는 사람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현재 하는 일 외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예술 감상을 나누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저는 문화예술의 장점 중 하나가 ‘정답 없음’ 같거든요. 그렇기에 서로의 감상과 생각에 좀 더 관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답 없는 대화를 깊고 진하게 나눌 수 있는 뭔가를 해보고 싶네요. 현재로서는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실행으로 옮기진 못하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의 시간, 돈, 에너지도 들어가기 때문에 리드하기 위해서 제가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업무도 소화하기 힘들어하면서 ‘잘 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 아닐까? 약간의 지식, 예술 경험을 감히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수준인가?’ 이런 고민이 계속 이어져요. 아직 실행 안 해서 무엇도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요.

유튜브나 블로그도 꾸준히 해보고 싶어요. ‘한지혜’라는 사람을 이야기할 때, ‘문화예술’이 연관 키워드가 되면 좋겠어요. 문화예술계, 스타트업, 콘텐츠 제작자라는 키워드로 지금의 저를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것과 관련해서 뭐든 남기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요새는 아무리 봐도 기록 자체가 포트폴리오이자 재산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사는 동안 많이 남기고, 그 흔적을 바탕으로 인생의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요.


인터뷰, 글. 황문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