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짓는 사람, 걷는 사람, 걸으면서 둘러보는 사람

*인터뷰는 뉴그라운드 프로그램 <내-일을 위한 스스로 인터뷰>를 통하여 박서인 님께서 완성한 결과물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공간의 형태를 넘어 삶의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을 합니다. 더불어 건축을 소재로 하는 다학제적(interdisciplinary) 작업을 전시와 퍼포먼스의 형태로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일의 공통점은 주거문화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주거문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 홍콩, 브라이튼, 런던, 그리고 다시 서울까지 다수의 이사를 경험했어요. 계속해서 나를 다듬어나가고(이삿짐을 줄이고) 나인 것들의 최소한만을 유지해 나가며 살아가려 했고요. 자연스럽게 '집'을 중심으로 제가 살는, 그리고 살아야 하는 환경을 구성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어요.  

주거문화를 중심으로 일하는 데에 건축 실무와 다학제적 작업을 겸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건축이 물리적인 실체로서의 공간뿐만 아니라,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공간이라는 ‘인식’을 구성하게 하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건축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분석을 수반하는 일이고요. 

작업과 건축 실무의 다른 점은, 실무에는 건축주의 현실을 분석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리적 구축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문제가 있습니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들은 설계 이후에도 2~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생각과 고민이 담긴 결과물을 곧바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죠.

그런데 시의성을 유지하며 전달하고 싶은 것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은 그래픽, 영상, 퍼포먼스 등의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혼자 하기보다는 콜렉티브를 구성하여 작업하고요.

가장 대표적인 일을 소개해주세요.
2019년도 작업인 <A Garden of One’s Own> . 이 작업에서 가장 폭넓게 제 생각이 담긴 것같아요.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이슬람 문명에서는 집마다 카펫을 두고 있는데요, 이를 두고 ’자기만의 정원’이라고 합니다. 점점 작아지는 서울의 방 한 칸짜리 주거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을 때, 이슬람 카펫보다 더 적합한 공간 개념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영역성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A Garden of One’s Own(자기만의 정원)>은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혹은 이곳에서 적응하기 위한 가상의 영역 확장을 목표로 펼쳐지는 무대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가상의 주거 단지를 설계한 프로젝트인데요, 이 주거 단지는 ‘파동함수붕괴(Wave Function Collapse)수식'으로 형성되었어요.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는 좌표계에서 당신이 어딘가에 위치할 확률을 보여줘요. 그러나 관찰자가 어떠한 의도를 갖고 대상을 관찰하는 순간, 그 파동(규칙성)은 깨져버립니다. 세상을 불확정적인 곳으로 만드는 수식인 거죠. 디지털 게임을 만들 때 자주 사용되는 함수이기도 해요. 

이 작업에서 파동함수붕괴수식은 집의 크기나 위치만으로 대상을 판단할 수 없는 단지의 모습을 만들어 내요. 경제적 계층으로 분리된 아파트 단지들이나 빌라촌의 익명적 우월감과 구분 짓기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모델을 고안하고자 한 프로젝트에요. 

다양한 분야의 이론과 생각이 복합적으로 응축되어있는 작업인데요, 지금의 일들을 하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저는 건축 설계를 하는 일로 진입하기 이전에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였고, 게임 스타트업과 아트디렉션 회사, 그리고 공간 기획사 등을 거쳤습니다. 전혀 다른 일을 한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일하는 동안 무언가를(특히나 공간을) 부품으로 바라보고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며 분석하고, 분석으로 발견해 낸 불합리한 지점을 개선해 나간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어요. 

이 과정을 통해 얻은 일하는 자신의 뚜렷한 강점이 있을까요? 
제가 공통으로 직면했던 환경은 직무와 역할의 구분이 모호한 환경 속에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특히나 디자이너 직무로 시작한 업무가 기획자의 업무로 넘어가는 일이 많았는데요, 주로 시작 단계에 있는 프로젝트에 일손이 부족하므로 우연히 발생한 일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담당해야 할 업무의 폭이 넓거나 자주 바뀌어 당황스러웠지만, 프로젝트의 방향성과 뼈대를 구축하는 일에 강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고마운 경험들이에요. 

이 과정을 통해 일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중요시하게 되었는데요, 하나는 개별화(individualization)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략적으로(strategic) 접근하는 것입니다. 개별화한다는 것은, 크게는 프로젝트의 특수성이나 상황의 특성에 맞추어 일의 진행 방식을 고민한다는 것이고요. 전략적 접근은 말 그대로 카오스 안에서 패턴과 이슈를 빠르게 파악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최적화 된 루트를 뚫는 거예요. 전략에는 문제 정의가 우선되고요.

지금도 이런 강점을 반영하여 일하고 있나요? 
건축 설계가 주된 일이 되고 나서부터는 이러한 태도의 중요성을 더 크게 인식하고 있어요. 저는 안테나가 항상 여러 곳을 향하고 있는 사람이라서요. 반복적인 야근 속에서 체력은 따라주지 않는다는 게 한몫했고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주어진 시간 내에 충족하는 법을 고안해 내야 하므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일하기 방식을 찾아보고 적용하려고 시도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효율과 효과로 인해 줄어든 야근 시간은 호기심을 채우는 데에 사용하고요. 담긴 호기심은 새로운 인사이트가 되는 것이고요. 물론 어떤 일에 언제 쓰일지는 모르지만요. 

찾으신 효과적인 일하기 방식은 무엇이던가요?
소통(communication)하는 것이요. 건축이나 작업이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그리고 인간이기에 소통만이 유일한 방법이더라고요. 말을 하는 것과 듣는 것, 들은 것을 소화하는 것 모두 소통 능력(capacity)이라고 한다면, 효율과 효과의 문제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려는 방법은 소통이 저에게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아직 유연하게 실행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Common&Collective, <Living in Mutations>, Dec 2020. wrm space.


앞서 다학제적 작업에 언급하시며 콜렉티브를 구성하여 일하신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일하는 방식 또한 소통이 주요 이슈일 것 같은데요. 콜렉티브로 작업하기 시작한 계기와 협업 방식 등에 대해 더 설명해주세요.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은 6년 전쯤인데,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따라 효과적인 매체가 다르다고 판단해서 시작했어요. 모든 걸 제가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다 할 수 있다는 열린 가능성과는 별개로, 역시 ‘전문 분야는 전문가에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콜렉티브라고 명명하고 협업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팀을 이루어 작업한 결과물이 2016년 UK Young Artists에 선정되면서부터는 협업에 조금 자신감이 붙었고요. 

각 분야의 친구들, 전문가들과의 소통은 항상 이슈에요. 영어를 하건 한국어를 하건 간에, 전혀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각 분야의 언어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제가 보지 못한 관점들이 작업에 반영될 수 있었다는 걸 작업이 완성된 이후에서야 확인했어요. 협업이 주는 합주의 느낌도 즐길 수 있게 되었고요. 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극과 충돌하는 의견들은 건설적으로 풀어내려 노력하고 있어요. 

건축 설계과 다학제적 작업, 이 외에도 하는 일이 있나요? 사람들은 일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나는 일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이라거나.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보통 풀타임으로 건축을 하고 파트타임으로 산책을 합니다(산책자- 플라뇌르 flaneur) 라고 말하곤 해요. 최근에는 집의 범위를 조금 더 확장해서 기분과 감정의 사원을 짓는 문제와 환경문제에도 전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요. 그 일환으로 하는 일이 바로 산책하는 일입니다. 제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해서인지 걷기 시작하면 산란했던 마음과 머리가 비워져서 매일 점심에는 산책을 해요. 퇴근길에도 30분 정도 걷다 들어가고요. 이렇게 하다 보면 직장에서 일어났던 감정들이 조금 비워진 상태로 집에 들어갈 수 있더라고요. 집을 집답게, 그리고 기분 좋은 공간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일하면서 느끼는 한계는 없나요?
얼마나 많이 이기느냐보다 어떻게 지느냐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라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더라고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결국 관대함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렇다면 일하며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나요?
한국에서 파견되는 해외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1~2년 지내고 번아웃되어 돌아온다고 해요. 반면 유럽이나 미국의 선교사들은 현지에서 10년 이상을 지내다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요. 현지에서도 현지인 가정부를 두는 등 자신의 생활 수준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유지하며 지내는 서구권 선교사들과는 달리, 한국의 선교사들은 현지인과 똑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며 선교하려 한다네요. 

이 둘의 차이는 자신을 지키면서 선함을 행했느냐인 것 같아요. 저를 지켜야 제가 좋아하는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일은 계속해 나가고 싶은 마라톤이니까요. 

앞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공익성을 추구하는 일들인데, 긴 호흡으로 탐구하고 실현해 나가고 싶어요. 대표적으로는 서울에서 공동으로 소유하는 여성 공동 주거 모델을 만드는 일이요. 이 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제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해요. ‘체구가 작은' ‘외국인’ ‘여성’으로 살아야 하는 여타 도시의 생활로부터 ‘안전’의 문제가 저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일시적이지 않은 공동체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예요. 임대모델은 일시적이지만 소유모델은 다르게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둘째는 마음과 감정의 사원을 짓는 일이에요. 저는 공간에서만 나오는 고유의  에너지라는 게 있다고 믿어요. 일(work)과 기분을 떼어두는 게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건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언택트 시대다,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하지만요. 

마지막으로는 위 두 가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구성해야 하는 집단의 형태를 실험하는 일인데요. 결국 일하는 방식에 대한 실험이에요. 저는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주고받는 일을 하면서도 사람에 가장 취약하더라고요. 요즘은 저의 이런 취약성(vulnerability)이 강점으로 해석되기를 기다려 보고 싶은 게으른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박서인 님의 더 많은 작업은 parksuhin.com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