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내가 살고 싶은 곳, 나의 동료를 직접 만들기

고향인 부산에서 서울로 이주한 지 14년 차가 된 올해, 저는 진지하게 타지역으로의 이주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서 살 것인가, 거기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구상하는 중이에요. 거주하는 지역을 옮긴다고 할 때의 걱정 중 하나는 '거기서 어떻게 다시 아는 얼굴들을 만들 것인가?'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와 동료들을 떠나, 사는 곳을 기반으로 새로운 관계들을 구축해야만 그곳에서의 삶을 오래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요.

최승선 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승선 님은 '원래 살던 곳을 떠나서도 내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지' 실험해 보고 싶어 사는 곳을 바꿔보셨다고 해요. 그 경험은 지역에서 커뮤니티 만드는 일을 해보겠다는 다짐과도 이어졌고요.

승선 님과의 대화를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어디에서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 것인가?', 더 나아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고민하는 중이라면, 승선 님의 이야기로부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효진: 승선 님과 저는 지난해 뉴그라운드 오프라인 팝업에서 처음 뵈었죠. 그때 ‘뉴그라운드에 가입하겠다’고 말씀하시고서는 정말 새 시즌에 함께해 주셔서 기쁘고 놀라웠어요. 그날 뉴그라운드를 처음 경험하셨던 건데, ‘여기 가입해 봐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승선: 일단은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라는 설명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이 말 자체에 엄청나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기존의 워머스분들과 회고를 하면서, 그분들이 회고를 대하는 태도나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제가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효진: 그 자리에서 승선 님이 하셨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있어요. 인천으로 이주하신 후에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셨잖아요. 그 과정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승선: 커뮤니티라기보다는 동네 친구를 만들려고 했던 거였는데요, 처음 시도했던 방법은 틴더 같은 앱을 쓰는 거였어요. 또 동네 오픈 채팅방에도 가입을 해봤는데, 다행히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서 재미있게 잘 지냈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그 채팅방이 해산된 이후에는 관계가 끝나더라고요.

그 이후로 그 정도의 단톡방을 찾는 게 쉽지 않아서 계속 실패하다가, 마침 인천에서 로컬 커뮤니티 교육을 진행한다고 해서 돈을 내고 가입했어요. 거기서 몇몇 분들과 같이 등산도 가고, 지원금을 받아 같이 미션도 수행하면서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그 모임이 저한테는 좀 좋았어요.


효진: 그런데 애초에 인천으로 이주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일하시는 곳이 인천에 있었나요?

승선: 회사는 계속 서울에 있었는데요, 일종의 실험을 위해 인천으로 이주한 거였어요. 지금 내 주변에 있는 관계로도 너무 좋지만, 내가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행복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거든요. 인천에 가서도 내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 어디에 가더라도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효진: 성인이 되면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친구를 만드는 일이라고들 하잖아요. 어릴 때야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지만 성인은 그럴 기회가 별로 없고요.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게 어렵진 않으셨나요?

승선: 그동안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힘들지 않았어요. 친구가 늘 많은 편이었고요. 그래서 새로운 곳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인천에서 2년쯤 살면 친구는 사귈 수 있겠지’ 싶었는데 2년 끄트머리쯤에 겨우 사귈 수 있었던 거죠.


효진: 적극적으로 노력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친구를 만들기가 어려웠을까요?

승선: 학교에서는 일단 친구 후보군이 많잖아요. 한 반에 30명이 있다면, 그중에 내 친구를 한두 명만 찾으면 되는 거니까 확률이 높은 거죠. 하지만 새로운 지역에 가면 사람 자체를 만날 확률이 너무 낮아요. 애초에 기회가 없으니까 그중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 거예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서로 공통점을 발견할 기회가 많죠. 누군가에게 실망했어도 다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시간이 있고요. 회사 바깥에서는 그게 없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효진: 그러네요.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건 원래 어려운 건데, 그동안은 우리가 학교와 회사 안에 있어서 그게 별거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고요.

승선: 맞아요.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제가 하려는 창업은 

저의 노후 대비예요."


효진: 도시재생 지역에서 주민 창업을 지원하는 회사에 다니셨다고 자기소개에 써주셨잖아요. 거기서 일하는 동안 어떤 배움이 있었나요?

승선: 지역에 플레이어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서울에서는 도시 과밀 현상이 문제가 되고, 지역에서는 청년 유출이 계속 문제가 될 건데 국가에서 이걸 해결해야 할 거잖아요. 결국 청년들의 지역 창업이 중요해질 것 같다고 봤어요. 지역에서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지자체에서 알아주기만 하면 비즈니스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 커뮤니티를 만드는 역량이 없진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판을 만들고 그 판을 만드는 것에 대한 매뉴얼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기획력이 있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커뮤니티 기획에 좀 더 관심을 두고 그것을 각 지역의 오프라인에서 펼칠 수 있게 되면 자기가 살고 싶은 동네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수 있는 자원이 되겠다고 본 거죠.


효진: 지금 창업 준비 중이시잖아요. 구체적으로 커뮤니티와 관련하여 어떤 방향의 일을 구상 중이신가요?

승선: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제가 하려는 창업은 저의 노후 대비예요. 제가 어떤 동네에서 계속 살기 위해서는 친구가 있어야 하는데, 얇고 넓으면서도 서로에게 다정한 관계 속에 머물 수 있으려면 그런 지역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은 서점으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해요. 저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찾기에는 책이 가장 좋은 매개체니까요.

또 서울 밖 지역의 문제 중 하나는, 학원이 없다는 거예요. 서울에는 국비 지원을 포함해서 직업 관련 교육을 받을 방법이 많은데 다른 지역에는 그렇지 않거든요.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지역에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료 학습 기반의 교육 과정을 여러 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기획자 과정도 될 수 있고, 디자이너나 개발자 과정도 될 수 있겠죠. 더불어 지역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분들과 연결되면 그분들이 멘토로 활동하실 수도 있을 거고요. 교육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가 많아지고 안정되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효진: 엄청나게 큰 판을 계획하고 계시네요.

승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요.


효진: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커뮤니티를 겪어봤는가, 거기서 어떤 좋은 경험을 했는가도 중요한 것 같아요. 승선 님이 경험하셨던 커뮤니티 중 승선 님께 좋은 영향을 끼친 곳들도 있나요?

승선: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이 바라는 게 비슷한 곳이 오래 가기도 하고, 멤버들의 만족도나 흥미도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더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목적 때문에 만든 커뮤니티는 그 목적이 해소되면 사라지는데, 서로에게 의지나 안전한 환경이 되는 것이 목적인 커뮤니티는 오래 가는 것 같거든요. 그 점에서 뉴그라운드 같은 ‘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대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주고 그 메시지가 필요한 사람이자 메시지에 참여할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오래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효진: 뉴그라운드 말고 다른 커뮤니티를 예로 들어주셔도 좋아요. (웃음)

승선: ‘그냥 하는 게 답이다’라는 커뮤니티가 있는데요, 평생회원 제도고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채널도 없어요. 클럽장 말고는 거기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요. 한 달에 한 번, 미팅으로 만나는 사람들만 클럽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런데도 새로 만나는 사람마다 뭔가 결이 비슷한 거예요. ‘그냥 하는 게 답이다’라는 슬로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면서, 그 메시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왔으니 아마 비슷한 거겠죠. 그걸 경험하면서 커뮤니티의 슬로건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나와 다른 삶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살고 싶어요."


효진: 저도 요즘 ‘앞으로 어디에 살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데요, 이걸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결국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승선 님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싶은 사람인지 정리를 좀 하셨나요?

승선: 저의 최근 화두는 ‘편안함’이에요. 저에게 편안함이란 이런 삶과 연결되어 있어요. 일단, 집에 있을 때 바깥 날씨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해요. 날씨 앱으로 날씨를 확인하는 삶을 그만 살고 싶어요. 창밖의 나무들이 보이면서 계절이 변해가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고,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정확히 말하면,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인위적인 것들이 있는 게 싫어요. 서울에서는 자본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연을 다 뺏어서 돈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나와 다른 삶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살고 싶어요. 페미니즘을 포함해 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권 의식들을 눈치 보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곳에 살고 싶은 거죠. 이건 서울에서도 쉽지 않으니까, 서울 바깥에서는 더 쉽지 않잖아요. 앞으로 제가 더 많은 사람을 동료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그런 공간의 기틀을 마련해 놓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효진: 승선 님의 인스타그램에서 최근 만나는 분들마다 이 질문을 했다는 글을 읽었거든요. 거꾸로 승선 님께도 여쭤보고 싶어요. ‘되팔 수도 없고 물려줄 수도 없는 곳에 집을 준다고 하면 어디서 살고 싶으세요?’ 결국 평생 살고 싶은 곳에 대한 질문이겠네요.

승선: ‘평생’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요(웃음), 지금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20년 후에는 한국의 중위 연령이 60대가 된대요. 그런데 사람이 적어져도 서울에는 계속 자리가 부족할 거 아니에요. 다들 그럴수록 더 서울에 가고 싶어 할 테니까요. ‘그때 서울 바깥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는 게 요즘 저의 취미 아닌 취미인데, 그렇게 되면 양평이 계속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참고로, 지금 저의 부모님이 양평에 살고 계시고 저도 곧 양평으로 다시 이주할 예정이거든요.


효진: 거시적인 시각을 갖고 계시군요.

승선: 그렇지만 양평의 집값은 그렇게까지 오르지 않을 것 같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놀러 왔다가 떠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여기서 살되 주변에 주택 단지가 없어야 하고, 저희 집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집이 주변에 한 다섯 채 정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정리하자면 양평군의 면 단위에 있는 어떤 리의,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집이 다섯 채 이하로 있는 곳에 살고 싶어요.

최근에는 정말 좋은 동료들을 만난다면 같이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혼자 ‘동거인 구하기 프로젝트’를 한 번 해볼까 싶기도 해요.


효진: 아니, 혹시 MBTI 끝자리가 J세요? 계획이 엄청 촘촘해요.

승선: 완전 P예요. 취미가 계획 세우기, 특기가 계획 바꾸기인 P입니다.


효진: P라니 놀라워요. 하긴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되, 유연하게 바꿀 수 있으면 더 좋은 거죠, 뭐.

승선: 저는 계획을 다 뒤집을 수도 있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