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아파트에 나무 한 그루를 더 심는 일

워머스의 후원처 추천 글, 기억하시나요? 각자의 후원처에 대한 소개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은 듀로잉 님의 이야기였습니다. 듀로잉 님은 동물권행동 카라와 환경운동연합, 서울환경연합, 여성환경연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한국고양이보호협회에 정기적으로 후원 중이라고 알려 주셨어요.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문제 인식만 있을 뿐 아직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적극적으로 관련 단체에 후원을 하고 있는 듀로잉 님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시즌을 통해 뉴그라운드 커뮤니티에 처음 가입하신 듀로잉 님은 슬랙에 남겨 주신 자기소개에서 이렇게 밝히신 바 있어요. "고민의 주요 골자는 자연과 관련한 일을 하다 보니 지구에 관심이 많이 생겼는데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관심사와 역방향으로 자주 향하는 것 같아 천천히 다른 길로 가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인것 같습니다."

내 일과 나의 가치관, 혹은 관심사가 반대 방향을 향하는 것 같을 때, 문제는 너무 거대하고 나는 너무 작게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듀로잉 님과의 대화는 이 질문에 대한 작은 힌트이기도 했습니다.




효진: 조경 설계 일을 오래 했다고 슬랙 자기소개에 써주셨어요. 어느 정도 하신 건가요? 

듀로잉: 올해로 13년 차 됐어요. 지금까지 하나의 회사에 쭉 다니고 있습니다.


효진: 하나의 우물을 파는 커리어 패스네요.

듀로잉: 네. 요즘 워낙 이직이나 전직을 잘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가끔 한 자리에서 오래 일한 저 자신이 게으르거나 안일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게 되진 않더라고요. 보통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보다 바깥에서 보이는 것들을 더 의식하게 되어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효진: 말씀하신 것처럼 이직이나 전직이 많은 시대고,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반대로 하나의 직장에서 오래 일한 분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조경 설계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 건가요? 

듀로잉: 사전적 의미대로 설명하면, 조경이란 건 경치를 만드는 일이에요. 개인 정원도 있고 도시공원도 있고 아파트 조경도 있고요. 큰 틀에서의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다음에 그 기획안에서 어떤 식의 정원이나 공원을 만들 건지 계획하는 사람들이 또 있어요. 그다음에는 공간을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설계도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요. 이 중 저는 설계 단계의 일을 하고 있어요. 


효진: 독특한 직무이기도 한데, 어떤 계기로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듀로잉: 제가 다녔던 학교에 '도시건축조경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전공이 있었어요. 당시 이게 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는데, 거기 계셨던 교수님이 현업에서 일하시는 여성분들을 많이 모셔 왔어요. 여성분들이 수트를 쫙 빼입고 도시적인 일을 한다고 하니까 되게 멋있는 거예요. (웃음) 거기에 홀려서 이 일을 선택하게 됐는데, 이렇게까지 건축적인 일인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그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조경 스타일과는 방향성이 좀 다른, 외국의 조경 스타일을 지향하는 분이시기도 했고요. 


효진: 외국의 조경 스타일과 한국의 조경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듀로잉: 외국은 조경과 건축이 대등한 느낌이에요. 각자의 시야에 따라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죠. 한국은 건축이 먼저예요. 건축이 다 정해지고 나면, 법적으로 어느 정도의 조경 공간을 꾸미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조경이 건축에 비해 약간 위상이 낮다고 해야 할까, 그렇죠.


효진: 이 일을 오래 하고 계시니까, 나름의 기쁨이나 보람도 있으실 것 같아요.

듀로잉: 좋은 점 하나는, 일은 같지만 대상이 되는 공간은 매번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전국을 다니게 되는데 그 공간의 역사나 문화를 알아가는 일을 한다는 게 그냥 너무 좋아요. 식물에 관련된 일이라는 것도 좋고요. 그리고 이건 관에서 진행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점인데요, '내가 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고, 최소한 이런 법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의 녹지가 유지되는구나'라는, 도시의 시스템적인 부분을 알게 되는 게 조금 재미있어요. 다만 광화문 광장이나 선유도공원 같은 공공성을 띠는 공간이 아닌, 아파트 관련 일을 할 때는 별로 보람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냥 경제 논리에 따른 산업이죠. 그래서 일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생각하면서 생활의 방식을 바꿨어요."


효진: 자연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지구에 관심이 생겼는데, 지금 하는 일이 관심사와 역방향으로 향하는 것 같아서 고민 중이라고 자기소개에서 알려주셨었어요. 이 고민에 관해 좀 더 듣고 싶어요.

듀로잉: 제가 하는 일 중에 재건축이 있어요. 재건축을 하면 거기 사는 사람이 2~3배로 많아지니까 도로도 넓혀야 하잖아요. 그럼 거기 있던 가로수를 다 뽑아야 해요. 그 가로수들은 3, 40년 나이를 먹은 아이들이어서 정말 아름답거든요. 그런데 다른 곳에 이식을 할 수가 없어요. 겨우 숨만 붙어있을 정도로 뿌리를 조금만 살리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무가 이식하는 과정에서 죽고, 그러다 보니 공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어차피 죽으니까 그 나무들을 폐기하려고 하는 거죠. 이게 제가 좀 머리를 꽝 맞은 것 같았던 순간이에요. 하지만 이미 관의 인증을 받은 후에 시작하는 일이라 제가 어떻게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더라고요.  

또 공원을 만들면, 동물들의 서식처를 마련하거든요. 그 동물들의 삶의 기반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서식처를 새로 만드는 거예요. 도시공원을 새롭게 만드는 건 너무 좋은데 대부분 인간 위주로 설계해요. 그러니까 우선 인간이 먼저고, 그다음에 동물들을 살려주겠다는 방식인 거죠. 예전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관련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것들이 너무 불합리하게 보이고 여기에 동의도 할 수 없더라고요. 제가 설계를 할 때는 최대한 다른 방법을 택해보려고 하지만 제 권한을 넘어서는 일들이 많아요. 이런 부분이 허무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요.


효진: 진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업의 본질이라는 게 있고,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방향과 어긋나도 그걸 전부 바꿀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비건 지향도 하시고, 기후와 동물권 관련 단체에 후원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행동을 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세요?

듀로잉: 예전부터 관심은 조금씩 있었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코로나였어요. 당시 비건과 제로웨이스트가 각광받는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산업이 나름 커졌죠. 그래서 실천하기가 한결 더 쉬워졌던 것 같아요. 보틀팩토리를 운영하시는 정다운 대표님의 이야기나 관련 책들이 제게 영향을 많이 끼쳤어요. 그런 것들을 듣고 보면서 행동하지 않는 제가 너무 나쁜 것 같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생각하면서 생활의 방식을 바꾼 거예요. 




효진: 이전과 비교할 때 생활에서 제일 많이 달라진 건 뭔가요?

듀로잉: 우선 텀블러를 항상 가지고 다녀요. 가방에 텀블러를 넣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되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그 밖에는 우유를 두유로 바꾼다거나, 라면이나 만두를 비건으로 먹는다거나 하는 것들이에요. 세제 종류는 다 비누로 쓰고, 수세미는 천연 수세미로 쓰고, 우유 팩으로 만든 휴지도 써요. 가장 크게 바뀐 건, 예전에는 옷을 좋아해서 좀 자주 샀었거든요. 요즘에는 옷을 사기 전에 훨씬 더 고민을 많이 해요. 필요 없는 것은 웬만하면 안 사려고 하고요.


효진: 가치관에 맞춰 생활의 방식을 쉽게, 빠르게 전환하신 것 같아요.

듀로잉: 2019년 말부터 환경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니, 3~4년 정도 걸린 거예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바꾸진 못했고 처음에는 비누, 그다음에는 수세미, 이런 식으로 천천히 바꾼 거죠. 생활 방식을 막 전환하기 시작한 1년 차 때는 좀 힘들었거든요. 실수로 햄을 먹으면 '왜 그걸 발견 못했을까?' 하면서 마음이 너무 괴로운 거예요.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효진: 환경 관련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즐거웠던 것들도 있나요?

듀로잉: 꾸준하게 나가는 건 기후정의행진이에요. 처음에는 혼자 갔고, 두 번째는 임의로 모인 사람들과 갔는데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하다 보니 함께하는 사람들과 동지애 같은 게 생겨서 재미있더라고요. 또 기억에 남는 건, 서울환경연합을 후원하면서 장기로 참여했던 '가로수 시민조사단' 프로젝트예요. 가로수를 함부로 다 잘라버리지 말라고 서울시에 건의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일련의 과정에 시민조사단을 참여시키는 거거든요. 나무 상태를 조사하고, 다 같이 모여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제가 후원하는 단체의 활동을 한 거라 인상에 남나봐요. '나도 뭔가 했다'는 느낌도 있었고요. 


"나를 너무 혼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효진: 초반에 얘기했듯, 내 일과 가치관 사이의 갭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가 고민이셨잖아요. 어느 정도 생각이 좀 정리되셨나요? 아니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으세요?

듀로잉: 아직 찾아가는 중이에요. 쉽게 생각하면, 직업을 바꾸면 되거든요. 하지만 제 생활을 고려했을 때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아요. 다행인 건 녹지를 조성해야 하는 비율에 관한 법이 점점 더 세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걸 잘 지키는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파트를 그만 짓는 건 제가 결정할 수 없지만, 그 아파트에 나무를 하나 더 심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아마 확신이 드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계속 회사에 다닐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환경 관련 단체들을 후원하는 것으로 제 마음의 빚을 조금씩 해소하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활동가가 될 만큼의 용기는 아직 안 나는데, 또 모두가 활동가가 돼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자신을 너무 혼내지 않고 가능한 방법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요. 


효진: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작은 궁금증이 생겼어요. 조경은 공간을 만드는 일의 일부이기도 하잖아요. 듀로잉 님이 가장 편안하거나 좋다고 느끼는 특정한 공간이 있을까요? 조경적으로 훌륭하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든, 아예 인공적인 공간이든 관계 없이요.

듀로잉: 서울에서는 선유도공원을 진짜 좋아해요. 조경 공간 중에서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선유도가 원래는 수돗물 정화시설 같은 곳이었는데요, 시설이 기능을 다하면서 공원을 조성하게 된 거거든요. 제가 대학생일 때 만들었으니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잖아요. 얼마 전에 모임이 있어서 아침 9시쯤 선유도공원을 방문했는데, 진짜 평화롭더라고요. 여기가 정말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요. 새들도 많고요. 아침에 시간이 나는 분들이 계신다면, 제가 한번 모임을 열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효진: 너무 좋아요! 같이 선유도공원을 산책하면서 듀로잉 님께 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봐도 좋겠어요.

듀로잉: 아침 모임이라면 일찍 일어나야 하겠군요. (웃음) 워머스분들이 다양한 모임에 워낙 열려있는 편이니, 이 모임도 하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낯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자체가 조금 쑥스럽지만, 거기서 제가 얻는 게 더 큰 것 같아서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