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지 님(슬랙 닉네임은 '지나' 님)을 오프라인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25년 상반기에 열렸던 뉴그라운드 플리마켓 '나뉴장'과 <일의 말들> 북클럽에서였어요. 늘 웃는 얼굴로 재미있는 말들을 쏟아내는 민지 님을 보며, '나도 초등학생 때 저런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선생님, 그리고 학생 시절로부터 멀리 떠나온 제가 상상할 수 있는 선생님의 상과는 민지 님이 엄청나게 달라보였거든요.
9월 커뮤니티 리포트에서는 민지 님과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민지 님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유튜브 채널 운영, 십자수 프로젝트 진행 등 많은 활동을 하고 계세요. 더 나은 대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 '대화 메뉴판'을 만들기도 했고요. 민지 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대화의 중요성을, 그 중에서도 잘 듣는 일의 가능성을 조금 더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많이 웃었어요.

효진: 민지 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민지: 생일을 기점으로 저에게 되게 큰 변화가 있었어요. 예전과 똑같은 걸 하는데, 그걸 하는 제 마음이 굉장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겉으로 보이는 목표를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수행한다는 느낌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할 일 하나하나에 약간 숨을 불어넣는 법을 배우는 느낌이에요. 평범한 일상을 이제서야 이렇게 충실하게 살고 있구나, 그런 느낌으로 지내는 중이에요.
효진: 민지 님은 본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림도 잘 그리시고, 십자수 프로젝트도 하시고, 유튜브도 만드시고요. 저런 모든 활동을 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교사’라는 직업에서 떠올리는 이미지와 민지 님이 살아가는 방식, 모양 같은 게 굉장히 다르다보니 그 점도 신기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민지 님의 본업과 다른 창작 활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만들어가고 계신가요?
민지: 예전에는 본업과 활동을 딱 분리했어요. 학교에서 내가 보여주는 건 10% 정도, 거기서 그 이상을 보여주면 손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부모님의 권유로 교대에 갔기 때문에 교사가 되었을 때 패배감을 많이 느꼈거든요. 학교라는 공간이 ‘네가 용기가 없어서 결국 여기서 일하는 거야’라고 저한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오래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 여기서 느끼는 패배감을 상쇄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나다운 모습을 많이 표출해야 한다고 믿었어요. 학교에서는 마음을 닫고, 바깥에서는 에너지를 과할 정도로 쏟다 보니 옆에서 저를 지켜보던 애인이 이러다가 네가 미쳐버릴 것 같다고, 교사 일을 그만두든지 교사라는 일에서도 네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러지 않으면 자아 분열이 올 것 같다고요. 그 이후로 조금씩 본업과 활동의 밸런스가 조금씩 맞춰져 왔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교사라는 일도 예술가적인 측면을 갖고 있거든요. 수업을 만드는 업무도 그렇고, 종합 예술가 같단 말이에요. 이런 면을 여기서 살리면 아이들이 만나보지 못한 선생님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업에서 저의 성격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을 녹여보기 시작했어요. 이게 점점 효과가 되게 좋더라고요. 아이들도 ‘이런 선생님은 처음이다’, ‘선생님은 정말 쿨하신 것 같다’라고 얘기하고요. (웃음)
효진: 교사로서 민지 님이 갖고 있는 원칙도 있을까요?
민지: 교사로서의 대원칙은 ‘교육이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에요. 저는 아이들이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러려면 교육도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거죠. 수업도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전달해야 하는 내용은 노래를 불러서라도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편법을 쓰기도 해요.
효진: 민지 님이 노래를 하고 싶어서 하시는 거 아닌가요? (웃음)
민지: 그렇긴 해요. (웃음) 또 다른 원칙은,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제가 평가하거나 판단의 도구로 삼는 게 아니라 성장의 기회를 포착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떼를 쓰면 ‘얘가 떼를 쓰네. 떼쟁이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러면 내가 얘한테는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가르쳐주면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효진: 교육 현장 바깥에 있는 성인으로서는 미디어나 SNS를 통해서 ‘요즘 애들은 큰일이다’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만 접하게 되는데, 민지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실제 학생들의 상황과 어른들이 그들을 이해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많이 벌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지 님은 교사가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언제든 커리어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민지: 교사로 10년은 일하려고 하는데, 그 이후에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브랜드를 창업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창업에 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제가 ‘대화 메뉴판’이라는 걸 만들어서 팔기도 했거든요. 그걸 기반으로 워크숍 같은 걸 진행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친구들과 워크숍을 해봤는데 결국 이게 학교에서 하는 수업이랑 구조가 비슷해요. 동기 유발하고, 활동 소개하고, 자율권을 주고, 마무리하고. 이건 제가 학교에서 맨날 하는 일이니까 이런 역량을 잘 닦아서 브랜드로 이어가보고 싶기도 해요.
제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가 ‘대화’거든요. 한국인들이, 물론 한국인들만은 아니겠지만 ‘듣기’가 참 안되잖아요. 학교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적극적 경청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좋은 대화를 하는 법, 가슴이 충만해지는 대화하는 법,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어요. 성인이 되니까 그런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그런 방법을 어렵지 않게 배우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효진: 체크아웃 타임 때 민지 님 회고를 보면 친구분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하시는 것 같아요. 민지 님 스스로 생각해볼 때 본인이 대화를 잘 하는 것 같은지,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민지: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서 오랫동안 말하기를 해온 사람이거든요. 어릴 때 저희 부모님은 제가 우물쭈물 말하면 “6하 원칙으로 정리해서 똑바로 말해. 무슨 얘긴지 못알아듣겠어”라고 하는 스타일이셨어요. 그러면 보통 아이들은 기가 죽잖아요. 저는 밥을 먹으면서 다시 할 말을 정리한 다음에 “아빠, 다시 말해볼게요” 그런 애였어요. 그만큼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엄청 강한 아이였던 거죠. 표출하고 싶은 것도 너무너무 많아서 계속계속 말하기를 하면서 살아왔는데, 제가 엄청나게 말하면 사실 듣는 사람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 그냥 관객이 되는 거더라고요. 그럼에도 저는 너무 말을 하고 싶으니까 재미있는 말하기, 관객을 만족시키는 말하기, 약간 ‘광대적인 화법’을 연마한 거예요.
그렇게 말을 하고 싶은만큼 다 하고 나니 어느 순간 궁금해졌어요. ‘저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2D로 느껴졌던 사람이 80D 정도로 느껴지는 경험을 했어요. 저한테는 그게 인생이 달라지는 느낌이었거든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이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는 태도로 대화를 하니까 대화가 되게 잘 됐던 것 같아요. 사실은 다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물어봐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비결은, 말하기를 엄청 많이 하다보니 나에 관한 스크립트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 스크립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들이 엄청 많아요. 그걸 남들한테도 던지는 거죠. 상대방한테는 그게 ‘이 사람이 나한테 이런 걸 물어보네’라는 자극이 되는 것 같고, 그래서 많은 친구들이 저한테 ‘너를 만나서 내가 나에 관해 더 잘 알게 됐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해요. 내가 나를 많이 헤집고 다닌만큼 남한테도 그런 부분을 물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제 자랑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요. (웃음)
효진: 자랑하는 거 너무 좋아요. 민지 님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대화가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민지: 우리가 가진 거의 유일한 방법 같다고 느껴요. 우리가 거의 작두를 타듯이 대화를 했을 때, 정말 한 번이라도 그 경험을 하면 두 사람만의 공동 지대가 될 수 있는 포탈이 열리는 거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그 대화의 공간에는 몇 년이 지나도 진입할 수가 있는 거죠. 저는 세상에 그런 공간을 많이 만들어놓고 살았고, 그러면서 삶에 느끼는 만족감과 안정감이 엄청 커졌어요.
어릴 때부터 제 사주를 보면 항상 천성이 외롭다고 나왔대요. 그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미친 것처럼 바쁘게 많은 활동을 했는데, 진짜로 대화하는 법을 알게 된 이후로 내가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이해받고 가서 쉴 곳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그 느낌이 언제나 제 옆에 있어요. 그런 땅이 점점 넓어지고 늘어났을 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되게 편안하더라고요. 어딘가에 수용받고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대화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고, 저에게는 이게 유일한 방법 같아요. 대화는 절대 인생에서 놓거나 사라질 수 없는 느낌이에요.
효진: 민지 님의 본업인 교사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네요.
민지: 그래서 지금은 교사가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일상에서 하는 일들이 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거거든요.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내가 해봤을 때 내 삶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할 수 있게끔 내가 판을 깔아주고, 연습도 시켜주고 하는 거죠. 가족들한테도 그렇고요. 어느 순간 ‘내가 꼭 교사라는 일을 하지 않아도 그냥 교사처럼 살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치면 내가 이렇게 사는데 교사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삶이 불균형했을까, 그런데 마침 나는 교사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교사라는 직업을 긍정할 수 있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효진: 남은 25년 동안 민지 님에게 제일 중요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뭘까요? 거창한 게 아니어도 좋아요.
민지: 지금 꽂혀 있는 게 ‘비워내기’인데요, 이걸 하면서 저의 일상 유지보수 기능이 되게 약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애인이 저한테 ‘네가 생산 기능, 추진력 이런 건 높은데 일상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기술이 없고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 같다’라는 얘기를 해줬거든요. 그런데 재생산 없이 생산이 있을 수 없고, 유지보수 없이 일을 추진할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이 저한테 크게 와닿아서 남은 25년은 계속 유지보수 기능을 연마하는 데 초점을 두려고 해요.
효진: 내년에는 민지 님의 생활 방식과 태도가 더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저는 궁금한 것들을 거의 다 여쭤봤는데, 혹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민지: 뉴그라운드에 들어와서 제가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은, 세상과의 접촉면에 되게 넓어진 것 같아요. 학교가 너무 보수적이고 내가 있을 곳이 없는 것 같고, 그런 부분에 너무 답답함을 느껴서 지난 3월 뉴그라운드에 처음 들어왔어요. 여기서 생각지 못한 연결점들이 생기는 걸 경험하면서 이 곳 역시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뭘 많이 하긴 하는데, 그걸 거침없이 하는 게 아니라 돌다리를 100번 정도 두드려보고 하는 거거든요. 100번을 두드리더라도 뭔가를 해야 할 만큼 욕구가 큰 거죠. 그렇다는 건 반대로 겁과 두려움도 많다는 뜻이기도 해요. 뉴그라운드에 와서 두려움이나 겁 같은 것들이 좀 작아진 느낌을 받아요. 그게 스스로 달라진 점이에요.
효진: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뉴그라운드 안에서도 워머스들과 대화 워크숍 같은 걸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민지: 맞아요. 사실 이번 분기 저의 목표였어요.
효진: 아직 25년이 3개월 남았으니까요, 꼭 열어주세요. (웃음)
효진: 민지 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민지: 생일을 기점으로 저에게 되게 큰 변화가 있었어요. 예전과 똑같은 걸 하는데, 그걸 하는 제 마음이 굉장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겉으로 보이는 목표를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수행한다는 느낌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할 일 하나하나에 약간 숨을 불어넣는 법을 배우는 느낌이에요. 평범한 일상을 이제서야 이렇게 충실하게 살고 있구나, 그런 느낌으로 지내는 중이에요.
효진: 민지 님은 본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림도 잘 그리시고, 십자수 프로젝트도 하시고, 유튜브도 만드시고요. 저런 모든 활동을 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교사’라는 직업에서 떠올리는 이미지와 민지 님이 살아가는 방식, 모양 같은 게 굉장히 다르다보니 그 점도 신기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민지 님의 본업과 다른 창작 활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만들어가고 계신가요?
민지: 예전에는 본업과 활동을 딱 분리했어요. 학교에서 내가 보여주는 건 10% 정도, 거기서 그 이상을 보여주면 손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부모님의 권유로 교대에 갔기 때문에 교사가 되었을 때 패배감을 많이 느꼈거든요. 학교라는 공간이 ‘네가 용기가 없어서 결국 여기서 일하는 거야’라고 저한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오래 있었어요.
그렇다 보니 여기서 느끼는 패배감을 상쇄하기 위해 다른 곳에서 나다운 모습을 많이 표출해야 한다고 믿었어요. 학교에서는 마음을 닫고, 바깥에서는 에너지를 과할 정도로 쏟다 보니 옆에서 저를 지켜보던 애인이 이러다가 네가 미쳐버릴 것 같다고, 교사 일을 그만두든지 교사라는 일에서도 네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러지 않으면 자아 분열이 올 것 같다고요. 그 이후로 조금씩 본업과 활동의 밸런스가 조금씩 맞춰져 왔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교사라는 일도 예술가적인 측면을 갖고 있거든요. 수업을 만드는 업무도 그렇고, 종합 예술가 같단 말이에요. 이런 면을 여기서 살리면 아이들이 만나보지 못한 선생님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업에서 저의 성격이나 가치관 같은 것들을 녹여보기 시작했어요. 이게 점점 효과가 되게 좋더라고요. 아이들도 ‘이런 선생님은 처음이다’, ‘선생님은 정말 쿨하신 것 같다’라고 얘기하고요. (웃음)
효진: 교사로서 민지 님이 갖고 있는 원칙도 있을까요?
민지: 교사로서의 대원칙은 ‘교육이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에요. 저는 아이들이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러려면 교육도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거죠. 수업도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전달해야 하는 내용은 노래를 불러서라도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편법을 쓰기도 해요.
효진: 민지 님이 노래를 하고 싶어서 하시는 거 아닌가요? (웃음)
민지: 그렇긴 해요. (웃음) 또 다른 원칙은,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제가 평가하거나 판단의 도구로 삼는 게 아니라 성장의 기회를 포착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떼를 쓰면 ‘얘가 떼를 쓰네. 떼쟁이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러면 내가 얘한테는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가르쳐주면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효진: 교육 현장 바깥에 있는 성인으로서는 미디어나 SNS를 통해서 ‘요즘 애들은 큰일이다’ 같은 부정적인 이야기만 접하게 되는데, 민지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실제 학생들의 상황과 어른들이 그들을 이해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많이 벌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지 님은 교사가 평생 직업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언제든 커리어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민지: 교사로 10년은 일하려고 하는데, 그 이후에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브랜드를 창업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창업에 관해서는 아직 잘 모르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제가 ‘대화 메뉴판’이라는 걸 만들어서 팔기도 했거든요. 그걸 기반으로 워크숍 같은 걸 진행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친구들과 워크숍을 해봤는데 결국 이게 학교에서 하는 수업이랑 구조가 비슷해요. 동기 유발하고, 활동 소개하고, 자율권을 주고, 마무리하고. 이건 제가 학교에서 맨날 하는 일이니까 이런 역량을 잘 닦아서 브랜드로 이어가보고 싶기도 해요.
제 인생의 중요한 키워드가 ‘대화’거든요. 한국인들이, 물론 한국인들만은 아니겠지만 ‘듣기’가 참 안되잖아요. 학교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적극적 경청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정말 많아요.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좋은 대화를 하는 법, 가슴이 충만해지는 대화하는 법,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어요. 성인이 되니까 그런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그런 방법을 어렵지 않게 배우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효진: 체크아웃 타임 때 민지 님 회고를 보면 친구분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하시는 것 같아요. 민지 님 스스로 생각해볼 때 본인이 대화를 잘 하는 것 같은지,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민지: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서 오랫동안 말하기를 해온 사람이거든요. 어릴 때 저희 부모님은 제가 우물쭈물 말하면 “6하 원칙으로 정리해서 똑바로 말해. 무슨 얘긴지 못알아듣겠어”라고 하는 스타일이셨어요. 그러면 보통 아이들은 기가 죽잖아요. 저는 밥을 먹으면서 다시 할 말을 정리한 다음에 “아빠, 다시 말해볼게요” 그런 애였어요. 그만큼 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엄청 강한 아이였던 거죠. 표출하고 싶은 것도 너무너무 많아서 계속계속 말하기를 하면서 살아왔는데, 제가 엄청나게 말하면 사실 듣는 사람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 그냥 관객이 되는 거더라고요. 그럼에도 저는 너무 말을 하고 싶으니까 재미있는 말하기, 관객을 만족시키는 말하기, 약간 ‘광대적인 화법’을 연마한 거예요.
그렇게 말을 하고 싶은만큼 다 하고 나니 어느 순간 궁금해졌어요. ‘저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2D로 느껴졌던 사람이 80D 정도로 느껴지는 경험을 했어요. 저한테는 그게 인생이 달라지는 느낌이었거든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이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는 태도로 대화를 하니까 대화가 되게 잘 됐던 것 같아요. 사실은 다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물어봐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비결은, 말하기를 엄청 많이 하다보니 나에 관한 스크립트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 스크립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들이 엄청 많아요. 그걸 남들한테도 던지는 거죠. 상대방한테는 그게 ‘이 사람이 나한테 이런 걸 물어보네’라는 자극이 되는 것 같고, 그래서 많은 친구들이 저한테 ‘너를 만나서 내가 나에 관해 더 잘 알게 됐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해요. 내가 나를 많이 헤집고 다닌만큼 남한테도 그런 부분을 물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제 자랑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요. (웃음)
효진: 자랑하는 거 너무 좋아요. 민지 님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대화가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민지: 우리가 가진 거의 유일한 방법 같다고 느껴요. 우리가 거의 작두를 타듯이 대화를 했을 때, 정말 한 번이라도 그 경험을 하면 두 사람만의 공동 지대가 될 수 있는 포탈이 열리는 거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그 대화의 공간에는 몇 년이 지나도 진입할 수가 있는 거죠. 저는 세상에 그런 공간을 많이 만들어놓고 살았고, 그러면서 삶에 느끼는 만족감과 안정감이 엄청 커졌어요.
어릴 때부터 제 사주를 보면 항상 천성이 외롭다고 나왔대요. 그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서 미친 것처럼 바쁘게 많은 활동을 했는데, 진짜로 대화하는 법을 알게 된 이후로 내가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이해받고 가서 쉴 곳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그 느낌이 언제나 제 옆에 있어요. 그런 땅이 점점 넓어지고 늘어났을 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되게 편안하더라고요. 어딘가에 수용받고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대화는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고, 저에게는 이게 유일한 방법 같아요. 대화는 절대 인생에서 놓거나 사라질 수 없는 느낌이에요.
효진: 민지 님의 본업인 교사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네요.
민지: 그래서 지금은 교사가 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일상에서 하는 일들이 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거거든요.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내가 해봤을 때 내 삶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할 수 있게끔 내가 판을 깔아주고, 연습도 시켜주고 하는 거죠. 가족들한테도 그렇고요. 어느 순간 ‘내가 꼭 교사라는 일을 하지 않아도 그냥 교사처럼 살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치면 내가 이렇게 사는데 교사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삶이 불균형했을까, 그런데 마침 나는 교사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교사라는 직업을 긍정할 수 있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효진: 남은 25년 동안 민지 님에게 제일 중요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뭘까요? 거창한 게 아니어도 좋아요.
민지: 지금 꽂혀 있는 게 ‘비워내기’인데요, 이걸 하면서 저의 일상 유지보수 기능이 되게 약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애인이 저한테 ‘네가 생산 기능, 추진력 이런 건 높은데 일상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기술이 없고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 같다’라는 얘기를 해줬거든요. 그런데 재생산 없이 생산이 있을 수 없고, 유지보수 없이 일을 추진할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이 저한테 크게 와닿아서 남은 25년은 계속 유지보수 기능을 연마하는 데 초점을 두려고 해요.
효진: 내년에는 민지 님의 생활 방식과 태도가 더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저는 궁금한 것들을 거의 다 여쭤봤는데, 혹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민지: 뉴그라운드에 들어와서 제가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은, 세상과의 접촉면에 되게 넓어진 것 같아요. 학교가 너무 보수적이고 내가 있을 곳이 없는 것 같고, 그런 부분에 너무 답답함을 느껴서 지난 3월 뉴그라운드에 처음 들어왔어요. 여기서 생각지 못한 연결점들이 생기는 걸 경험하면서 이 곳 역시 내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뭘 많이 하긴 하는데, 그걸 거침없이 하는 게 아니라 돌다리를 100번 정도 두드려보고 하는 거거든요. 100번을 두드리더라도 뭔가를 해야 할 만큼 욕구가 큰 거죠. 그렇다는 건 반대로 겁과 두려움도 많다는 뜻이기도 해요. 뉴그라운드에 와서 두려움이나 겁 같은 것들이 좀 작아진 느낌을 받아요. 그게 스스로 달라진 점이에요.
효진: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뉴그라운드 안에서도 워머스들과 대화 워크숍 같은 걸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민지: 맞아요. 사실 이번 분기 저의 목표였어요.
효진: 아직 25년이 3개월 남았으니까요, 꼭 열어주세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