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나에게 꼭 맞는 삶을 찾아서

한 달 전 이사를 했습니다. 서울을 벗어나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아직 서울의 자장을 선뜻 벗어나기는 불안한 터라 가까운 경기도를 택했어요. 서울의 중심에서 한 뼘 정도 벗어났을 뿐인데 생활은 제법 달라졌습니다. 거주비가 극적으로 줄었고, 외출 횟수도 줄었고, 친구들과 만나면 비교적 이른 시간에 헤어지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일을 좀 덜 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다는 약간의 용기가 생겼습니다. 


4월 커뮤니티 리포트에서 만난 워머스 김이슬 님은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번역가로 일하며 반려묘 요요와 함께 동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좋아하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너무 많은 도시에서의 삶을 선호하지 않았던 이슬 님은 동해에서 꾸리는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슬 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런 삶은 어디서 가능할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중요한 질문과 용기를 주는 이슬 님의 이야기를 옮깁니다.


효진: 이슬 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이슬: 2월부터 좀 한가하게 지내고 있어요. 지난 연말부터 1월까지는 일이 몰려서 엄청 바빴거든요. 그리고 이상하게 제가 뉴그라운드에 합류한 시점부터 뭔가 흐름이 바뀌었다고 해야 할지, 그 이후부터 사람을 진짜 많이 만나게 됐어요. 한가해진 김에 사람들이랑 많이 놀러 다니고 있어요.


효진: 어떤 분들과 어디로 놀러 다니시는 건가요? (웃음)

이슬: 원래 동해에 연고가 없어서 아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동해에 있는 책방 사장님과 가까워졌어요. 알고 보니까 같은 아파트 주민인 거예요. 사장님을 통해서 또 다른 분들과 연결되기도 하고, 그렇게 사람들과 교류할 일들이 되게 많아졌어요. 사실 어제도 책방 대표님들이랑 같이 강릉에 다녀왔어요. 여기는 작은 동네니까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 많고, 서로 소개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도 강한 것 같아요.


효진: 지금 프리랜서 편집자 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셨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슬: 저는 주로 어린이책을 편집해요. 2016년에 처음 출판사에 입사하면서 일을 시작했고, 그사이에 이직을 좀 많이 했어요. 이직을 하면서 계속 어린이책 분야에 있기는 했지만 세부 분야는 조금씩 바뀌었거든요. 첫 번째 회사에서는 학습 만화를, 두 번째 회사에서는 정보서를, 그다음 회사에서는 동화나 그림책을 만드는 식으로요. 당시에는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커리어를 이런 식으로 이어가도 될까? 전문 분야가 너무 없는 건 아닐까? 그런데 회사에서 나와서 프리랜서로 일을 해보니 그게 엄청 좋은 점이더라고요. 다양한 회사의 일을 다 받을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만들고 있고, 요즘에는 동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효진: 지금까지 편집하신 책 중에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물론 만드신 모든 책이 다 소중하겠지만요.

이슬: <투명탐정 윅슨 알리에니>라는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특이한 탐정 소설인데요, 주인공이 투명 인간이라는 점을 무기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데 장르 클리셰를 전부 비틀어요. 그래서 조금 어려울 수도 있고, 독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이 개그도 약간 있는데 저는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표지도 보면 아시겠지만, 투명한 사람이 코트를 입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거든요. 디자이너님이 여기에 에폭시를 넣어주셔서 손으로 만지면 사람 모양이 느껴져요. 표지도 내용도 전부 마음에 드는 책인데, 시장 반응이 아주 좋지는 않았어요. (웃음)


효진: 번역 일도 하고 계시잖아요.

이슬: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유럽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책들을 조금씩 가져왔어요. 그중 한 권을 편집자인 친구에게 소개했더니 친구도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걸 계기로 번역도 조금씩 하게 되었거든요. 전문 번역가라고 저를 소개하기에는 작업한 작품 수가 너무 적긴 한데, 최근에도 번역한 책이 한 권 나오기는 했어요. <유리잔 속의 숲>이라는 책인데요, 이건 처음으로 제가 해설도 썼어요. 

이 책을 쓴 작가분이 사진을 주로 찍으시거든요. 산림 같은 것들이 파괴되기 전에 기록을 남겨두는 프로젝트를 계속하셨던 분이라, <유리잔 속의 숲>도 직접 찍은 사진에 그림을 그려서 완성했어요. 근미래의, 겨울이 사라진 세계에서 겨울을 찾아다니는 어린이들의 이야기인데 좀 아름다운 면이 있어요. 


"동해에 와서 프리랜서로서의 장점을 더 많이 누리고 있어요."


효진: 이슬 님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좋아하거나, 혹은 어떤 부분이 본인과 잘 맞는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이슬: 일 자체만 놓고 보면 혼자 책상 앞에 앉아서 오래 고민하는 게 잘 맞아요. 저는 오래 앉아 있는 걸 잘하더라고요. 그리고 책 자체도 좀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책의 물성도 좋아하고, 여러 가지 책을 보는 것도 좋아해요. 또 프리랜서로 일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역시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큰 장점이에요. 다시 회사에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아요. (웃음) 동해에 와서 프리랜서로서의 장점을 더 많이 누리고 있어요. 프리랜서가 아니면 이렇게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와서 살기는 어렵잖아요. 함께 사는 고양이랑 시간을 많이 보낼 수도 있고요. 


효진: 앗, 잠깐 반려묘 소개도 해주세요. 

이슬: 요요는 2020년 9월에 저희 집으로 오게 된 고양이예요. 이제 다섯 살 정도 됐고요, 올블랙입니다. 겁이 정말 많아요. 제 생각에는 겁 많은 걸로 동해시에서 1등일 것 같아요. 제가 요요를 데려왔을 때 코로나19가 한창 심했거든요. '요요가 나랑 거리두기를 하는 거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코로나가 거의 종식될 때까지 약 1년 반 동안 요요를 만질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되게 잘 지내요. 다만 여전히 겁은 많아요. 바람이 불어, 무서워! 택배가 왔어, 무서워! 제가 갑자기 패딩을 입었어, 너무 무서워! (웃음) 언제든 겁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고양이입니다.




효진: 그런데 동해로 이주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연고도 없는 곳으로 이주한다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요.

이슬: 원래 쭉 서울에서 살다가 동해에 오기 직전 4년 간은 경기도 군포에서 살았어요. 집값 때문에 군포로 간 거였는데, 서울보다 집값도 훨씬 싸고 지하철만 타면 서울에 쉽게 갈 수 있고 진짜 좋더라고요. 그런데 전세 만기일이 다가오면서 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바다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막연하게 예전부터 '언젠가는 바닷가에서 살아야지'라고 상상했는데, 그때가 딱 기회인 것 같은 거예요. 전세도 만료되고, 프리랜서니까 굳이 수도권에 살 필요도 없고. 

바다가 있는 지역들 중에서 하필 동해였던 이유는 동해 바다를 좋아하기도 했고, 초등학교 때 동해에서 3년 정도 산 적도 있었거든요. 조금이라도 아는 곳에 가아겠다 싶어서 동해로 이사를 온 거예요. 


효진: 실제로 동해에 살아보니까 어떠세요? 어떤 점이 좋거나 아쉽나요?

이슬: 바다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 진짜 좋아요. 교통이 좀 불편하고, 고양이 병원도 좀 멀리 가야 하는 건 단점이지만요. 그런데 저는 프랜차이즈 브랜드 같은 걸 특별히 이용하지 않아서 그런 게 없다는 데 대한 불편함은 크게 못 느껴요. 주변에 놀러 갈 곳도 많고, 자연환경이 주는 이점이 정말 크죠. 수도권으로 다시 이주할 계획은 당분간 없어요. 


"너무 많은 옵션 사이에서 허둥지둥하지 않을 수 있는 게
저한테는 되게 만족스러워요."


효진: 이제 동해에 아는 분들도 많이 늘어났으니 애착도 더 생기실 거고요. 이슬 님은 지금 이슬 님이 생활하는 방식에 얼마나 만족하시는지 듣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하지만, 이미 수도권의 속도와 인프라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벗어나기가 힘든 것 같거든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니 어떠세요?

이슬: 지금까지는 엄청 만족스러워요. 서울보다 훨씬 싼 값에 훨씬 더 좋은 주거 공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게 너무 중요하고요. 아무래도 프리랜서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집이라는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힘들거든요. 

그리고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모든 게 좀 과잉이라고 느낄 때도 있었어요. 옵션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더 허둥지둥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눈이 더 많이 돌아가고, 괜히 더 기웃거리게 되면서 정신이 흐트러진다고 생각했었어요. 지금은 그러지 않을 수 있는 게 저한테는 되게 만족스러워요. 어떤 삶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수도권 바깥의 생활이 다르게 다가오겠지만요. 아무튼 살아보고 싶은 곳에서 살아보는 경험은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각 지역 나름의 장점이 있으니까요.


효진: 궁금한 건 거의 다 여쭤봤는데요, 이슬 님과 대화를 하다가 여쭙고 싶어진 게 있어요. 어린이, 혹은 청소년 책을 만든다는 일의 의미나 중요성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이슬: 요즘 어린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 휴대폰만 본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성인 독자에 비해서는 어린이 독자들이 책을 더 많이 읽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책은 여전히 유효하고 영향력 있는 매체인 거죠. 도서관이나 학교 등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고요.

꼰대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웃음) 저는 영상으로 접하는 정보와 책으로 접하는 정보는 같은 내용인 것처럼 보여도 되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있고, 어린이 때부터 책을 접하지 않으면 성인이 될수록 책과 멀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린이책 시장이 너무 중요하다고 믿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책 판매량이 줄었다, 출간 부수도 줄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이기는 해요. 아마 어린이 인구 자체가 적어진 영향도 있겠죠.


효진: 그래도 여전히 책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희망이 느껴져요. 이제 진짜 마지막 질문인데요, 남은 2025년 동안 이슬 님에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뭘까요?

이슬: 운전이요! 동해에 이사를 와 보니 아무래도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해 말에 겨우겨우 운전면허를 취득했거든요. 내가 과연 운전을 할 수 있을지 약간 의심이 들긴 하지만, 연수도 받고 연습도 해서 올해부터는 운전을 하고 싶어요. 그래야 강원도에서의 삶을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