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제 일이 저를 편견에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3월 커뮤니티 리포트의 인터뷰이는 워머스 조정주 님(쓰리제이)입니다. 정주 님은 진주에서 프리랜서 미디어 교육 담당자로 일하시는 중이에요. 지난 3월 2일 온라인으로 열린 '내고장 자랑대회'에 참여하여 수달을 모티브로 한 진주시 캐릭터 '하모'를 열렬히 소개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눈치챘던 것 같아요. 정주 님의 가장 큰 동력은 무언가를 향한 애정이라는 사실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자신의 일, 태어나고 자란 곳인 진주라는 고장, 영화, 케이팝 아이돌까지, 정주 님과 온라인으로 진행한 인터뷰는 세상의 많은 것들에 대한 정주 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효진: 정주 님,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정주: 요즘 일한다고 정신이 없어요. 


효진: 지금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거죠?
정주: 그렇습니다. 프리랜서한테는 그런 게 있잖아요. 일이 들어올 때 해야 한다. (웃음) 이런 압박감으로 들어온 일들을 쳐내기 바쁩니다. 프리랜서로 일한 지는 3년 정도 됐는데요, 예측이 안 된다는 게 제일 힘들어요. 회사에 다니면 ‘이때는 월급이 나오겠구나’, ‘일이 어느 정도 있겠구나’ 하는 예측이 가능하잖아요. 계획도 세울 수 있고요. 그런데 프리랜서는 그게 안 되니까 어려워요. 올해 3월에는 제 예상보다 일이 더 들어와서 준비하는 시간, 실제로 일하는 시간, 일을 정리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조금 더 빡빡한 느낌이에요.


효진: 10년 정도 일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됐다고 자기소개에 써주셨어요. 프리랜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정주: 너무 힘들었어요. 몸도 너무 안 좋았고,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적 반응도 크게 있었고요. 앞으로의 10년도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불안하긴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회사를 나가야겠다, 결심한 거죠. 숨쉬기가 잘 안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순진하게 ‘천식이 왔나?’ 싶어서 내과에 갔는데, 의사가 심폐 기능은 전혀 문제가 없고 심리적인 이유일 수 있으니 필요하면 안정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아, 내가 모르고 있었지만 내 몸이 진짜 너무 힘든 상태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 상태가 3년 정도 지속됐었어요.


효진: 어린이와 청소년, 중장년층과 노인 대상의 미디어 교육을 하고 계시잖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들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정주: 기관이나 학교의 제안으로 주로 강의를 하고 있어요. 내용은 굉장히 다양해요. 영상 제작, 허위 정보 판별법, 미디어 리터러시, 스마트폰 사용법까지, 간단히 말하자면 미디어 읽기와 쓰기에 관련된 전반적인 것들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다양하게 만날 수 없으니까 이 일이 되게 매력적인 것 같아요."


효진: 저 같은 경우는 일을 하면서 저와 다른 세대를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거든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세대를 꾸준히 만나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직접 듣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정주: 네, 특정한 세대에 대한 고정관념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은 이 일을 하면서 많이 옅어졌어요. 사실 어떤 세대를 만났을 때의 공통점 같은 건 있거든요. 가령 시니어분들은 조금 고집이 있으세요. “선생님, 이건 이렇게 하셔야 해요”라고 해도 “아니야, 이게 나아”라고 하시죠. (웃음) 그렇지만 그건 그 세대의 전반적인 특징인 거고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 대해서도 요즘 걱정하는 시선이 많잖아요. 미디어에서 요즘 아이들은 이기적이고 못된 것처럼 비치기도 하는데, 직접 만나보면 다들 되게 순해요. 그래서 이 일이 저를 편견에 갇히지 않게, 또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효진: 정주 님의 일 중에서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뭔가요? 왜 이 일을 계속하는 것 같으세요?
정주: 그러게요, 왜 계속할까요?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우선은 콘텐츠나 미디어를 활용해서 읽고 쓰는 것 자체를 제가 좋아하는데,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그들도 재미있어 하는 게 즐거운 것 같아요. 그리고 매번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요. 제가 강의에서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또 다른 대화가 오갈 수 있거든요. 그러네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다양하게 만날 수 없으니까 이 일이 되게 매력적인 것 같네요.



효진: 지금 진주에 거주 중이신 거죠? 저번에 ‘내고장 자랑대회’를 열었을 때 진주 캐릭터인 ‘하모’ 자랑을 엄청나게 하셔서 거주지에 애정이 크신가 보다 했었거든요. 사실 고향보다는 하모 자체에 대한 애정 같기도 했지만요. (웃음) 어쨌든 진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발표였는데, 진주의 어떤 점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어요.
정주: 저는 진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대학 때문에 다른 지역에 갔다가, 졸업 후에 진주로 다시 돌아온 케이스예요. 그러면서 느낀 건데 진주가 자연에 굉장히 가깝더라고요. 지리산도 1시간권, 남해 바다도 1시간권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여름에 휴가를 간다고 하면 당일치기로 지리산 계곡에 갔다 오고, 남해 바다에 갔다 오고 했어서 서울 사람들이 엄청나게 준비해서 차를 몇 시간씩 타고 지리산 종주를 하고 간다고 하면 ‘음? 나한테는 (지리산이) 뒷산인데?’ 이런 생각이 들죠. 진주가 되게 매력적인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진주에 살면서 자연 경관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 자연의 변화를 꾸준히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이 모임에서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구나, 하는 

안정감 같은 것들? 그게 제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효진: 진주에 계시는데 뉴그라운드에 가입하셨잖아요. 멤버십 신청 기간에 열린 ‘워머스문화센터: 트랜스 젠더퀴어 이론 함께 읽기’에 참여하셨었죠. 그때 어떤 계기로 오게 되셨는지도 궁금했고, 어쨌든 모임 후 멤버십을 신청했다는 건 모임이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는 뜻일 텐데(웃음) 실제로 어떻게 느끼셨는지도 듣고 싶었어요.
정주: 트랜스젠더 관련 내용에는 관심이 있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혼자 책을 보고 공부하기도 어렵고, 저의 바운더리 안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는 것도 조금 힘들더라고요. 그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시간만 맞으면 들어야겠다 싶었고요, 되게 오랜만에 그런 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그러니까 이 모임에서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구나, 하는 믿음….까지는 아니지만 안정감 같은 것들? 그게 제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효진: 그럼 뉴그라운드에서 함게 해보고 싶은 활동이나 나눠보고 싶은 주제 같은 것들이 있을까요?
정주: 문득 생각난 건데, 자기소개를 보니 영화 보고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꽤 계시더라고요. 왓챠 파티 같은 걸로 함께 다큐멘터리를 보고 대화를 나눠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효진: 정주 님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4.3 기억 영화제’ 관객 추진단 활동도 하시잖아요. 혹시 워머스들과 함께 보고 싶은 다큐멘터리를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정주: 제가 지역 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패널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거기서 소개했던 건데요, <명성, 그 6일의 기록>이라는 작품이에요. 1987년 6월 명동성당에서 했던 농성 투쟁에 관한 영화거든요. 시국이 시국인만큼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이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어떤 콘텐츠로 남아서 우리에게 기억될 것인가 등을 생각해보기에 적합할 것 같아요. 이 작품은 웨이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효진: 너무 의미있는 작품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각자 웨이브에서 <명성, 그 6일의 기록>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온라인 모임을 열어봐도 좋겠네요.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올해 정주 님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 혹은 계획이 있다면 뭘까요?
정주: 저의 기록을 책으로 남겨보려고 해요.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이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말을 해야 쪽팔려서 실행하게 되더라고요. 


효진: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으세요?
정주: 인생의 반을 아이돌 덕질과 함께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돌이 모두 (안 좋은 의미로) 뻥뻥 터졌단 말이죠. 요 앞에 영화 <성덕>이 나왔었잖아요. 그 영화가 개봉했을 때 친구들이 전부 저한테 “야, 저거 니가 만들어야 하는 건데. 너도 만만치 않은데”라고 말했었어요. 그래서 저의 흘러가 버린, 떠나가 버린 오빠들을 독립 출판물로 기록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효진: 혹시 요즘에도 덕질을 하고 계신가요?
정주: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세븐틴의 원우와 에이티즈 산을 좋아하고 있어요. 걔네는 안 떠내려가야하는데, 사건이 터지지 않아야 할 텐데…. 기도하고 있어요.